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몇 번의 컬쳐 쇼크를 느꼈다. 첫 번째 컬쳐 쇼크는 출근 첫 날, ‘언니오빠’와 함께 왔다. 직장에서는 으레 존댓말을 쓰고, 직함이나 존칭으로 서로를 부르는 것이 내 상식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무실은 정말이지 ‘가족’같았다. 실제로 언니, 누나, 형, ~~야 등의 호칭이 쓰이고 있었고, 반말을 할 때도 많았다.
근무를 하면서 지켜보니, 공무원은 근속연수가 긴 편이라 오래 근무하면서 친해지는 사람도 많고 편해져서 호칭이 파괴되는 듯했다. 한두 다리 건너면 동네 친구, 학교 선후배인 지역 사회의 특성도 한몫 했다.
그래도 그렇지, 다니다가 친해진 것도 아니고 초면부터 ‘언니오빠’는 좀……. (게다가 그 말을 하신 분은 나만한 나이의 딸이 있는 아저씨;;)
두 번째 컬쳐 쇼크는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팀장님이 나를 “박 주사”라고 부른 것이다.
내가 ‘주사’라니. ;;
본래 주사란 ‘행정주사’의 준말이다. 6급 공무원을 행정주사라 하고(지방공무원이니까 지방행정주사) 7급 공무원은 행정주사보, 8급 공무원은 행정서기(‘면서기’라는 말의 유래), 9급 공무원은 행정서기보 등 각각의 직위 명칭이 있다.
꼭 6급 공무원이 아니라도 공무원을 보통 주사라고 부르곤 한다. 6급 이상이 되면 팀장이나 과장 등의 보직을 받지만 그 전까지는 따로 보직이 없어 부를 말이 마땅치 않다. 공식적인 직함은 ‘주무관’이지만, 워낙 옛날부터 주사라는 표현이 관행적으로 굳어져서 그런지 공무원들끼리는 서로 주사라는 호칭을 가장 많이 쓴다.
곧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관공서라고는 여권 만들 때밖에 안 가봤던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하고 낯선 호칭이었다. 주사라는 단어에서는 행정의 냄새가 물씬했다. 시골 면사무소, 등본과 지장 찍는 인주, 갱지에 인쇄된 민원발급신청서 양식 같은 것들.
그렇게 나는 ‘박 주사’가 되었다. 직급도 보직도 없는 프리랜서 작가였던 내가 ‘지방행정서기 8급(일반임기제)’가 된 것이다. 상당히 예스러운 느낌이 나지만, 새 출발과 함께 받은 새 이름인 셈이어서 싫지만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세 번째 컬쳐 쇼크를 겪게 된다.
“위이잉~”
조용한 사무실 한켠에서 들려오는 기계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그 소리는 언니오빠 발언의 당사자인 주사님 자리에서 나고 있었다. 주사님의 턱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전기면도기가 내는 소음이었다!
내가 뭘 잘못 봤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사무실에서 면도를 하고 계신 게 확실했다. 그분은 내가 퇴직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사무실에서 면도를 하셨다. 공공장소에서 손톱을 깎거나 카악, 카악 가래침을 게워내는 행동도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화장실도 아니고 사무실에서 면도를 하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무도 그 상황에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뭐라고 핀잔 한 마디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어리둥절해 있는 건 나뿐인 것 같았다. 웰컴 투 아재 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