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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필 Dec 11. 2024

목숨 값

김두필 초단편소설

산 아래 무너져 가는 폐허와 같은 허름한 집 한 채.

잡초들이 우거져 보이지도 않는 쓰러져 가는 집.

그곳은 그 집 말고는 사람 사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폐허 같은 집에 있는 수염 덥수룩한 한 노년의 남자.

그 노년의 남자 앞으로는 커다란 가마솥이 끓고 있었다.

그때 수연이 남자의 집으로 찾아왔다.


"저기... 혹시..."


여자의 머뭇거림에 남자는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다.

그런 남자의 시선이 수연은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차갑고 사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연은 이곳에 온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남자가 꼭 필요했다.

그렇게 머뭇거리던 수연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기... 이곳이 사람 죽여주는 곳 맞나요?"


수연의 말에 남자의 시선이 더욱더 섬뜩해져 갔다.

하지만 수연도 지지 않고 남자를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간절한 눈빛에 남자는 말없이 수연을 쳐다보며 넌지시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남자의 끄덕임을 확인한 후 말을 이어 갔다.


"제가 의뢰를 좀 하려고요... 남자 3명을 죽이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남자가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나쁜 놈들이요?"


"나쁜 놈들이죠... 그래서 꼭..."


"그 나한테 말하기 어려운 일이요?"


남자의 물음에 수연이 당황했다.

자신이 당한 일을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말을 하지 말아야 하나?

온갖 생각이 수연의 발목을 붙잡았다.

고민에 빠져 있는 수연에게 남자가 말했다,


"난 이유가 타당해야 일을 시작합니다. 말을 하지 못한다면 다른데 가보슈..."


남자의 말에 수연이 다급하게 대답했다.


"저를 단체로 강간한 놈들이에요."


수연의 대답에 남자가 답했다.


"이유는 충분 하구만..."


"제 의뢰받아주시는 건가요?"


"그 사람들을 죽일 각오는 되어 있고?"


"그럼요. 그놈들이 죽는 생각만 하면서 이곳에 왔습니다."


"글쎄... 이거 참... 사람 찾아 죽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 돈도 한두 푼 드는 게 아니고..." 


"사실... 소문을 듣고 찾아왔어요..." 


"무슨 소문 말이오?"


"사람을 저렴하게 처리해 준다고..."


여자의 말에 남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푸하하하!! 결국 돈이 문제구만?"


"제가 지금 모은 돈이 얼마 없습니다. 일 처리만 해주시면 나중에 대출을 받아서 아니 빚을 내서라도 돈 드릴게요..."


"돈도 얼마 없으면서 날 찾아왔수? 이기적이 고만..."


남자의 말에 수연은 말문이 막혔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돈이 없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수연을 남자가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여자는 그런 남자의 시선을 쭉 쳐다보다가 이내 불편함을 느꼈는지 피하고 말았다.

돈도 없는 자신이 초라한 것도 있었지만 남자의 시선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런 수연에게 남자가 물었다.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있소?"


남자의 질문에 수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네! 전 그놈들을 죽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놈들을 죽일 수 있다면... 제 목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요... 근데 제가 가진 돈이 별로 없어서요..."


"얼마 있수?"


"100만 원 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고작 100만 원으로 여길 찾아온 거요?"


돈 이야기에 수연은 또 말문이 막혔다.

그런 수연의 표정이 불쌍해서일까?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럼 그거 주슈... 내가 이일 해드리리다."


"고작 100만 원으로 이 일을 해주신다고요?"


"죽고 싶을 만큼 죽이고 싶다 하지 않았수?"


"네 그놈들만 죽일 수 있다면..."


"거기다 돈 놓고 가슈. 그리고 일주일 뒤에 여기로 다시 오면 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자는 남자의 마당 한편에 돈 봉투를 놓고 연신 감사인사를 하며 돌아갔다.

남자는 수연 쪽으로는 시선을 주지도 않은 채 자신이 할 일만 하고 있었다.

수연이 돌아가고 남자가 한숨을 쉬며 혼잣말을 쏟아냈다.


"오랜만이구만... 이런 일도...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뭐... 들어줘야 하지 않겠나... 선택은 저 여자의 몫이니..."


***


어두운 밤 서울의 한 번화가.

술집들이 가득하고 나이트클럽 불빛이 눈을 부시게 하는 밤의 거리.

사람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고 연신 술기운에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시끄러운 곳.

그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하얗고 낡은 트럭한대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 트럭 안에는 수연이 만났던 남자가 타고 있었다.

트럭 안에서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


"역시 시끄럽구먼... 조용한 곳이 좋은데 말이야... 후딱 처리하고 가야 거었어..."


남자는 차 안에서 조용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 골목만을 주시하면서 말이다.

잠시 후 그 골목으로 여자가 말한 세명의 남자가 휘청거리며 들어섰다.

세명의 남자들은 약에 취한 건지 술에 취한 건지 정신을 못 차리고 연신 비틀 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 여자를 끌어안고 추행하며 희희낙락 거리며 즐기고 있었다.

여자도 무언가에 취했는지 힘이 빠져 그들의 추행을 거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남자가 트럭에서 조용히 내려 그들 뒤를 따라갔다.

남자들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히히히 같이 놀자~ 너도 좋을걸?..."


"그래... 오늘 이 오빠가 행복하게 해 줄게..."


그러자 여자가 손을 허공에 허우적 대며 말했다.


"싫어요... 그만하세요..."


그 놈들은 그저 여자에게 치근덕 대며 추행하는데 바빴다.

그 순간 기척도 없이 남자가 그들 뒤에 나타났다.

그리고 신속하고 아주 조용하게 그놈들을 제압했다.

갑작스러운 제압에 반항도 못해보고 그놈들은 힘없이 쓰러졌다.

남자는 쓰러진 놈들을 확인했다. 

그리곤 한 놈씩 차례차례 그들을 묶어 트럭 집칸에 옮겨 실으며 말했다.


"아가씨 정신 차리면 어서 집에 들어가... 부모님이 걱정혀..."


그러자 정신을 못 차리는 여자가 말했다.


"감... 사... 합니다."


"아가씨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 무서운 세상이여..."


그놈들을 다 실은 남자가 허리를 피며 말했다.


"아이고 이제 나도 이 짓거리를 그만해야 것구먼... 힘들어서 원..."


남자가 자신의 트럭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그놈들을 실은 트럭이 조용히 번화가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트럭은 어두웠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올 때쯤 남자의 집에 도착했다.


***


산속 폐허 같은 집으로 돌아온 노년의 남자.

남자는 자신이 데리고 온 세명의 남자들을 한쪽 구석에 묶었다.

입에는 말을 못 하게 제갈을 물리고 손과 발은 쓰지 못하도록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놈들은 영문도 모른 채 매달린 채로 발악을 하고 있었다.

뭐라 말하는지 모르지만 아마 살려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노년의 남자는 그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한쪽 구석 있는 나무에 무언가를 매달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노년의 남자는 폐허를 떠날 채비를 완벽하게 끝내고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잡혀온 남자들은 지칠 때로 지쳐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숨만 겨우 붙어있는 듯했다.

잠시 후 여자가 들어오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제 이놈들 죽여주시면 돼요... 정말 수고하셨어요."


그러자 노년의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마무리는 내가 안 할 거요. 마무리는 당신이 하슈... 당신이 목숨을 걸 만큼 죽이고 싶다고 했으니까..."


"네? 제가요?"


"그렇지... 고작 100만 원으로 다 해주리라 믿었소? 적어도 이런 일을 하려면 당신도 목숨을 걸어야지..."


"아... 제... 목숨이요?"


"이제 당신이 선택할 시간이여. 저들을 직접 죽이고 저기 나무에 보이는 밧줄에 스스로 올라가면 되는 거야. 나는 당신의 각오만큼만 딱 일을 했으니까 나머지는 당신이 결정하면 되는 거지."


마지막 한마디를 남긴 채 노년의 남자는 트럭에 몸을 싣고 그 자리를 떠났다.


***


그렇게 남자는 떠나고 다른 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전에 살던 곳과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외딴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역시 큰 가마솥이 끓고 있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 남자는 장작을 패고 있었다.

연신 땀을 흘리며 일하던 남자는 집으로 들어와 차가운 물로 목을 죽으며 티브이를 틀었다.

티브이에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아나운서가 말을 했다.


"어젯밤 한 폐허에서 세명의 남자 시신과 한 명의 여자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확인 결과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강간사건의 연관된 자 들이었습니다. 경찰은 피해자의 보복으로 인한 사건으로 추정 중에 있습니다. 강산사건의 피의자들이었던 이들은...."


남자가 티브이를 끄며 씁쓸한 듯 입을 열었다.


"결국... 그런 선택을 했구먼... 잘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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