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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필 May 28. 2024

아빠, 잘 가요.

2023년 9월 3일 보내드릴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는 중환자실을 나와 일반 병실로 올라왔다.

중환자실에서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난 그런 아버지라도 조금 더 자주 보고 싶었다.

그래서 호스피스, 요양원 등 아버지를 나와 조금 더 가까운 곳에 모시고 싶어 백방을 알아봤다.

하지만 그 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모든 곳에서 받을 수 없다는 말 뿐이었다.

그 당시에는 왜 받을 수 없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남은 시간이 별로 없기에 모든 곳에서 그런 선택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이제 아버지는 인공호흡기도 빼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일반 병실로 올라오고야 말았다.

아버지는 그저 자신의 얼마 안 남은 시간을 마주해야 했다.

그날은 내 동생과 조카 그리고 나의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았다.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제한되었었지만 아버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병원 측에서 많이 배려를 해주어서 가족들이 다 들어가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아버지를 만나러 오면서 정말 고민이 많았다.

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가 가장 걱정이었다.

과연 이러한 현실을 아버지는 받아들일 수 있을지.

또 내가 말하면서 아버지가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걱정을 안 하게 잘 말할 수 있을지가 정말 고민이 된 부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의 걱정은 아버지를 간호해 주시던 아주머니가 덜어주셨다.

내가 오기 전날 아주머니께서 아버지께 말해주신 것이다.

일반 병실로 온 아버지께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당신 이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댜... 살 수가 없는 가벼..."


그 말은 들은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으셨단다.

아니 아버지는 더 이상 말씀을 하실 수 없는 상태가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의 침묵 끝에 아버지는 겨우 입을 열어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나 사망한다는 거지?"


아주머니는 그 물음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사망한다는 거지... 참 끝까지 형사다운 말투이다...

죽는다는 거지가 아니라 사망한다는 거지 라니...

참 김형사 다운 말이었다.

사망한다는 말... 자신이 죽는다는 말... 이 말을 과연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그때가 오면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저 단어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남아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덤덤히 저 단어를 받아들였다.

그저 묵묵히 본래의 아버지답게 말이다.

과연 아버지는 저 말을 받아들이는 게 쉬웠을까?

나중에 혹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면 한 번쯤 물어보고 싶다.

저 말을 들었을 때의 아버지의 심정을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포용한 아버지를 난 마주하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나의 가족 동생의 가족들 모두 다 말이다.

아버지는 인공호흡기를 뗀 채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난 아버지의 어눌한 말을 알아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힘을 내어 나에게 무언가를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울컥하고 말았다.

그리고 말했다.


"아빠... 미안한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정말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는 아버지의 말을 못 알아듣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아버지 또한 답답한 듯 계속해서 말하려 했지만 난 그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리곤 아버지는 나를 향해 펜과 종이를 가리켰다

그리곤 종이에 힘들지만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얼마 안 되는 땅은 아주머니께 드리라고 했다.

그리고 통장에 남아있는 얼마 안 되는 현금은 나보고 가지라는 소리였다.

아버지는 평생을 형사로 살면서 모아놓은 돈도 얼마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본 아버지는 정직하고 깨끗한 대한민국 형사였다.

그런 아버지가 얼마 안 되는 자신의 재산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그런 것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그런 돈 필요 없으니 그저 아버지가 일어나길 바랐다.

아버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죽음을 담담히 마주한 채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자신의 남은 일을 대충 마무리하곤 자신의 손주들을 찾았다.

동생의 딸과 나의 아들 딸이 그제야 아버지 눈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리곤 자신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나의 조카는 한달음에 달려가 아버지를 끌어안아 주었다.

그런 조카의 모습에 활짝 웃어 보이는 아버지의 표정이 나의 마음을 또 한 번 아프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에게 오라고 손짓하는 아버지.

하지만 나의 아들은 너무 말라버린 할아버지가 무섭고 어색했던 걸까?

이내 나의 뒤로 숨어버리는 나의 아들.

그런 손주의 모습에 또다시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억지로라도 나의 아들을 아버지께 안겨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아들은 끝까지 힘없이 말라버린 꼬꼬 할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의 아들의 모습에 아버지도 포기한 듯 괜찮다는 듯한 손짓을 했다.

그리곤 병실을 휙 나가버리는 나의 아들.

간난 쟁이였던 나의 딸이 나의 아들을 대신해 아버지의 미소를 되찾아 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아주머니와 가족들이 자리를 피해 줬다.

비로소 그때 아버지와 나.

단 둘의 시간이 허용이 된 것이다.

말을 못 하는 아버지를 대신에 내가 손을 잡았다.

그리곤 아주 천천히 힘들게 입을 열었다.


"아빠... 아주머니한테 들었지?"


아버지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내가 말을 이어갔다.


"아빠... 미안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능력도 없고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아들이라 미안해... 내가 연극한다고 속만 썩이고 그리고 아빠한테 사랑한다는 말도 못 하는 아들이라 정말 미안해... 아빠가 금산으로 내려가고 나서 자주 못 간 것도 미안하고... 살갑지 못한 아들이었던 것도 미안해... 그냥 다 미안해 아빠..."


아버지는 나의 그런 말을 들으며 그저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다.

난 그저 그런 아버지의 눈물을 닦아드리며 미안하다는 말뿐이 하지 못했다.

그렇게 둘만의 짧은 시간이 지나가고 가족들이 다들 들어왔다.

그리곤 아버지께 말했다.


"아빠 또 올 테니까... 꼭 잘 있어야 돼..."


그 짧은 말을 뒤로하고 나와 가족들은 또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때는 아버지를 보낼 시간이 이렇게 짧게 남아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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