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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감상] 염소의 주사위, 김경욱 作

단편에 대한 단편

by 오로지오롯이


『염소의 주사위』는 김경욱 작가가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소설집에 실린 단편 중 하나로,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과 삶의 불확실성을 다루고 있다.


작품은 ‘염소의 주사위’라는 상징을 통해 우리가 선택할 수 없거나 예측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하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며, 일상 속에서 겪는 소외감과 불안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것이 특징.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 속에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느꼈을 법한 삶의 의미와 갈등이 녹아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깊은 사유를 이끌어낸다.



작품 스타일


김경욱 작가는 인간 내면의 복잡한 심리와 일상의 불안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작가다. 그의 글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히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자주 활용해 표면 아래 숨겨진 감정과 사유를 끄집어내곤 한다.


때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면서도, 그 안에 담긴 삶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읽으면 마음 한구석이 무겁거나 편안해지기도 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그 무게감이 오히려 위로가 되기도 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경험하게 만드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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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 中 [염소의 주사위] 감상


복수의 서사와 줄거리 개요


이 소설은 복수의 테마를 가지고 서사를 이끌고 있다. 그 복수의 대상은 광주에서 동생을 처참히 살해한 염소라고 칭하는 인물이다. 주인공은 그 염소에게 복수하기 위해 염소를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복수의 기회를 잃고 방황한다. 그래서 그 기회를 앗아간 택시기사에게 또 다른 복수를 하기 위해 출발하며 결말을 맺고 있다. 간략히 줄거리를 나열해보면 이렇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작가가 만든 장치는 무엇이며, 단서는 무엇인지 파악해보는 일이 꽤나 재미 있었다.



주사위: 서사를 이끄는 상징적 소품


첫 번째, 주사위. 주사위는 이 소설 전반에 나타나는 가장 큰 소품이다. 그 주사위는 동생이 항상 가지고 다니던 장난감이었고, 동생을 죽이게 한 흉기이기도 했으며, 염소와 주인공의 게임을 위한 준비물이기도 했다. 주인공은 이런 주사위 트라우마를 통해 짝수와 홀수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었고, 결국 변해가는 주사위의 의미에 따라 서사를 진행시킨다. 결국 이 소설은 이 주사위라는 소품이 서사를 이끌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런 주사위라는 상징을 통해 숫자와 인생 사이에 있는 게임을 그려낸다. 그것이 이 소설에서는 복수극으로 드러난다.



복수의 의미와 주인공의 내면 심리


두 번째 주목한 부분은 과연 주인공은 무엇을 위해 복수를 하려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사내는 실직을 하고, 아내와 딸들에게 무시를 당하며 무기력해지는 찰나 염소에게 복수하기 위해 떠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 주인공은 이미 여러차례 염소를 찾아갔지만 죽이지 못한 전과가 있었다. 그런 주인공이 실직한 후에 환청을 느끼며, 좀 더 예리한 마음으로 염소를 찾아간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엇 때문에 복수의 기회를 빼앗고, 복수의 의미를 퇴화시키는 인물, 사회, 종교에 대한 원망을 가감없이 표출하는 것일까. 필자는 그것이 염소에 대한 복수가 아닌 주인공 자신에 대한 복수로 보았다.


즉 주인공은 자신이 자살하기 위해 복수의 대상을 찾았던 것이다. 주인공은 칼과 청산가리를 가지고 염소를 찾아간다. 칼로 염소를 죽이고, 청산가리로 자살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복수할 기회를 놓치다가 갑자기 염소를 찾아가 복수에 목숨을 걸고 있는 행태를 생각해보면 화자는 전에 염소를 찾아갈 때와는 다르게, 염소의 목숨에 자신의 목숨도 걸었다. 즉 자기가 죽고 싶기 때문에 자살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복수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 복수의 과정을 통해 자신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주인공은 자기 자신에게 복수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 자살을 가장 타당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동생을 죽인 놈에 대한 복수가 가장 적절하지 않았겠는가. 즉 칼은 죽기 위한 명분, 청산가리는 죽기 위한 수단이었다.



작가의 묘사와 비유, 그리고 모순적 상황


그밖에 느낀 것은 소설 초반 염소라는 단어가 튀기 때문에 집중이 될 수밖에 없는데, 정보가 부족하여 답답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 그러나 후반부에 적절한 설명과 상황 묘사로 그 우려를 해소했다고 판단된다. 또한 "표범이 가젤을 어떻게 추격해 목덜미를 물어뜯는지. 표범의 가젤이 어떤 관계가 된단 말인가. 관계가 없으면 죄의식도 없다."라는 표현 같이 관계라는 의미를 사냥과 동물에 비유하여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집중할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능숙했다. 또한 전체적으로는 가족을 등지고 가족을 위해 복수하는 모순적인 상황과 태도가 소설 전반에 매끄럽게 소설적으로 잘 그려졌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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