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후, 남도음식 문화 변천사
한국은 근대 이후,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음식문화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1), 2)
1876년 2월 27일(고종 13년 음력 2월 3일) 조선과 일본 제국은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 영어: Japan-Korea Treaty of 1876) 또는 강화도 조약(江華島條約)을 체결한다. 다른 명칭으로는 한일수호조약(韓日修好條約) 또는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조약을 기점으로 조선은 문호를 개방하면서 개화기에 접어들었다. 사회 전반의 근대적 변화와 일제 강점기, 해방 등 급격한 사회적 변동을 겪으며 많은 변화를 맞이하였다.
일제강점기(1910~1945년)에는 일본 및 서양의 음식문화 유입으로 서양음식, 테이블 상차림, 식기 등이 조선 왕실을 중심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일반 대중들에게 전파가 되었다.
조선 왕실에서 외교 접대를 위해 서양의 음식문화를 수용하면서 본격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한 장의 그림을 통해서 그 당시 조선 근대의 음식문화를 유추해 볼 수 있다. 3)
이 그림은 한일통상조약 체결 기념 연회도이다. 현재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계미년 1883년(고종 20년)에 한일통상조약 체결을 기념한 연회가 열렸다. 임오군란이 발생한 이듬해로 서양식 연회 장면을 현실감 있게 그려져 있다.
참석자들을 살펴보면, 가장 상석 왼쪽은 조선 측 대신인 민영목이고 왼쪽으로 독일인 묄렌 도르프이다. 오른쪽은 일본 측 대신인 다케조에 신이치로이다.
상차림을 살펴보면, 가운데는 만두가 놓여있고 양 옆으로 대추찜, 메인은 생선요리로 추정이 된다. 테이블 세팅은 왼편 나이프, 포크, 오른편에 숟가락 2개가 보인다. 수프, 빵, 샐러드, 커피 후식 등 코스요리가 선보이고 있다.
130년 전 조선정부와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연회에 일본 관리가 좋아하는 서양식 상차림을 조선 정부가 받아들여 반영한 것으로 추정이 된다.
그 당시 일본도 서양의 문화가 유입되어 상류층을 중심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조선정부는 일본인들이 추종하는 서양식 연회를 준비한 듯 보인다.
1910년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는 호남평야 등에서 생산한 양질의 쌀을 목포항, 군산항 등을 거쳐 수탈해 갔다. 조선인들은 쌀밥이나 잡곡밥도 먹기 어려웠던 시절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의 음식문화는 서서히 한국의 식생활에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특히, 인공 조미료인 아지노모토를 통해 한국의 전통적인 조미료 개념이 변화를 일으켰고, 가정에서 만들어진 장류, 주류, 통조림 등의 가공식품이 식품공장을 통해 생산 및 유통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일본식 서양 음식을 경양식으로 소개되었고 레스토랑과 찻집이 생겨나면서 일부 계층에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는 한국의 음식문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서양음식을 받아들였던 양상이 지금의 한식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데, 알아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1) 이승은(2022). 텍스트마이닝을 활용한 근대조리서의 분석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 김현주(2000). 우리나라 외식산업의 구조와 현황.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3) 한식재단(2014). 한식문화총서 4 『화폭에 담긴 한식』
4) 한식재단(2014). 한식문화총서 3 『근대 한식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