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즈파크, 청도 오브제또, 가창 룰리
아이들이 크고 우리 부부끼리 놀러 다닌 지가 한참 되었다. 우리 둘의 관계가 나름 괜찮기 때문에 이런 시간이 허락되었으리라. 가정 자체가 불경스럽다고 생각만 해도 혼나는 이야기지만, 만약 애들이 없었다면, 만약 애가 한 명이었다면 우리는 더 행복하고 편안했으며 더 일찍 자신과 우리의 시간을 즐기고 살 수 있었을까.
아니다. 애들이 없었으면 우리는 없다. 둘이서 보내는 이 시간이 마냥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두 아이 키우면서 노심초사했던 십수 년의 시간들과 기억이 우리 부부의 관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주었다. 매 순간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함께 해결하고 극복하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 불가역적인 신뢰를 쌓았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애들에게 늘 고맙고 감사하다. 여느 가족처럼 감정다툼, 실랑이 등등 많은 일들이 똑같이 벌어지지만 그래도 애들에 대한 큰 바탕은 고마운 마음이다. 건강한 것만으로도. 존재만으로도.
이번 주는 작은 녀석을 데리고 하루를 꼭 보내자고 미리 얘기를 나눴다. 그전부터 토요일은 막내와 함께 멀리, 일요일은 둘이서 가깝게 주말을 지내자고 했지만 막내가 초등고학년이고 평일 학교학원에 지쳐 주말에 쉬고 싶다고 하니 우리 부부 둘이서 자주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요 녀석이 집에서 쉬면서 핸드폰을 너무 많이 보게 되었고, 핸드폰 과다시청으로 인한 부작용이 끊임없이 발생하게 되었다. 주말에 함께 있는 동안 초록을 눈에 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엄마아빠와 함께 보내는 추억도 만드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앞으로 될 수 있으면 주말 중 하루는 막내와 함께 하고자 한다.
이번 주 토요일은 예매해 놓은 야구경기가 있어 부부 둘이서 움직이게 되었다. 한화가 대구에 오는 날은 별일 없으면 삼성라이온즈파크로 향한다. 삼성이 요즘 너무 잘해서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부럽다. 우리 한화는 순위가 점점 내려가서 꼴찌와 반게임차다. 그래도 우리는 보살팬이니까 괜찮다. 좋은 인성으로 최선을 다하면 된다. 말도 안 되는 아마추어 플레이만 안 나왔으면.
금요일 경기는 크게 졌는데 우리가 방문한 토요일 경기는 박빙이다. 치어리더 근처 자리라서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고 율동을 따라 한다. 아내는 정말 신나 보인다. 나도 치어리더가 예뻐서 신난다. 사람이 많아 음식사기가 어려울 것을 예상에 집 근처에서 맥도널드세트와 삼각김밥을 사 왔다. 야외에서, 특히 야구 보러 와서 먹는 음식은 맛이 기막히다. 당구장에서 먹는 짜장면과 견줄 정도로 맛이 좋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동안 경기를 기어코 경기를 역전시키고 승리를 눈앞에 두는 듯했다. 하지만 동점홈런과 끝내기 홈런을 맞고 한화는 짜릿하게 경기에서 패배한다. 그래도 대부분의 관중이 삼성팬들이고 다수의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보니 이것도 괜찮다. 졌어도 끝까지 따라붙어 역전까지 시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오늘 경기 관전은 만족스럽다.
경기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버스에는 삼성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가득 차있는데, 한화유니폼을 우리를 보는 눈이 북한사람을 보는 눈과 비슷하다. 처음 보는 다른 세상 사람을 보는 눈빛이다. 게다가 끝내기 역전패까지 당했으니 뭔가 애처로운 눈빛까지 포함되어 있다. 옆쪽에 앉아있다가 몇 정거장 앞에서 내리는 젊은 삼성 여성팬이 버스계단을 내리기 바로 전에 내 눈을 딱 쳐다보고 내린다. 궁금했나 보다. 어떤 표정인지. 울고 있지는 않은지.
다음날이 되어서는 막내와 함께한다. 막내가 좋아하는 청도의 파스타집으로 이동한다. 오브제또라고 하는 브런치 카페인데, 이 집 토마토파스타를 참 맛있게 먹는다. 우리 부부도 까르보나라와 아보카도샐러드를 시켜 맛있게 아점을 만끽한다. 토마토파스타는 소고기가 듬성듬성 들어가 담백하다. 까르보나라는 일반적인 맛이고 아보카도샐러드는 건강한 재료의 건강한 맛이다. 이곳은 건물도 예쁘고 창밖으로 보이는 전망도 압권이다. 아름답고 환한 홀에서 오랜만에 셋이서 추억을 만든다. 큰애도 이곳을 좋아하는데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어쩔 수 없다. 공부 열심히 해 잘 마무리하고 난 뒤 우리 넷이 함께하는 더 좋은 시간이 곧 오리라 믿는다.
아점 식사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아이스크림으로 꼬셔서 가창의 룰리라는 카페에 들러 디저트와 함께 숙제를 마무리시킨다. 아내는 숙제를 봐주고 나는 주중에 읽던 '법구경 마음공부'라는 책을 마저 읽는다. 마음을 내려놓고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평생의 과제다. 아이가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할 것을 하니 본인도 기분이 좋은지 집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빠르게 숙제를 마치고 자기만이 시간을 갖는다. 아내도 다이어리를 적고 폰을 보며 영혼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홀짝홀짝 마셔댄다. 비염 있으셔서 따뜻한 걸로 드시라 해도 얼죽아라 말씀하신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휴일 오후의 여유로움을 만끽한다.
좀처럼 나오지 않으려고 하다가 함께 나들이해 준 막내, 다음에도 주말에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자고 약속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래봤자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안다. 엄마아빠 따라서 이렇게 함께 돌아다닐 수 있는 시기가 끝나간다는 것을. 우리 부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민첩하게 이동해 이것저것 보고 걷고 먹고 느끼는 것도 좋다. 그러나 오늘 나들이는 부부의 존재이유인 막내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 우리 애들이 있어서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사는 거였다.
그 행복으로 여기까지 온 거다.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