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에 대한 단편
김이설의 단편집 『오늘처럼 고요히』(2016, 문학동네)는 작가 등단 10주년을 기념하며 발표한 두 번째 소설집으로, 그의 문학 세계를 집대성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각 작품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상실과 고통, 그리고 그로 인한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탐구한다. 특히 「흉몽」은 가족 내 폭력과 그로 인한 인물 간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설집 전체의 주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히며, 사회적 현실과 개인의 내면을 깊이 있게 조망한다.
김이설의 소설에서 평범한 인물들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고통과 부조리한 상황을 통해 삶의 어두운 면과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문학적 의미 측면에서 『오늘처럼 고요히』는 단순한 단편 모음집을 넘어, 삶의 어두운 면과 인간 내면의 복잡함을 세밀하게 포착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인물들을 통해 상실과 고통 속에서도 현실을 마주하게 하고, 독자 역시 편안함보다는 불편함 속에서 사고하도록 만든다. 소설집의 제목처럼,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는 일상 뒤에 잠재된 내적 소란과 갈등, 불안과 긴장은 소설 전반을 관통하며 읽는 이를 작품 세계에 몰입하게 만든다. 결국 『오늘처럼 고요히』는 김이설의 문학적 세계를 이해하고, 그의 작품이 전달하는 현실적 무게와 인간성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소설집이다.
작품 스타일
김이설의 문학 세계는 현실과 인간 내면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데 강점이 있다. 그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불안, 고통, 상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부각시킨다. 지나친 감정 과장은 피하면서도 반복적이고 간결한 문장을 통해 인물들의 심리적 긴장과 좌절을 독자에게 전달하며, 읽는 이가 직접 그 감정을 체험하게 만든다.
특히 김이설의 작품에서는 가족 내 폭력, 세대 갈등, 실직, 신용불량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이러한 사회 구조적 모순 속에서 개인이 겪는 무력감과 분노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그는 현실적 고통을 단순히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내적 갈등과 선택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에게 몰입과 공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또한 그의 문체는 간결하면서도 여운이 깊어, 작은 사건이나 일상적 장면 속에서도 인간 존재의 불안과 절망을 압축적으로 느끼게 한다.
결과적으로 김이설의 소설은 단순한 현실 재현을 넘어, 인간의 내면과 사회 구조가 맞물려 발생하는 복합적 문제를 정직하게 드러낸다.
수록작 中 [흉몽] 감상
서러움이 모이는 장소: 이야기의 배경들
「흉몽」은 실패와 좌절, 상처를 공유하는 인물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아야만 하는 공간들을 배경으로 한다. 모텔, 돌아오지 않는 아들, 폭력적인 아버지, 정신적으로 무너진 남편. 모두가 삶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거나, 중심을 잃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세계는 빈곤이나 신용불량 같은 외형적 위기뿐 아니라, 감정적 고립, 말이 통하지 않는 소통 부재, 존재의 상처 같은 내면의 빈 공간이 뚜렷이 드러나는 무대다.
유일한 위로, 침묵의 교감
이 소설에서 주목할 부분 중 하나는 소통이 단절된 인간들 가운데 여자와 아들만이 서로에게 일정한 위로가 되는 존재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둘 다 말이 많지 않고, 완전히 열리지 않는 침묵 속에서도 서로의 상태(두려움, 상처, 고통)을 느끼며 위안을 얻는다.
“겁먹은 눈동자 … 어쩐지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세상을 피해 숨은 아들의 은신처는 내가 유일하게 편히 잠들 수 있는 방이었다.”
그들은 말보다 감각으로, 움직임으로 혹은 단순한 존재로 서로의 고통을 확인한다. 이 침묵과 동질감이 소설의 정서적 중심을 이루고, 이야기 속에서 가장 따뜻하면서도 불안한 지점이다.
극적 장치와 갈등의 배치
이야기의 중반 이후, 남편의 귀환, 핏 자국, 돈에 대한 집착, 주인집 사람의 폭력적 시도, 아들의 살인 및 누명 등 소설은 극적인 요소들을 연이어 배치함으로써 긴장감을 높인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자극적인 장치라기보다는 인물들이 몰려온 절망 상황이 폭발하는 순간으로 읽힌다. 그간 누적된 좌절과 불안이 어쩌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 혹은 공포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부분은 전체 리듬과 대비를 이루는 역할을 한다. 그 전까지의 수필적이고 반복적인 서술이 과도하게 지속되었다면, 이 극적 순간들이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일부 독자에게는 지루하거나 흐름이 무르익지 않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는 평도 가능하다.
수필적 서술의 장점과 한계
여성 화자의 내적 진술, 반복적 감정 표현(허망·억울·분함 등), 일상적 언어로 다가오는 무게감은 소설에 ‘생생한 현실감’을 준다. 독자는 그녀의 갈등, 분노, 절망을 가까이에서 듣고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스타일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감정 과잉 혹은 이야기 전개가 더디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고, 일부 자극적 사건들이 더 날카롭게 다가가기 전에 무게감에 눌려 버리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반복과 감정 진술 부분이 줄어들고 갈등의 흐름이나 인물의 변화가 조금 더 분명했다면, 소설의 힘이 더 커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목 ‘흉몽’의 이중성
제목 ‘흉몽’은 단순히 나쁜 꿈 악몽(惡夢)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다. 꿈처럼 잠깐이나마 현실을 잊게 해 주는 순간, 혹은 불가능해 보이던 관계와 위안이 이루어지는 순간도 포함될 수 있다. 여자에게 잠시나마 꿈 같았던 순간들은 남편의 귀환, 아들과의 교감 같은 것들이니까.
하지만 꿈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깨어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거나 더 나빠질 수 있다는 불안, 그리고 그 꿈이 오래 지속되지 않음을 아는 마음이 ‘흉몽’의 무게를 준다. 즉, 이 작품에서 ‘흉몽’은 위로와 절망,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상태,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이며, 동시에 여성 화자의 내적 삶 전체에 걸쳐 지속되는 감정적 불안정성을 상징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호불호와 나의 평가
이 소설은 읽는 동안 자주 마음이 조여지고, 불편해지고, 때로는 몰입하다가도 멈칫하게 만든다. 그만큼 현실의 날이 세고 아픈 면을 숨기지 않는 글이다. 나는 이 작품이 힘 있는 순간들인 극적인 충돌, 교감의 순간, 불안의 극대화를 분명히 가지면서, 동시에 수필적이고 반복적인 서술이 작품 전체 분위기를 유지하고 감정선을 쌓아가는 데 기여한다고 본다.
다만 그 반복이 너무 길거나 추상적으로 흐를 경우 독자의 집중이 분산될 수 있고, 극적인 순간들이 더 강렬해지기 위해서는 서사의 압축이나 장면의 대비가 조금 더 조율되면 좋았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