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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시] 사형수의 방

by 오로지오롯이

- 사형수의 방 -


진흙 한 덩어리를 주문했어요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비어 있는 내 엄지손가락은 채워야죠 검은 올리브 한 사발을 얻어왔어요 꾸미고 싶어요 비어 있는 내 머리숱이 푸석하잖아요 쓰다만 몽당연필이라도 줄래요? 벽이 비어 있잖아요 하다못해 코스모스라는 말이라도 적어놔야 하잖아요 잠깐만요 저 나가거든 청소는 대충 하세요 부스러기라도 굴러다녀야 벌레들이 오잖아요 박하향 담배 하나 물어주실래요? 그래도 비어 있는 방에 아무 냄새도 안 나면 좀 그렇잖아요 토마토스파게티 한 접시를 부탁할게요 마지막 만찬이잖아요 이제 비어 있는 속을 채우지도 못하잖아요

귀찮게 해서 미안해요


하, 이제 채울 것 다 채웠으니 출발하죠


아, 그런데 혹시요


아내가 죽은 우리 안방도

지금 비어 있나요?


거기에

내 엄지손가락이 남아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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