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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극공의 하늘 (2편)

by 오로지오롯이 Mar 25. 2025


*

 명절이 가까워지자 날씨는 영하로 떨어졌다. 그 무렵 엄마는 우리 집에 와 있었기 때문에 시골집은 텅 비어있었다. 보름가량을 비워 둔 집이라 들어서면 썰렁할 것 같아 설날이 되기 전에 남편과 아들은 청소를 하러 미리 출발하였다. 남편의 부모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외여행을 떠난 터라 상관이 없었다. 올케를 데려와 차례 상에 올릴 갖가지 전을 집에서 부쳤다. 동생이 이번 명절에는 꼭 올 수 있도록 올케를 볼모로 삼은 것이다. 올케 이번만큼은 꼭 오게 만들어, 알았지? 사실 내 말투는 약간 앙칼진 것이 있어서 올케에게는 무언의 협박처럼 들렸을 테다. 올케는 눈치를 보며 휴대 전화를 꺼내 동생의 번호를 눌렀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뿜으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오랜만의 들어선 시골집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온기가 퍼져 나왔다. 엄마를 안방으로 모셔 놓고 나물도 삶고 무치고 다른 제수음식을 장만하였다. 동생이 도착한 모양인지 올케가 전화기를 들고 나갔다. 뒤를 언죽번죽 졸졸 따라가 동생을 끌어 잡았다.      


 “들어오면 되지 왜 전화를 해서 일하는 사람 성가시게 하냐.”

 “내일 아침 일찍 떠날 거야. 그렇게 알아.”   

  

 함께 저녁을 먹고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준비해 온 선물들을 엄마에게 풀어주었다. 엄마는 남동생이 준비한 잿빛 내복에만 시선을 보냈다. 남동생은 엄마를 응시하는 듯하더니 이내 마당으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 

     

 “담배 하나 줘? 왜 따라 나와.”

 “야, 너. 요즘에도 그 교회 나가? 계속 이상한 데 다니는 거야? 올케한테 다 들었어.”

 “……. 어디든 예수님 있는 곳이면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이제 상관하지 말랬잖아.”     


 남편이 슬리퍼를 신고 질질 끌어 오더니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남정네들끼리 오랜만에 담소를 나누라고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오랜 기찻길에 피곤했는지 잠잠히 잠들어 있었다. 엄마 옆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기로 하고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형광등이 켜진 방. 지친 모녀 위로 불빛이 떨어져 내렸다. 어떤 것도 아름다운 모녀의 정과 평화를 깰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등에 무언가가 걸렸다. 이불 속을 뒤적여 꺼내보니 따끈따끈한 구들장에 데워진 엄마의 통장들이었다. 


 우리가 보낸 용돈을 미련스럽게 모아두기만 하는 건 아닌지 궁금하여 통장들을 열어 보기 시작했다. 엄마의 비밀스러운 통장 꾸러미에는 출자금, 적금, 입출금 통장 서너 개가 나왔지만 돈이 많이 든 건 하나도 없었다. 뜻밖인 것은 남동생이 월 10만 원은 꼬박꼬박 넣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자식, 귀여운 구석이 있네. 그것을 제외하곤 나와 다른 친척들이 보내 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2008년 12월에는 며칠을 두고 10만 원, 15만 원, 108만 원이 계속해서 빠져나가 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무렵, 엄마가 내 뒤척거림에 깼는지 조용히 일어났다가 내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엄마 이 돈 빼서 뭐 했어?”

 “…….”

 “엄마, 설마 저번에 나한테 연락했던 그 의딸한테 준 거야?”

 “으응, 그래 맞다.”

 “굿을 한 거야?”

 “내가 죽다가 살아났다.”     


 몸이 안 좋아 그거 하고 괜찮아졌다는 것이다.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엄마에 대한 서운한 감정도 들었지만 그것보다 이 사실을 동생이 알면 또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동생은 의딸의 존재를 몰랐다. 그리고 그 사실은 영원토록 비밀로 지켜져야 하는 사항이었다. 동생이 이상해진 것은 아마 고등학생 때부터였을 것이다. 주말에 축구를 즐기러 교회에 가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이미 그곳에서는 유치부까지 돌보며 교회에서 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동생은 생각보다 독실한 신자였다. 학교 윤리 시간에 차례 상 준비에 관한 것을 배울 때에는 종교의 자유 비스무리한 것을 주장하다가 선생과 말다툼을 하였고, 그 이후 조상님 앞에서 몸을 굽혀 절을 하지 않았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동생과 지하철 출구 계단을 오르기 전이었다. 앞에서 큰 소리가 울려 올라가보니 두 중년의 여자가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한 여자는 교회 홍보물을 들고 있고, 한 여자는 위로 올라가면서 욕을 했다.


 “예수 믿으면 다 되는 거야. 예수 믿으면 알게 돼!”

 “헛소리하고 있네. 신 같은 건 너나 믿어.”     


 아마도 한 여자가 홍보물을 나누어주다가 올라가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고, 그게 귀찮았던 다른 여자는 성질이 폭발해 버린 모양이었다. 위로 올라가는 여자가 욕을 하고 올라간 후에 아래에 있던 아주머니가 민망했는지 상기된 표정으로 애써 크게 외쳐댔다.


 “예수 믿으면 다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할 겁니다!”     


 그때 동생이 그 아주머니 옆을 지나가면서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지막한 그 목소리가 내 가슴을 콕콕 찔러 자릿한 느낌을 받았다.     


 “아줌마. 그렇게 말하면 분이 풀리겠어요? 다음부턴 이렇게 말하시는 게 좋겠네요. 사탄을 숭배하는 쓰레기들아, 얼른 죽어서 지옥으로 꺼져라…….”     


 다행히 동생은 아직 남편과 맞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난 엄마를 한스럽게 바라보았다. 당신의 몸이 아프면 자식들한테 연락하기보다는 혼자 해결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그래서 의딸을 불러 굿을 했고 미신이지만 마음이 편해지고 병도 다 나은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엄마는 항상 굿의 리얼리즘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었다. 분명 엄마가 쏟아내는 단편적 경험들은 과학적이지 못한 것이지만, 엄마는 굉장히 사실적으로, 어느 때는 진실적으로 무속의 리얼리즘을 증명해 냈다. 종교 경험이라는 것이 감정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일이라 나는 고만고만한 그 이야기들을 너그러이 받아들였었다.      


 “엄마 의딸은 어디서 만난 거야?”     


 엄마는 가까운 절에 다니고 있었다. 병원을 찾아다녀도 아픈 것은 없어지지도 않아 자주 절을 찾아 부처님 앞에 절을 올리며 마음수련을 하곤 했다. 그러면서 절에서 자기도 했는데,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을 때, 한 여자가 다가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할머니 이불 좀 같이 덮어도 될까요?”

 “네 함께 덮어요.”

 “할머니 몸이 많이 안 좋으신 모양입니다.”

 “그걸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압니까?”

 “안 보고 어떻게 알겠습니까. 얼굴을 보면 알지요. 걱정이 많으시네요.”     


 이야기를 자꾸 하며 엄마의 마음을 다 빼앗아버린 것이다. 밤 열 시가 넘었는데 그길로 엄마와 함께 집으로 갔다고 한다. 돌아가신 우리 엄마를 닮아 의딸이 되고 싶어요./ 그러세./ 인연을 맺은 후 의딸은 자주 반찬을 사서 찾아오곤 했다. 그러면서 방책을 써야 한다며 엄마의 돈을 조금씩 빼 갔고, 급기야 큰 굿을 해야 된다고 하면서 108만 원이란 돈이 빠져나갔던 것이다. 언젠가 뉴스에서 무속인들이 시골에 사시는 어르신들의 돈을 노리고 접근해 가진 돈을 다 빼앗아갔다는 소식을 접해서인지 더욱 언짢아졌다.      


 “서운해.”

 “왜에?”

 “아프면 우리한테 전화를 해야지. 그 아줌마한테 전화를 받고 엄마를 데려오도록 해야겠어?”     


 최근에 엄마가 우리 서울 집에 올라온 것도 의딸의 연락 때문이었다. 엄마가 몸이 아플 때 의딸한테 전화를 해 방책을 해달라고 한 것이다. 마침 의딸은 집이 아닌 부산에 가 있어 찾아갈 수가 없었고, 그 사람은 우리 집으로 전화를 해 날씨가 춥고 제대로 드시질 못해 그러니 모시고 가라고 말했다.


 "굿이면 다 되는 줄 알아, 엄마?“     


 어린 시절 무속 문화에 대한 내 기억은 부정적인 면이 있다. 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식통에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희미한 의식으로 단오굿을 보고 죽겠다 했고, 엄마는 그날 밤 동생이 잠든 틈에 나를 데리고 서낭당에 갔었다. 이미 낮에 동생과 함께 놀다온 곳이라 못 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밤의 기운이 서린 서낭당은 낮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서낭당 가는 길은 좁은 듯한 언덕이었는데 나무가 양쪽으로 우거져 있어서 어두웠다. 정상 바로 못 미쳐 왼쪽에 서낭당이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갈 때는 습한 바람이 일었다. 서낭당은 내 키보다 더 높게 쌓여진 동무더기와 고목이었는데 이끼 옷을 입고 밑동이 서로 엉킨 늙은 나무의 늘어진 가지마다 오색 헝겊들이 매여져 있었다. 그 헝겊들은 대개 바래서 희끗희끗 곰팡이가 슨 것 같았다. 뭉개진 빗자루 토막처럼 보이는 회색 실 뭉텅이도 여기저기 묶여 있었다. 어쩌다 눈부신 실타래와 선명한 헝겊이 보이기도 했지만 낡은 헝겊과 새 헝겊이 뒤엉켜 있는 모습은 예정된 공포에 새 것을 더하여 더욱 무서웠다.


 서낭당을 지나면 고갯마루에 당집이 있었다. 작은 기와집은 마을을 내려다보는 자세였다. 그날 당집 앞마당에서 무당이 돼지머리를 놓고 굿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실 엄마가 자신도 두려웠는지 방패막이로 나를 데리고 간 것이다. 엄마의 허리춤과 팔 사이에 머리를 들이밀고 구경하는데 무당이 돼지 앞에서 칼을 휘두르자 엄마가 더 겁을 내면서 뒷걸음쳤다. 어린 나는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신이 벗겨지면서 뒹굴다시피 고개를 내려왔다. 그 후로는 동생과 서낭당 앞을 지나갈 때마다 그곳을 뛰어서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시무시했던 느낌만 선뜩하게 남아서 발보다 가슴이 더 급하게 뛰어 넘어지는 때가 많았다. 동생은 그런 나를 의아스럽게 쳐다보았다. 엄마는 그날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항상 보는 굿이지만, 왜 하는지 모르겠어. 너희 할아버지가 왜 평생 그토록 무속에 빠져 살았는지 알 수가 없어. 그런데 이번 마을 굿에 정말 아버지가 깨어난다면 엄마도 아버지 뜻에 따를 거란다.”     


 아버지 없이 우리를 키운 그녀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의딸보다 적었다. 한낱 무속인보다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동생은 이미 건넌방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남편은 놀러나간 아이를 찾으러 갔으니 지금쯤 두 손을 잡고 집으로 오고 있을 것이다. 문을 닫고 대청으로 나왔다. 동생과 엄마 사이에서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동생이 마루에 올려둔 담배 한 갑이 보였다. 오랜만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푸푸 내뿜는 연기. 그들의 방 하늘에는 그들의 신들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 서낭신……. 그들 사이에 있는 이곳의 하늘에는 무슨 신이 있을까. 예수가 있을까, 옥황상제가 있을까. 담배 연기는 사오 초 가량 날아갔다. 희미해져가는 담배 연기 속에서 얼핏 신의 형상을 본 것도 같았지만 금세 사라져버렸다. 한숨처럼 숨은 신은 다시 하늘로 날아갔다…….  


 그때 하늘에선 까치 한 쌍이 유유히 떠나니고 있었다. 깍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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