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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감상] 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作

단편에 대한 단편

by 오로지오롯이


편혜영의 두 번째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는 2007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으며, 도시인의 평범한 일상에 도사린 불안과 폭력을 포착하며, 작가로서의 세계관이 확고해지는 문학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이 소설집은 총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등장인물들은 전원주택에 사는 소시민, 택배기사, 여행을 꿈꾸는 연인, 승진을 노리는 회사원 등 매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너무도 익숙한 공간과 삶이 역설적으로 가장 괴기스러운 무대로 전환된다. 비극적이고 역동적인 사건 대신에 조용하고 일상적인 풍경이 갑자기 균열을 일으키며, 공포는 서서히 스며든다.


그것은 폭발하는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 언제든지 붕괴할 수 있다는 불안의 감각을 일깨우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이 악몽 같은 일상의 포착은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감각이자, 편혜영 소설의 독특한 힘이다.



작품 스타일


편혜영의 문체는 격렬한 감정의 분출이나 서사적 과장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마치 통계 수치처럼 건조하고 평면적인 문장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러한 문장은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을 강하게 몰아붙이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독자에게 묘한 긴장감과 정서적 불안을 유도한다. 감정을 절제하고, 의미를 최소한으로 드러내며, 차가운 단어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배열함으로써 무감하지만 섬뜩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같은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감정적인 몰입보다는, 마치 임상실험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서사를 따라가게 만든다.


이러한 스타일은 편혜영이 다루는 주제와 맞물리며 더욱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그녀의 소설에서 묘사되는 일상은 단단하게 구축된 현실처럼 보이지만, 실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취약한 균열을 안고 있다. “아무 일 없이 보이던 일상이 사실은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는 인식은 편혜영 작품의 핵심 정서다. 무언가 ‘벌어질 듯 말 듯’한 긴장, 혹은 ‘이미 벌어졌지만 아무도 인식하지 못한’ 공백은 그녀의 서사를 통해 서서히 드러난다. 이런 면에서 그녀는 일상이라는 공간 안에 은밀히 잠복해 있는 불안과 파괴의 가능성을 포착하는 ‘소극적 비극’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수록작 中 [사육장 쪽으로] 감상


사육장: 실체 없는 억압의 상징


이 소설의 대표적인 공간은 사육장이다. 내가 본 사육장의 두드러진 상징은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작품 안에서 이 사육장은 실체가 없으며, 오히려 그 비물질성이 현실의 억압 구조를 상징한다고 보았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협적인 이 공간은, 인간이 만든 허구적 질서와 권력이 어떻게 삶을 조작하는지를 드러낸다. 다시 말해, 사육장은 실체 없는 규칙이 만들어낸 무형의 감옥이다.

작가 편혜영은 『사육장 쪽으로』를 통해 인간 사회의 구조 자체가 하나의 사육장이며, 길들여지고 소비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공간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규정하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병원: 무기력하고 억압적인 일상의 얼굴


사육장과 함께 소설의 또 다른 주요 공간인 병원은 억압과 무기력의 상징이다. 병원이라는 장소는 치유를 위한 공간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오히려 정체되고 소외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병원 안에서의 인간은 고유성을 잃고, 익명의 환자가 되며, 개별적 존재가 아닌 하나의 상태로 전락한다. 이처럼 병원은 비인격화된 일상 공간으로 묘사되며, 사육장과 함께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구조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얼굴 없는 인물들: 익명성과 소외의 초상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어디에나 있을 법하지만, 구체적인 얼굴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철저히 익명적이며, 아이라는 존재조차 특정하지 않고, 그저 소비되는 약자로 제시된다. 이는 단지 아이뿐 아니라 모든 인물이 약자임을 암시한다. 인격은 점차 사라지고, 인간은 그저 소모되고 교체되는 부품처럼 여겨진다.

노모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녀는 감정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방식으로 행동하며, 비정상적 가족 구조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 구성은 소설 전체에 비현실적이고 괴이한 분위기를 던져주며, 독자를 낯선 감각 속으로 끌어들인다.



문명화된 공포: 부품화된 인간과 기괴한 자연


작품 속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은 괴기스러운 사건 자체보다도, 인물들이 보여주는 비인간성과 문명화된 자연에서 비롯된다. 이는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세계에서 오히려 인간의 존엄이 무너지고, 본능조차 억제되며 기계적인 존재로 환원되는 부품화된 삶의 모습이다.

인간적인 온기나 개별성이 사라진 이 세계에서, 진짜 두려움은 외부가 아니라 오히려 내면에서 길들여진 인간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제된 문장, 단문 속 깔끔한 흐름


문장 구성에서는 특별히 두드러진 기교는 느껴지지 않았다. 단문을 중심으로 깔끔하게 서술된 문체는 읽는 데 거침이 없으며, 형식적인 제약보다는 내용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전개되는 느낌을 준다. 이는 작가의 문장이 감정을 부각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오히려 그 담담함으로 인해 독자에게 차가운 여운을 남기게 만든다.



발전 없는 일상의 순환


소설의 플롯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일상과 비일상의 반복 구조다. 일상에서 벗어난 충격적인 사건(예: 개에게 물린 아이)이 발생해도, 인물은 정신적으로 성장하거나 삶을 반성하지 않는다. 결국 다시 처음의 일상으로 되돌아오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는 작가가 새로운 일상의 가능성조차 제시할 수 없음을 말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변화 없는 순환은 마치 폐쇄된 고리 같아, 삶은 암울한 상태로 되풀이된다. 인간은 그 굴레에서 벗어날 힘조차 갖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해학 속의 공포: 웃음은 독자를 방심하게 한다


작품 속에는 ‘도살’, ‘피 냄새’ 같은 기괴한 단어들이 사용되지만, 이와 함께 코믹한 요소도 존재한다. 이러한 기괴함과 해학의 결합은 편혜영 작가 특유의 기법으로, 독자에게 일시적인 웃음을 유도하면서도 그 웃음 속에 섬뜩한 통찰을 숨긴다.

독자는 웃음 속에서 잠시 방심하게 되지만, 곧 다시 무력하고 변화 없는 삶 속에 빠져들며, 마치 이 소설을 읽기 전과 후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듯한 감각에 빠진다. 이 부분이야말로, 작가가 소설을 통해 던지는 문학적 아이러니이자 함정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에 대한 냉소와 통찰


전체적으로 이 소설은 폐쇄된 규칙 속에 내재한 삶의 기괴함과 암울함을 보여주며, 동시에 웃음이라는 해학적 장치를 통해 독자를 이야기의 핵심 깊숙이 끌어들인다. 삶의 비인간성과 반복되는 고통, 그리고 변화 없는 일상의 회귀. 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냉혹한 사실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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