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두필 Jul 16. 2024

아빠, 잘 가요.

2023년 9월 4일 아버지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

아침부터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불안감이 가득했고 묘하게 무언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육감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복합적이고 복잡한 기운이 나를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계속해서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나만의 혼잣말이 있었다.


'아... 병원에 가야 될 것 같은데... 예감이 좋지 않은데...'


정말 짜증 나는 게 왜 이런 예감은 너무나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지 모르겠다.

오전에 급한 일만 끝내고 아버지한테 갈 생각이었는데... 바로 달려갈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있을 때였다.

나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리고 들려오는 아주머니의 음성...


"빨리 와... 빨리 와야 돼... 아버지가 숨을 안 쉰다..."


"네... 지금 당장 갈게요..."


전화를 받은 나의 심장은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손이 떨려오기 시작하고 온몸에 힘이 빠질 것 만 같았다.

예상하고 있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멘탈은 흔들리고 있었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에 뇌가 저 멀리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그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게 머릿속에 하얗게 돼버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다가 얼른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빨리 병원으로 가! 아빠 돌아가신 거 같아..."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난 급하게 차를 몰고 병원으로 출발을 했다.

가는 내내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멘탈을 잡고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친구 녀석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당장 장례식장을 알아봐 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장례식장등은 친구들이 알아봐 주고 난 오로지 병원을 항해서 달려갔다.

그렇게 도착한 병원. 난 바로 아버지가 있는 병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버지를 마주했다.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의 목구멍을 무언가가 틀어막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쏟아지는 눈물... 눈물...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이 목소리 대신 흘러나오고 있었다.

꽤나 긴 시간 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잠시 후 이어지는 의사 선생님의 사망선고...

그리고 또 이어지는 나의 눈물... 동생의 눈물... 아주머니의 눈물... 아버지 친구분들의 눈물...

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난 그렇게 이미 숨이 멎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 한 것이다.

지금도 후회한다. 그때 그런 마음을 들 때 아버지한테 달려갔다면 아마 마지막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의 음성이라도 아주 작게나마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의 눈이라도 잠시 마주 볼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이다.


잠시 후 친구들이 알아봐 준 장례식장 구급차가 도착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장례식장으로 모시기 위해 온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를 인천에 있는 한 장례식장으로 모셨다.

동생과 아주머니부터 장례식장으로 보내고 병원에서 모든 일을 마무리 짓고 나도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장례식장.

장례식장에서 이것저것 필요한 설명을 듣고 잠시 후 상조에서도 장례를 도와주기 위해 사람이 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장례식장에는 아버지의 영정사진이 걸리고 어느새 나는 상복을 입고 아버지 앞에 서있었다.

상복을 입은 나의 모습과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니 그제야 아버지의 죽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아... 이제 아버지는 갔구나... 더 이상 볼 수 없구나...'


그렇게 아버지는 갔다. 아주 먼 곳으로.

아들과 딸, 손주들을 마음에 품은 채 머나먼 곳으로 가고야 말았다.

그렇게 강인했던 김 형사, 나의 아버지는 가버렸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고 납골당에 아버지를 모실 때까지 나는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토록 미워하고 싫어하던 아버지였는데... 정말 이렇게 까지 눈물을 흘릴 줄 몰랐는데...

가족 어느 누구보다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건 바로 나였다.

미움도 사랑이라면 아마 내가 아버지를 가장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메모가 있다.


- 아버지 -

사랑보다는 미움이 더 컸던 존재.

그래서일까?

원망보다는 그리움이 더 커져간다.


잘 가요, 아빠라고 외치지만 나는 오늘도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전 23화 아빠, 잘 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