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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레!”
외마디 외침은 그의 얼굴에 진 수많은 가선보다도 굵었다. 또한 세월의 무상함을 안은 그 한마디는 인생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그윽한 상징이었다. 분명 할아버지는 나약해지고 있었으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지막 열기는 경외심을 불어 일으키는 데에 충분했다.
그때 여자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다. 마을에는 단오를 맞아 큰 굿이 열렸다. 시골에 놀러갔던 그녀는 남동생과 함께 엄마의 한복자락 안에서 그 광경을 신비스럽게 바라보았다. 일종의 마을 굿이었다. 강릉 단오굿은 주민들에게 축제와 같은 것이었다. 무당굿은 그 축제의 일부였지만 전체적으로 무속적인 느낌을 안고 있었다. 그 의식 속에서 할아버지는 주무(主巫)로서 성의를 보이고 있었다. 사실 할아버지가 노환으로 쓰러져 있을 동안 시골의 친척들은 은연중에 장례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허나 삼 일 만에 깨어나 내가 단오굿은 보고 죽겠다 하였기에 모두들 단옷날을 고대했다.
단오를 앞둔 어느 날, 일곱 살 난 여자아이와 그녀의 연년생 남동생은 마을의 숙연한 분위기도 느끼지 못한 채 서낭당 앞에서 술래잡기를 하였다. 서낭당 주변에 있는 돌무더기와 수목에 걸린 금줄 폐백 사이로 까치걸음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분명 앙증맞았지만 마을 어르신들이 보기에는 우려스러운 행동이었다.
“야 이놈들아, 성황당 앞에서 그리 까불면 촌락의 수호신인 토지신이 너희 땅과 집을 지켜주지 못하고, 성황신이 귀신도 쫓지 못하고, 여역신이 느그들 병도 못 막아줄게야!”
남매는 할머니들의 불호령에 사시랑이가 되어 어리둥절해했다. 술래잡기는 일순간 종료되었고, 누나는 동생의 손목을 잡고 돌무더기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뉘집 손(孫)들이냐 이리와서 네눈박이랑 놀그라. / 네에! 아이들은 한 할머니의 외침에 씩씩하게 대답하곤 강아지에게 달려갔다. 총총 뛰어노는 아이들과 강아지들이 세상에서 가장 정겨운 모습을 연출해냈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굿에 관한 담화를 나누느라 그 광경에는 무심했다. 일단 굿 날짜가 잡혀지면 마을은 엄격한 금기에 들어가야 했다. 꼬부랑 할머니는 마을 입구와 서낭당에 금줄 쳐 잡인의 출입을 막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뼈 꼬챙이에 얇은 푸석살을 덮어놓은 것처럼 강파르고 위태로워 보이는 할머니도 옆에 있는 개들에게 한 마디를 풀었다.
“니놈들이 애새끼를 가져서 잘못되기라도 하믄 굿하는 데 부정타니께 낮거리는 나중에낭 흐그라. 살맛 좀 못 느껴도 사는 데 문제없자능. 알갔냐?”
연륜이 묻어나는 소리에 개들도 경청하는 듯 보였다. 마을에 초상이나 해산이 있으면 굿을 뒤로 미루어야 했다. 한낱 똥개라 하더라도 뱃속에 새끼를 배면 굿에 부정 탈까 걱정스러웠던 것이었다. 이러한 움츠림은 나중에 굿판이 벌어졌을 때 더 큰 에너지로 작용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곧 마을 전체를 새로운 생명력으로 활기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이들은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 저녁놀의 거대한 신호등의 불빛을 보았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곧장 외갓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먼저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할아버지는 단오가 코앞인데도 깨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구들더께처럼 누워 있는 노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직감에 뭔가 심각한 일이 일어났음을 눈치 챘다. 누나는 남동생에게 이제는 조용히 방에 앉아 종이접기나 하자고 했다. 하지만 남동생은 서낭당의 오색 빛을 그리워하고 있던 것 같았다. 누나는 결국 색종이를 꺼내 들어 가위로 이리저리 재단하여 여러 가지 색을 오려붙였다. 그제야 동생은 만족하였다. 누나도 초록, 빨강, 파랑, 하양, 노랑이 뒤섞인 조각보를 보며 알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
굿을 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딸은 아버지가 분명 단옷날에는 깨어날 것이라 확신했다. 딸은 무당을 부르고, 이웃들과 온 마을을 청소하고, 굿당을 정리하고, 이웃을 청하고, 음식을 장만하여 전물상을 차리는 등 주도적으로 의식을 준비했다. 물론 무속은 그녀에게 살가운 존재였었다. 허나 너나들이는 되지 못하였었다. 그녀도 어릴 적에는 이런 굿판이 하나의 신비한 놀이일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보이지 않은 신은 부모보다도 나약하고 하찮은 존재였다. 그런 그녀가 이제 와서 굿판을 주동으로 벌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신보다 위대한 아버지가 시르죽은 목소리로 창부신과 한바탕 놀다 가겠다고 하였음이라.
단옷날 아침, 일찍부터 마을의 장정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는 남정네들의 얼굴에는 어딘가 모르게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그 비장함의 날카로움을 느꼈는지 할아버지는 의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마루까지는 장정 넷이 애면글면 안아들다시피 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가 신발을 신고 나서는 휘장걸음으로만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는 몰랐다.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은 묵묵히 할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굿이 성대하게 시작되었다. 도당에서 굿을 하기 전에 풍물패들이 할아버지를 모셨다. 그렇게 마을 돌며 떡과 과일을 고수레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허리와 팔죽지를 움켜잡았던 장정들의 힘은 점점 더 불필요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그 스스로 걸음을 이어갔다.
“가내 두루두루 평안하시오. 하는 일 모두 잘 되옵고. 우리 마을이 한해 평안하기를 기원하암니……. 고시레! 고시레!”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여자는 알 수 없는 심연에 빠져 눈물을 흘렸다. 닦고 문질러도 계속 흐르는 눈물이 마을 굿의 분위기를 해할까 너무나 걱정스러웠다. 비틀대는 저 앞의 노인을 생각하면 이 눈물 강을 타고 떠내려가 아버지를 털썩 안고 싶었다. 눈에 물이 고여 볼록 렌즈를 형성한 뒤에는 아버지의 보라색 마고자가 암청색 뒤섞인 그림자로 번졌다. 한복 치맛자락 속에서 아이들은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할아버지 음성과 풍물패들 장단을 듣보며 들썩댈 뿐이었다.
“고시레! 고시이…….”
할아버지는 결국 스러져 내렸다. 사람들이 달려가 안부를 살폈다. 아버지이! 외쳐 달음박질하여 다가간 여자는 아버지 품에 풀썩 안겼다. 아비 괜찮다 괜찮혀. 도당에 좀 데려다다오…….
이어 사람들은 도당에 다시 모였다. 시루떡, 과일, 대추, 약과, 돼지머리 등 정성껏 차린 음식을 도당 안에 모신 신에게 바친 뒤 본격적인 굿을 시작했다. 대금, 아쟁, 북, 징 등이 연주되어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스러진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홍천익을 입은 주무 김씨와 무당이 번갈아 부채와 방울을 흔들었다. 그들은 도당에 모인 사람들의 부정을 풀고 잡신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하는 ‘선부정'을 펼쳤다. 할아버지는 옆에 앉아 그 풍광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무당은 이미 망아의 상태로 들어섰다. 격한 음악의 반주에 따라 격렬한 춤을 추다가 흥분된 상태로 신의 강신 받은 모양이었다. 신의 덕을 입기 위한 무당의 노력은 일련의 엑스타시로 발전되었다. 방울 소리와 무악에 취한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존재를 잊어갔다. 무당굿은 상당히 전문적인 의례여서 일반인들은 굿의 자세한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허나 그 흥을 즐기는 건 한국인들의 특성이었다. 할아버지의 시선은 굿판에 고정되어 떨어지지 않았다.
오후에는 홍천익을 입고 붉은색 고깔을 쓴 무녀가 장수들의 힘을 빌려 액을 막는 군웅굿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굿이 절정으로 다다르면서 마을 사람들은 볼거리, 놀 거리에 넋을 빼앗긴 듯하였다. 무악의 울림에 맞춰 몸을 흔드는 할머니부터 소원을 비는 아낙네까지 모두 다 열성이었다. 굿의 궁극적 목적은 신과 인간의 만남에 있었다. 무당이 중요한 까닭은 신과 인간, 둘을 중개시키는 매개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무당을 통해 신과 만났고, 그 과정에서 희열을 풍겨냈다. 할아버지의 가족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안부보다 신과의 영접에 더 큰 관심을 드러냈다. 물론 아이들은 모든 것이 신기했고, 이상했다. 무당의 알 수 없는 몸동작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개그맨보다 웃긴 동작이었다. 그렇지만 웃음이 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악기와 방울의 엇박자에 생각할 타이밍을 계속해서 빼앗겼다. 남동생은 누나에게 “무서워.”라고 했고, 누나는 “재밌는 거야.”라고 말하곤 자신도 두려워했다. 누나는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에게 시선을 맞췄다. 그때 할아버지는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상념에 빠진 걸까. 할아버지는 오종종히 폭삭 늙었지만 눈초리가 처져 인자한 모습이었다.
“어르신!”
굿이 다 끝날 무렵이었다. 할아버지 주변에서 고함이 일렀다. 사람들은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부둥켜안고 엉엉대었고, 하나뿐인 딸은 자신의 아버지를 붙잡고 서럽게 흐느꼈다. 옆에서 무당은 그 상황을 볼만장만만 하며 몇 구절을 읊조릴 뿐이었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나꽃 진다 설워 마라
나꽃은 졌다가도 명년 삼 월 봄이 되면
잎도 나고 싹도 나서 나꽃 다시 되건마는
불쌍하신 망자씨는 한 번 아차 가게 되면
가는 길은 있건마는 오만 기약은 전혀 없네
진옷 벗어 내던지고 마른 온 갈아입고 왕생극락 옥경연화당
수구품 밑으로 일실성불 되옵시고 몰물되어 가옵시네
굿의 마무리. 뒷전에서 등장한 허수아비가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할아버지를 닮은 그것은 불에 활활 사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