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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시] 새벽의 자화

by 오로지오롯이

- 새벽의 자화 -


봄이 탄생의 시작이라면

찔레꽃이 피어나는, 막 이제

소년이 초여름 새벽 안에 오롯이 섰다


검기운 해넘이는 이미 한참 지나

신명나는 갓밝이의 때가 다가왔다지만

아직도 저 동쪽에는 동살이 고개를 들지 않어라


잠잠한 암흑은 태양이 뜨기 전 절정이라

누군가 종을 울려주었으면 좋겠건만

종 치는 야경꾼, 목장지기는 어디로 가고

초원의 목장승 소년 우두커니 남았다


꽃물 번지듯 엷게 퍼지는 새벽 냄새 한 모금 마시다보면

광활한 사람들의 신록을 볼 수 있다지만

이슬 핥는 검은 사슴 한 마리 없는 외지일 뿐이다


거울에 비치는 어스름은

얼굴과 뒤통수를 같은 색으로 물들이고

이 어두컴컴한 달안개 속에서

이목구비가 엉켜 하나의 낙서가 되어 있더라


오직 떠오르는 소년의 낯은

봄에 개나리를 그리던 얼굴

찬란한 태양빛으로 윤을 내던 그 아이뿐이더라


영영, 아주 영영 여명도 볼 수 없다고

우짖거나 발버둥하지 않지만

얇은 목덜미는 여전히 검붉어

목젖에 시뻘건 것 같은 식은땀이 괸다


긴 새벽이 지나 다시 자화를

그릴 수 있을진 모르건만, 음영이 드리워진 낮빛에

투명한 이슬만이 쏠려 맺히곤 한다


소년은 그렇게 가시 같은 찔레꽃 향기에

취해 잠이 들었고

말라가는 눈물에 반사되는

새하얀 광야의 빛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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