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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헤미안 Jan 04. 2021

09. 나 홀로 떠나는 차박 여행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에 대한 로망이 격렬한 편은 아니지만 1년에 적어도 서너 번은 다닌 것 같다. 항상 아내가 함께 있었다. 최근에는 아내와 둘만의 여행이 잦지만 몇 년 전까지는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였다. 혼자서 여행을 다녀온 게 언제였을까 생각해보니 결혼 이후에는 기억이 없다. 사실 이번에도 굳이 혼자서 여행을 할 생각은 아니었고 휴가 일정은 있는데 아내가 시간이 안되어 혼자서 가볼까 한 것일 뿐이다. 


막상 혼자서 떠날 생각을 하고, 어디를 갈까, 어디서 잘까 하는 것들이 귀찮아졌다. 혼자 가는데 이런 걸 미리 정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고, ‘차박’이라는 근사한 감성 단어가 떠올랐다. 부랴부랴 조명 라이트와 비상식량을 구매했다. 목적지는 그냥 강원도를 작정하고 떠났다. ‘가는 길에 한적한 곳이 보이면 그곳에 차를 세우면 되겠지’라는 심산이었다. 


처음 방향은 별구경의 성지라고 알려진 육백마지기를 향했다. 하늘 밑에서 차가 가장 높이 올라간다는 곳.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 차마 형용하기 어렵다는 곳. 유난히 별을 좋아하는 중년 남자의 나 홀로 차박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차를 세웠다. 


눈 앞에는 태백산맥의 등줄기가 쭉 뻗어 흐르고 발 밑으로는 고랭지 배추밭이 정겹다. 사이사이 들꽃들이 제각각 흔들거린다. 아무도 없다. 오직 바람만이 스쳐 지나는 곳에 간이 의자를 놓고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음악에 귀를 열어둔다. 따사로운 햇살이 책장에 부딪혀 슬며시 땅 위로 내려앉는다. 배가 고프면 물을 끓여 비상식량을 먹고, 따뜻한 커피 향은 온몸을 나른하게 흔든다. 깊은 밤, 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향연에 취한다. 언제 이렇게 많은 별들이 만들어졌을까? 작은 곰자리를 찾고, 오리온자리를 찾다가 길게 흘러 바다로 향하는 은하수를 만난다. 실로 대자연이다.


둘째 날, 바다로 향했다. 가는 도중 아무도 없는 예쁜 강가에 차를 멈추고 차를 한 잔 끓여 마신다. 흐르는 강물을 그냥 쳐다만 본다. 재촉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두어 시간을 보낸 후 천천히 길을 나선다. 두메산골의 폐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차를 멈추고 돌아본 학교는 옛 시절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고 있다. 잡초가 무성한 운동장 가에 녹슨 철봉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지난 공간의 흔적이 꼭 안타까운 것만은 아니다.

 

동해 바다를 만났다. 처음 느낌은 어색함이었다. 혼자서 바닷가에 서 있어 본 적이 없었다. ‘나 홀로 바다’가 꼭 외로움이나 가슴 시린 아픔의 다른 이름인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깊은 밤 사람들의 소리가 씻겨간 모래사장에 혼자 누워 발 밑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모래성을 쌓던 기억이 떠오르고 밀려오는 파도의 끝자락에 발을 동동거리던 갓난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해변가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할 수 있는 차박의 묘미가 새롭기 그지없다.


여행은 추억을 회상할 수 있어 좋다. 혼자 하는 여행은 그 회상의 시간 내내 방해받지 않는 자유가 있어서 좋다.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내게 이번 차박 여행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보다 지나온 시간들을 조용히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한 번씩 정리를 하면 다시 치고 나갈 힘이 얻어지는 건 아닐까. 그래서 여행이 좋은 건가?


차박을 했더니 돈을 쓸데가 없었다. 잠은 침낭과 함께 차에서, 식사는 비상식량으로, 커피는 직접 끓여 마시기.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듣고 책을 읽거나 멍 때리는 일이 전부였던 여행. 


가끔은 이렇게 혼자서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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