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 듯이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라마는 학교를 가더라도 교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라시크가 잘 있는지 확인을 할 뿐이었다. 집으로 데려가려 해도 라시크는 끊임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라마의 힘으로 불가능했기에 라마는 그저 라시크가 학교에서 잘 지내기를 바랄 뿐이었다. 까띠아르 선생님은 가끔씩 라마를 잡으러 왔지만, 그때마다 라마는 멀리서부터 미리 보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 사실을 안 아빠에게도 꾸중을 들었지만 라마는 더 이상 파티마가 있는 교실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까띠아르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라마는 아직 어려서 수업에 다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는 그런 라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스스로 교실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라마, 이제 곧 큰 비가 내릴 거야. 그 전에 라시크를 집으로 데려오렴. 아빠는 말했다. 하지만 라마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서 있었다. 아빠는 다시 말했다. 라시크가 물에 잠길지도 몰라, 집에 쌓아놓은 담벼락 아래로 데려 오자구나. 라마는 조용히 이불 속에 들어가면서 대답했다. 라시크가 내 말을 듣지 않아요. 많이 맞아서 아픈가봐요. 내일 한 번 더 물어볼게요. 라마는 잠이 들었고 아빠는 라마의 볼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라마는 꿈을 꾸었다. 라마가 있는 곳은 파티마의 집 앞이었다. 그런데 파티마는 라마를 보고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이제 곧 하산이 올 거야, 넌 도망치는 게 좋을걸, 라마? 파티마의 목소리를 마녀처럼 변해 있었다. 라마는 파티마에게 소리쳤다. 난 하산 형이 무섭지 않아! 그러자 파티마가 말했다. 그래? 이걸 보면 무서울 걸? 파티마는 어떤 접시를 들고 와서 라마에게 보여주었다. 고기였다. 라마는 어리둥절하며 다가오는 하산을 바라보았다. 하산은 말했다. 이게 뭔지 모르겠지? 바로 소고기야, 너희 마을에서는 절대 먹지 못하는 아무 맛있는 음식이지. 라마는 하산의 다리를 잡아 넘어뜨렸다. 그러자 하산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라마, 이게 무슨 고기일까? 네 친구, 라시크는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라마는 눈을 뜨자마자 얼굴에 흐른 식은땀을 닦지도 않은 채 밖으로 뛰어나갔다. 라마가 학교로 뛰는 동안 하늘에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라마는 어디선가 라시크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정문에 다다르자 라마는 라시크의 이름을 소리쳤다. 하지만 라마는 보이지 않았다. 점점 빗방울이 굵어지고 라마의 소리는 얇아지고 있었다. 그때 라마는 이슬람 마을로 향하는 라시크를 멀리서 찾아냈다. 라시크, 그쪽으로 가면 잡아먹힐 거야! 라마의 외침에도 라시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라마는 라시크의 앙상하게 야위어 있는 몸과 젖어있는 갈색 털을 바라봤다. 요즘에 잘 먹지 못해서 그런지 라시크의 몸에는 뼈가 툭 튀어 나와 있었다. 라마는 강가까지 라시크를 쫓아갔다. 강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파티마였다. 라마는 지쳐서 더 이상 뛰지 못했다. 라마는 파티마를 불러 그만두라고 했지만, 빗소리에 묻힐 뿐이었다. 곧 라시크는 파티마에게 다가가 흙구덩이로 들어갔다.
“파티마! 라시크를 죽이지 마!”
라마의 외침에도 파티마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라시크는 파티마의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라마는 어두운 곳에서 길을 잃었고, 망고나무 아래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라마가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아빠와 가족들, 힌두교 마을 사람들은 학교 선생님들과 라마를 찾기 시작했다. 흥분해 있던 아빠는 혹시나 라시크와 함께 있을까 싶어서 학교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라시크만 있을 뿐 라마는 없었다. 그때 이슬람 마을의 이장이 라마를 데리고 학교로 왔다.
아빠는 더 흥분을 했다. 왜 라마가 이슬람 마을에 있는 거지? 라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빠는 이슬람 마을의 이장을 때려눕히려고 했다. 까띠아르 선생님이 말려서 그렇게 하진 못했지만, 아빠는 라마를 품에 안을 때까지 계속해서 이슬람 사람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마치 카레와 밥 같이 두 마을 사람들은 섞이고 엉켰다. 이슬람 마을 이장은 강가에 잠들어 있던 아이를 데려왔을 뿐이라며 아빠에게 도리어 화를 냈다. 그러고는 더 크게 소리쳤다. 또 다시 이슬람 마을에 큰 구덩이들이 파여 있다는 것이었다. 분명 그때 그 소가 한 짓이 분명하다며 그 소를 얼른 집으로 데려가라고 다그쳤다. 그때 라마는 아빠의 품에 안기자마자 학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슬람 마을 이장과 눈싸움을 벌이던 아빠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라마의 뒤를 쫓아 학교로 들어갔다.
라시크! 라시크! 라마의 부름에 라시크가 라마를 쳐다보았다. 다행히 라시크는 학교에 있었다. 어디 다친 데도 없었다. 라마의 곁으로 다가온 아빠는 물었다. 어디 갔었던 거니, 라마? 너 정말 혼나야겠구나! 그러자 라마가 라시크의 다리를 안으며 말했다. 라시크가 죽을 뻔했어요. 파티마가 죽이려 했다고요!
아빠는 학교 정문으로 다시 나가 물었다. 파티마가 누구요! 새벽에 우리의 소를 죽이려 했다는데! 그러자 파티마의 삼촌이 말했다. 무슨 소리, 파티마가 나무 아래서 잠든 이 꼬마를 우리 집에 데려와 재워주었더니! 소에 미친 당신 아들이 헛것을 보았나보지! 아빠는 파티마의 삼촌의 멱살을 잡아 흔들며 소리쳤다. 우리 아들이 거짓말을 했단 말이야? 까띠아르 선생님도 지쳐서 더 이상 말릴 힘이 없었는지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하늘에선 잠시 멈추었던 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이 점점 밀려오고 있었다. 까띠아르 선생님은 이제 정말 큰 비가 내릴 것이라며 중얼거렸다. 그때 하산은 어른들을 요리조리 피해 학교 안으로 들어가 라마와 라시크 쪽으로 향했다.
“이 녀석이 우리 집 마당을 또 다 파버렸어. 이 뿔 때문이야, 부러뜨려주겠어!”
하산은 라시크의 뿔을 잡아끌었다. 하산의 힘으로 부러뜨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라마는 하산의 바지춤을 잡고 늘어졌다. 라시크는 움직이지 않은 채 조금씩 으음메 하고 울 뿐이었다. 가만히 있던 라시크가 움직인 건 하산의 발길질로 라마가 나가떨어질 때였다. 라마가 넘어져 흙바닥을 뒹굴자 라시크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하산 또한 멀리 날아가도록 했다. 그때 하산은 비명을 질렀다. 흙에 박혀 있던 돌에 다리를 부딪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하산이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하산이 다친 것을 알게 된 아빠는 파티마의 삼촌의 멱살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산은 라마를 보며 말했다.
“저 소 때문에 어른들 모두가 화가 난 거야. 저 소를 먹어 치워버려야 한다고! 이 소똥 냄새를 학교에서 없애 버려야 한다고!”
라마와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이슬람 사람들이 다 같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소를 없애버려! 소를 먹어버려! 소를 없애버려! 소를 먹어버려! 라마는 그 사람들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느새 그 사이에 서 있던 파티마를 찾아내었다. 라마는 파티마에게 다가갔고, 파티마는 뒷걸음을 쳤다. 그리고 파티마는 어른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사람들의 언성이 커질 무렵 하늘은 온통 먹구름이 둘러쌌다. 아침인데도 마치 저녁인 것처럼 온 주변이 껌껌했다. 갑작스런 천둥이 치자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몸을 숙였다. 순간 조용해졌다가 번개가 하늘을 조각내듯이 갈라졌다. 라마는 파티마를 찾으려 어른들 사이로 들어갔다. 하늘에선 물줄기가 굵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 같았다. 까띠아르 선생님은 모두를 향해 외쳤다.
“모두들 알다시피 강이 범람할 것입니다. 학생들은 학교 이층으로 올라가고, 어른들은 집에 가셔서 담이 무너지는지 보세요!”
선생님의 말에 모두들 진정하고 집으로 향했다. 홍수가 나면 어쩔 수 없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집으로 가서 들어오는 물을 계속 퍼서 밖으로 내보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라마의 아빠는 라시크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라마도 라시크를 따라 집으로 가려 했지만, 아빠는 라마를 학교로 다시 보냈다. 그리고 라마에게 말했다. 라마, 넌 꼬마가 아니란다, 넌 이제 학생이야.
크고 작은 천둥이 세상이 깨질 듯이 울리고, 하늘이 쏟아질 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층에 올라가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라마는 파티마에게 라시크를 왜 죽이려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까띠아르 선생님은 아이들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책을 보게 했다. 그렇게 비가 그칠 때까지 아이들은 숨죽이고 기다렸다. 곧 학교를 향해 강물이 흘러내릴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비가 점점 그치고 하늘이 개고 있을 때에도 학교를 향해 강물이 흘러오지 않았다. 까띠아르 선생님은 이상한 생각에 학교 아래로 내려가 마을을 둘러보았다. 아이들과 어른들도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집 밖으로 나와 마을을 살폈다. 그때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범람한 강의 물은 정확히 라시크가 파놓은 구덩이를 통해서만 흘러내리고 있었다. 라시크가 판 구덩이는 어느 새 두 마을을 지나 밖으로 이어져 있었다. 강의 물은 마을 밖으로 다 흘러가버렸고, 홍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이미 포기한 논과 밭에도 피해가 가지 않았다. 어리둥절하여 학생들이 밖으로 나갔을 때 파티마가 먼저 라마에게 다가갔다. 라마는 흥분하며 라시크를 왜 죽이려 했는지 물었다. 파티마는 라마의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숨겨서 미안해, 라마. 홍수가 나지 않은 건 모든 게 라시크 덕분이야.”
라마는 영문을 몰라 파티마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때 까띠아르 선생님이 다가와 라마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속여서 미안하구나, 라마. 파티마는 정말 라시크를 죽이려 한 게 아니었단다. 라마는 어리둥절한 상황에 선생님의 손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섰다. 선생님은 말을 이어갔다.
파티마는 며칠 동안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 수로를 파야 한다고 파티마의 삼촌에게 말했었다. 전학을 오기 전에 살았던 마을에서 소를 이용하여 수로를 팠고, 홍수를 피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로를 파기 위해선 소가 필요했다. 이슬람 마을에는 소가 없었기 때문에 힌두교의 소를 빌려야 했다. 하지만 파티마는 삼촌에게 꾸중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힌두교 소의 힘을 빌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파티마는 까띠아르 선생님을 찾아가 설명을 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밤마다 사람들 몰래 라시크와 함께 수로를 파고 있었던 것이었다. 라마의 말만 따르던 라시크는 다행히 파티마의 말은 들었다. 파티마와 선생님은 이 사실을 이슬람 마을 사람들이 알면 화를 내고 또 다시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누구한테든 말을 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라마에게도 미안해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남모르게 두 사람은 홍수를 대비하고 있었고, 며칠 밤 동안 노력한 결과 홍수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가만히 서 있던 라마는 동그란 눈으로 선생님과 라시크를 번갈아 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라시크가 집에 가지 않으려 했던 걸까요……. 수로를 만들어야 해서?”
선생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랬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라마의 눈을 바라보던 파티마는 라마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안아주었다. 라마는 아무 말 없이 파티마의 품에 안겼다.
그때 멀리서 라마의 아빠가 외쳤다. 라마! 라마! 라시크가 물에 빠졌어! 사람들은 그곳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라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로로 냅다 뛰어갔다. 그곳엔 정말 라시크가 물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라시크의 등에는 한 남자가 간신히 물살을 피해 앉아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하산이 외쳤다. 아빠! 아빠! 하산의 아빠였다. 하산은 울고 있었다. 라마는 하산의 그 모습이 낯설고 신기했지만, 이내 라시크에게 눈길을 돌렸다.
다행히 하산의 아빠는 라시크의 등에 매달려 있다가 파티마의 삼촌이 내민 막대기를 잡고 물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라시크는 물에서 나올 수 없었다. 하산의 아빠가 안전히 올라가자 라시크는 힘이 풀렸는지 점차 물살을 따라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라시크는 아무런 요동을 치지 않고, 라마와 파티마를 바라보았다. 라마는 그런 라시크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라마는 소를 향해 달려가려는 파티마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라시크는 그 누구도 다치길 원하지 않을 거야. 내 친구는 정말 착하거든.
마을 사람들과 선생님들은 떠내려가는 라시크를 향해 기도를 했다. 아빠 품에 안겨 있던 하산도 라시크에게 인사를 했다. 까띠아르 선생님은 라마와 아이들에게 말했다.
“라시크는 우리 모두에게 정말 좋은 친구였어.”
사람들은 하나 둘 각자의 마을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라마는 라시크가 떠내려간 수로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때 하산은 고개를 숙인 채 라마에게 다가와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라마, 이제 너에게 소똥 냄새가 나도 뭐라고 하지 않을게…….”
까띠아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함께 교가를 부르도록 했다. 아이들은 쭈뼛쭈뼛 서서 조용히 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점점 더 큰소리로 울려 퍼졌다.
우리 학교 로뎀! 우리 학교 로뎀!
우리의 이름은 평화! 우리의 이름은 평화!
어른들이 싸워도 우리들은 싸우지 않아!
우리가 어른이 되면 그 누구도 싸우지 않아!
우리 학교 로뎀! 우리의 이름은 평화!
라마는 한쪽 손으로 파티마의 치맛자락을 꼭 잡았다. 또 다른 한쪽 손으론 라시크가 떠내려간 곳을 향해 힘껏 흔들었다. 눈에는 아직 눈물이 흘렀지만,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라마는 벌써부터 소똥 냄새가 그리웠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옛 친구 라시크를 떠올리기로 다짐했다.
하늘의 구름 사이로 밝은 태양빛이 라마의 큰 눈을 비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