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님의 연설문을 쓰게 되다
내가 일하게 된 곳은 시청 공보실이었다. 사기업으로 치면 홍보실인 셈이다. 관공서의 정책을 비롯한 중요한 소식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언론에 대응하는 부서다.
맡게 된 주 업무는 기관장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시장과 부시장 명의로 게재되는 각종 인사말씀과 낭독용 연설 대본을 작성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각종 축전, 초대장, 광고 문안 등을 작성하고 검토하는 등 글쓰기와 관련된 업무를 도맡아 했다.
연설문 담당이라고 하면 대통령 연설문이나 하버드 졸업식 축사처럼 멋지고 무게 있는 글만 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취임사, 기념사, 추도사, 신년 메시지 등 비중 있는 원고를 쓰는 일은 가끔이었고 사실은 시시한 글들을 쓸 때가 더 많았다.
어쨌거나 내가 맡아서 했던 일인데 시시하다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시시한 건 어쩔 수 없다. 각 읍면동과 자생단체별로 비슷비슷한 행사가 엄청나게 많았다. 체육대회, 한마음대회, 단합대회 등등등. 매년이나 격년, 혹은 반기별로 행사가 있었고 그때마다 행사 책자에 게재할 시장 명의의 인사말씀을 요청받았다. ‘사랑하는 ○○동민 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로 시작해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가득 깃들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로 끝나는 전형적인 인사치레용 원고였다.
지난번 행사와 달라진 건 없는데 그렇다고 글을 똑같이 쓸 수는 없으니 온갖 자료를 뒤적거리며 참신한 표현을 찾아 헤맸다. 많을 때는 한 달에 30~40건 이상의 원고를 써야 했는데 한 인간의 창의력에도 한계가 있어서 별 수 없이 짜깁기도 많이 했다.
별로 도전의식을 느낄 수 있는 일은 아니었고 큰 재미도 없었지만, 월급 받는 직장인이 된 만큼 맡은 바 업무에는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어디 직장이 자기만족, 자아실현 찾는 곳인가? 일하고 돈 받는 곳이지. 남의 돈으로 예술 하면 안 되는 법이라는 걸 잊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글밥 먹고 살아온 나에게는 시시하게만 느껴지던 원고가, 한 번도 제대로 된 글이라는 걸 써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높디높은 벽이었던 모양이다. 관련 부서의 요청을 받아서 필요한 지원을 해주는 업무다보니 감사 인사도 많이 듣고, 나이와 직급에 비해서는 존중을 많이 받으며 공무원 생활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