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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감상] 은하수를 건너-클라투행성통신1

단편에 대한 단편

by 오로지오롯이


조현 소설가는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공상과학적 상상력과 동서양 문화의 융합을 바탕으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자신을 ‘클라투행성의 지구 특파원’이라 칭하며, SF와 문학, 철학을 넘나드는 실험적이고 감성적인 글쓰기로 주목받는다. 조현의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동서양의 역사적 상상력과 공상과학적 요소를 결합하여 독자에게 새로운 서사 경험을 제공한다.


그는 단순한 이야기 전달을 넘어 감각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를 탐구하며, 독자에게 깊은 사유를 이끌어낸다. 일상 속 사소한 것들에서 철학적 의미를 포착하고, 감성적·실험적 글쓰기를 통해 독자의 감정을 섬세하게 자극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작으로는 일상 속 사소한 것들에 대한 성찰을 담은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슬픔과 이별을 주제로 한 단편집 《새드엔딩에 안녕을》, 인간과 외계의 경계를 탐구한 장편 《나, 이페머러의 수호자》, 철학적 사유와 감성을 담은 산문집 《루카치를 읽는 밤》 등이 있다.


조현의 작품 세계는 단순한 플롯 전개를 넘어, 독자로 하여금 존재와 삶에 대해 사유하게 하고,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경험하게 하며, 감각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문학적 깊이를 전달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현대 한국 문학에서 독창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를 겸비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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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 中 [은하수를 건너-클라투행성통신1] 감상


장르와 주제의 규정


먼저 이 소설의 장르를 규정짓고 시작해보자면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는 과학 환상적이지만, 주제적으로는 꿈과 기억이라는 테마를 차용한 경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작가가 흥미롭게 풀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가독성이 있었던 작품이라 판단된다.



주인공과 자각몽의 활용


이 소설의 주인공은 지구와 클라투행성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비현실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주인공은 루시드 드림, 즉 자각몽이라는 환상 속을 통해 클라투행성과 연계되고, 그곳에서 의뢰한 것들을 해결하려 한다. 그 꿈들은 주인공이 오랜 훈련과 경험으로 만들어가는 환상의 세계이다. 또한 평범한 꿈이 아닌 자각몽이라는 소재는 독자들을 손쉽게 무의식으로 이끌 수 있는 좋은 소재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자각몽은 비현실에 현실을 도입하고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에서 소설을 진행시킬 수 있게 만든다.



상상과 존재의 개연성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꿈에서 어떤 소설 작품이라는 또 다른 픽션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명제를 남긴다. ‘상상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 즉 상상은 존재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고, 그것이 아무리 낮은 가능성이라도 수많은 평행 우주 중에서 어느 우주에서는 이뤄질 수 있는 개연성의 사건으로 인정시킨다. 이러한 평행 우주 이론을 통해 모든 상상과 비현실을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현실로 규정시킨다. 이 과정에서 비현실과 현실의 차이는 뭉개지고 뒤섞여버린다. 환상적인 소재로 이끌어져 왔던 소설이 주인공의 이러한 고백으로 현실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규정은 이 소설을 환상 소설이 아닌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변환시키고 있다.



발자크와의 문학적 유사성


마치 이러한 이 소설의 색깔은 발자크의 소설과도 닮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발자크는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영적인 현상들의 풍성함에 압도되었고 인간희극을 쓰기 오래 전에 이미 이 거대한 카오스를 외면적인 질서로 바꾸고, 그것을 주제별로 혹은 법칙에 맞게 분류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발자크는 환상적인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초자연적인 환상에 빈번히 현실의 논리를 개입시켰다. 즉 환상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안고 환상도 현실의 논리로 부연 설명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현실과 환상의 병치 사례


예를 들어 발자크의 ‘멜모스’에서 은행의 업무 시간이 마감된 후 보안이 된 방 안에 혼자 남아 비밀스럽게 서류를 위조하고 있는 카스타니에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장면은 멜모스가 시공의 제약을 초월할 수 있는 환상적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강조된다. 하지만 그 뒤에는 방 안의 난로가 발산하고 있는 가스에 중독되었기 때문에 보이는 허깨비일 수도 있다는 암시가 함께 곁들여진다. 카스티에게만 들리는 신비로운 목소리도 마찬가지인데, 그것은 멜모스의 목소리지만 카스타니에 양심의 가책이 만들어낸 목소리이거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는 내적 갈등이 빚은 소리라고도 해석할 수 있도록 정황이 설정되어 있다. 즉 발자크가 현실과 환상의 끈을 계속 이어가려는 리얼리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조현 소설 속 현실과 환상의 혼합


조현의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평행 우주 이론을 바탕으로 소설의 내용뿐만 아니라 이 소설도 어딘가에 있을 현실로 인식시키고, 작가 스스로도 다른 누군가의 소설이나 상상으로 존재한다. 이 소설은 엘리베이터 양쪽 벽에 붙은 거울처럼 반복하며 현실과 상상을 서로 동시 투영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상상을 전우주적인 실존으로 확장시킨다.



환상적 현실의 매력


이런 환상을 환상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이해하도록 여지를 남긴다는 점이 이 소설의 색깔이며 매력이다. 환상을 침범하여 그것을 변질시킨 것이 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속성 그 자체가 환상적이 된 것이라는 발자크의 태도와 이 소설은 닮아 있다. 꿈도 현실로 존재시키는,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화자가 겪는 삶과 우주의 상대성, 꿈과 현실의 상대성이 이 소설을 통해 선명히 그려지고 있다. 그 선명함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가 지워지고 섞여 가는 새로운 색깔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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