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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필 Feb 23. 2024

아빠, 잘 가요

2023년 8월 23일 전혀 생각지 못한 녀석의 등장.

중환자실의 면회시간.

이 면회 시간이 나에겐 유일하게 아버지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허락된 시간은 단 30분.

그 30분 동안 아버지를 내 눈에 담아야 하고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정말 짧은 시간이지만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들어간 중환자실.

나는 빠르게 아버지의 베드 쪽으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건 약에 취해 잠든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나서부터는 온전한 정신의 아버지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약에 취해 비몽사몽 하거나 섬망 증상을 보이는 아버지만이 날 맞이 했다.

그리고 그날은 눈으로 나누던 대화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의식을 잃은 채 잠만 자고 계셨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나에게 언제나 강했던 김형사는 온 데 간데없었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침대에서 말라가는 아버지만 있었다.

점점 말라가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 정말 나의 가슴을 후벼 팠다.

그리고 정말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날 감싸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치료가 가능해 건강해지실 지도 모른다는 희망감.

이 두 가지 감정이 외줄을 타고 있는 듯했다.

어느 한쪽으로 한순간 뚝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건강해지는 쪽으로 떨어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게 내가 가장 원하던 아버지의 엔딩이길 바랬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에게 다가온 주치의 선생님이 말했다.


"어제 찍은 CT사진을 확인해 봤는데요..."


"네..."


"그전에 사용하지 않는 신장에 암세포가 있다고 했었잖아요?"


저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차 싶었다. 

신장에 있던 암세포.

아버지가 사용하지 않는 신장 즉 내가 이식한 신장이 아닌 죽어있는 신장에 있던 암.

그 암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 암은 전이될 확률이 2%도 안된다고 이야기했었다.

그 당시 병원에서는 그 암은 몸이 회복되면 천천히 제거하자는 말을 했었다.

그랬었는데... 전혀 생각하지 못한 그 녀석이 의사의 입에서 등장한 것이다.

뒤통수를 무방비로 맞은 듯한 충격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물었다.


"근데 그 암은 전이될 확률이 2%밖에 안된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네... 저희가 진단하고 저희의 경험상 전이될 확률이 낮았습니다. 그래서 몸이 회복되고 제거를 하려고 한 것이고요..."


"아... 그럼... 그곳에서 전이가 된 건가요?"


"우선 조직 검사를 해봐야 더 정확하게 알 것 같아요..."


"아..."


아...라는 작은 탄식 말고는 어떠한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니 서있는 내게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내미는 주치의.

그리고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시술 동의서였다.

그 시술 동의서가 솔직히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말에 나의 감정을 삭였다.

뭐가 됐든 아직은 내가 예상하는 가장 최악의 엔딩은 아직 아니니까 말이다.

그렇게 시술 동의서를 내민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보호자분 시술 동의서에 사인 부탁드립니다."


"아 네... 이건 뭘 하는 걸까요?"


"기관 삽관 조직검사예요. 말 그대로 삽관을 해서 조직을 떼어 내는 검사입니다."


"아... 네..."


그리고 이어지는 의사 선생님의 말.


"이 시술이 기관 삽관을 하고 또 조직을 떼어내는 시술이다 보니... 심정지가 올 수도 있고요... 또 조직을 떼어내고 출혈이 멈추지 않아서 사망하실 수도 있어요... 알고 계셔야 합니다..."


"네..."


사망이라는 단어, 죽음이라는 단어가 점점 더 많이 들려왔다.

수술을 할 때도, 중환자실에 와서도, 이런 시술을 할 때도 죽음이라는 놈이 아버지를 꼭 따라다녔다.

그전까지만 해도 죽음이라는 단어가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나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와닿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이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보며 점점 더 피부로 와닿고 있다고 느꼈으니 말이다.

그렇게 혼자 아주 잠깐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 때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술은 면회가 끝나면 시작할 거고요... 한 시간 정도 걸리니까 어디 가시지 마시고 잠시 기다려 주세요...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면회시간이 끝나고 시술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는 걸 보고 나는 중환자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중환자실 근처에서 아버지의 시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 한 시간이 참... 길었다.

한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신장... 죽어있는 신장에서 암이 전이가 된 걸까?

그렇다면 왜 병원에서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걸까?

병원을 원망해야 할까?

아니 병원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

만약 진짜 그렇다면 누구에게 이 억울함을 이야기해야 할까?

난 이걸 받아들이고 수용해야 하는 걸까?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온갖 잡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 훌쩍 흘러버렸다.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걸려온 전화.

다행히 심정지 없이 시술은 끝났고 조직을 꽤 많이 떼어냈다고 했다.

그리고 출혈양도 많지 않아 귀가해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떼어낸 조직양이 많아서 조금 기다리면 진단이 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뿐이다.

기다리다 보면 조직검사가 나올 것이고 아버지의 병을 정확실 알 수 있다.

병만 알면 분명히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난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그런 희망을 꼭 가져야만 했다.

아버지나 나나 무너져선 안되기에...


그렇게 아버지와 나의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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