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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필 Mar 18. 2024

아빠, 잘 가요.

2023년 8월 26~29일 내가 가지 못했던 날들의 아버지

그렇게 아버지와의 시간은 계속해서 깎이여 나가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버지와 시간을 최대한 함께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직장인이고 그 당시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참... 원망스럽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는 것이 말이다.

저 날의 시간도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더 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하곤 한다.

저 당시 아버지의 상황은 아주머니를 통해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지금도 후회로 남아있다.

그래도 내가 아버지 아들인데... 더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지금도 계속 곱씹으니 말이다.

아마 이별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후회를 많이 할 것 같다.

당시에는 많은 시간을 같이 한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저 4일의 시간이 나에게 다시 주어진다면 아마 직장을 무단결근을 하고라도 중환자실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지 않을까?

4일에 30분씩 허락된 면회시간 즉 두 시간이 나에게 다시 돌아와 줬으면 좋겠다.


26일 아주머니와의 통화.

아버지의 컨디션은 좋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좋아진 건지 일시적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좋아졌다는 말이 듣기 좋았다.

그리고 이어진 아주머니의 말씀.

아버지는 퇴원을 하고 싶어 한단다.

그러더니 나에게 말씀하셨다.

병원을 믿지 말라고 말이다.

이 병원은 무서운 곳이다.

사람을 계속해서 붙잡아 놓고 힘들게 한다.

이러한 말들을 나에게 계속하셨다.

아마도 아버지의 섬망 증세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판단이 되었다.

병원을 더 이상 믿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점점 마음이 아파왔다.


27일의 통화.

역시 아버지의 컨디션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약물로 인해서 조금은 편안한 상태가 되셨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섬망증세가 조금씩 더 심해진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만큼 아버지는 암 덩어리 녀석과 계속해서 싸우고 계셨을 것이다.

아버지가 제정신으로 돌아오셨을 때 스스로 요양 병원이나 호스피스로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조금씩 아버지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정확한 진단이 나올 때까지는 기다려 보자고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힘들어하셨지만 내가 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확한 진단이 나오면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욕심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 스스로 아버지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28일 아버지가 힘이 없다는 연락이 왔다.

그 말은 들은 나도 심장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붙잡고 버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버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손주들과 영상통화를 시켜드렸다.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어 말은 하지 못하는 아버지.

화면의 아버지는 그저 힘없이 아이들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리고 아이들을 알아보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그저 나의 마음도 아파왔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29일 아버지께 또 영상통화를 걸었다.

아버지의 모습에서 더 이상 힘이 느껴지질 않았다.

그저 호흡기에 의존한 채 힘겹게 숨만 쉬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그것이 내가 유일하게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덜어드리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결과는 결국 신장암... 그리고 폐까지 전이가 된 상태였다.

이제는 완전히 진단이 나왔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추적암 검사를 해보자고 한다.

저 말이 나에게는 가능성으로 느껴졌고 희망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버지도 추적암까지는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일말을 가능성을 갖고 그날의 통화는 끝이 났다.


추적암 까지는 해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말.

이 말이 나에게는 정말 아프게 다가왔다.

그 힘없이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는 상태의 아버지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살고 싶다고 말이다.

나 또한 해 볼 수 있는 건 모두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법이든 아버지가 살 수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죽음을 예상하고 준비하는 나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혹시 모를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기도를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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