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공정했던 채용 절차
임기제 공무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채용 과정이 공정하지 못할 거라는 의혹이다. 임기제 공무원의 채용 과정은 서류와 면접이 중요하다. 필기시험 점수대로 줄 세워서 자르는 '원공'과는 달리 평가에 주관적 요소가 개입되기 쉽다.
시청에서 낸 채용 공고를 본 나 역시 의심을 품었다. 면접으로 뽑는 지방 공무원이라니, 백프로 내정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좁고 폐쇄적인 지역사회였기에, 외지 사람인 내가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닐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월급 200만원 버는 직장이 드문 시골에서 연봉 3500만원을 보장하는 자리였으니 붙기만 한다면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절차상 공고는 내지만, 결국 병풍이나 들러리가 되기 십상일 거라고 생각하며 처음에는 지원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도 지원할 데가 없어서 일단 써보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원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도 갖가지 복잡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물론이고 서론, 본론, 결론을 갖춘 직무수행 계획서도 제출해야 했다. 어지간하면 온라인으로 제출하게 하는 사기업과 달리 직접 기관에 방문하거나 등기우편으로 접수해야 한다. 수입증지도 사서 붙여야 한다. 모든 절차가 지방공무원법을 비롯한 법령에 따라서 진행된다.
전공 조건이 있어서, 졸업한 지 3년이 넘은 모교 과사무실에 전화해 확인서까지 받아야 했다. 혹시나 하고 전화해본 과사무실에서 단 몇 시간 만에 일사천리로 서류를 처리해 보내주지 않았다면 나는 원서 접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총 열 가지가 넘는 서류를 며칠에 걸쳐 준비했다.
서류를 제출하러 시청 총무과에 갔더니 인사 담당자가 친절히 맞아주었다. 서류를 하나하나 확인한 후 다 됐다고 했다. 서류 제출 마지막 날 오전이었다. 몇 명쯤 지원을 했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벌써 열 명이 넘었다고 했다. 한 명을 뽑는 자리였다. 높은 경쟁률에 인사 담당자도 꽤 놀라고 있는 눈치였다.
나 말고도 지원자가 많다는 데에 왠지 안심이 됐다. 혹 내정자가 있다면, 최소한 혼자 바보가 되지는 않을 터였다. 친절한 인사 담당자의 태도도 왠지 믿음직했다. 부정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면접은 엄격하고 공정하게 진행됐다. 면접위원들은 간부급 공무원들로 구성된 내부위원들과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외부위원들로 구성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두 명은 시청의 국장님, 과장님이었고 다른 세 명은 대학 교수 등 외부에서 위촉해온 분들이었다.
공직자로서의 자세, 창의성 등을 평가하는 심사 기준도 명확했다. 지원자의 경력과 실력을 검증하는 진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맡게 될 일은 시장의 연설문 작성을 비롯한 홍보 업무였다. 합격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 원고를 작성할 것인가? 조직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다양한 글을 쓴 이력이 있던데, 어떤 종류의 글쓰기에 가장 자신 있나?
다섯 명의 면접위원들이 평가 항목에 따라서 점수를 매기면 이를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지원자가 많아서 그랬는지, 동점자가 발생해 2차 면접을 치르기도 했다. 적당히 맘에 드는 사람 합격시키는 게 아니라 원칙과 절차대로 면접이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은 시청에 아무런 연줄이 없는 내가 합격했다. 언론을 전공했고, 수 년 간 글밥을 먹으며 살아온 결과였다. 내정자는 없었다.
흔히 공무원 시험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정한 시험’이라고 한다. 학벌, 나이, 성별, 스펙에 상관없이 오로지 시험 점수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속속 터져 나오는 각종 채용 비리 뉴스를 보고 있자면, 돈 없고 빽 없는 서민은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하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소수점 단위까지 계산해 줄을 세울 수 있는 필기시험과 달리, 평가자의 편견이 개입되기 쉬운 면접은 일견 불공정해 보인다. 실제로 많은 채용 비리, 입시 비리가 면접 점수 조작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걸 보면 의심도 무리가 아니다. 나 역시 의심했고, 내가 합격하지 못했다면 ‘분명 내정자가 있었을 거야’라며 계속 불신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임기제 공무원의 채용 과정이 불공정하다는 의심을 받는 건 전임자가 재임용된다 하더라도 5년마다 새로 시험을 쳐야 하는 절차 때문이다. 물론 전임자가 100% 재임용된다는 보장은 없고, 새로운 지원자의 실력이 월등해 전임자가 탈락하는 경우도 분명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기존 업무를 잘 파악하고 있는 전임자가 다시 임용된다. 이 때 특별히 연줄이 작용하는 것도 아닌데, 어차피 면접위원의 절반 이상은 일면식 없는 외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지원자 입장에서는 ‘병풍 신세가 됐다’ ‘역시 내정자가 있었다’는 식으로 채용 절차에 불신을 품게 될 수 있다.
내가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임용이 된 뒤, 마냥 사람 좋은 할아버지였던 당시 실장님은 사실 청탁성 전화도 많이 받았노라고 고백했다. 그런데 채용 절차가 투명해 임용 예정 부서의 부서장이라고 해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었다고. 특히 외부에서 위촉되는 면접위원이 반수를 넘기 때문에 더더욱 청탁이나 점수 조작이 불가능하다. 실장님은 "해 주려야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청탁을 끊어낼 수 있었고 그 덕에 외지인인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누구나 자기 경험에 따라 세상을 바라본다. 많은 이들이 면접에서 들러리가 된다거나, 낙하산에게 밀린다거나, 내가 왜 떨어졌는지 납득이 안 된다거나 하는 경험을 통해 사회를 불신하게 된다. 물론 일개 8급 공무원이었던 내가 모르는 채용 비리도 어딘가는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공무원 세계와 나의 첫 만남은 꽤나 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