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이일. 퀸 빅토리아 마켓
퀸 빅토리아 마켓. 우리가 트램을 타고 도착한 재래시장이다. 멜버른에서 가장 완벽했던 이틀 중 하루, 그 종착지다. 아직 느껴지는 그 날의 설렘과 분위기와 완벽했던 타이밍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던 날이라고 단언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퀸 빅토리아 마켓은 재래시장으로 무려 1878년에 개장해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매년 11월에서 3월 초, 6월에서 8월 사이에 야시장이 열리는데, 우리는 멜버른에 7월 첫째 주에 있었으니 야시장이 열리는 시기에 방문한 셈이 된다! 이 야시장에 가기 위해서 목요일에 가려던 일정을 조정해 수요일로 퀸 빅토리아 마켓 방문일을 옮겼다.
야시장 맞은편에 국내에 소개된 유명한 도넛 가게가 있다고 했는데 어찌 된 건지 정작 갈 때는 전혀 몰랐던 정보라 가지 못했다. 다음번에 가게 된다면 먹어봐야지!
트램을 타고 도착한 야시장 앞 풍경. 겨울이라 그런지 야시장 입구에서는 이런저런 장갑과 목도리를 팔고 있었고 과일과 야채, 푸드 트럭이 많이 몰려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사람이 무진장 많았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저렇게 사람이 많을 수가 없으니 참 그리운 풍경이다.
야시장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그날 내 패션이 워낙 얇은 티가 나던 참이었고 해가 지던 시간대라 더욱 쌀쌀하다고 느껴지고 있었다. 무언가 더 입은 건 없고 그렇다고 이렇게 춥게 돌아다니자니 금방 숙소로 돌아가 버릴 것 같아 뭔가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목도리를 파는 판매대를 발견해 즉석에서 목도리 구매를 결정했다. 작은 매대를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친구와 함께 빨간 모자를 써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추위를 이겨내는 데는 목에 무언가를 두르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머스터드 목도리를 골랐다.
그리고 재래시장의 묘미는 에누리! 계산을 위해 상점 주인에게 가 계산을 부탁하자 그녀는 내게 목도리가 잘 어울린다는 칭찬과 함께 목도리 값을 깎아 계산해줬다. 예상하지 못한 할인에 칭찬이어서 기분 좋게 계산하고 그 목도리를 여행 내내 두르고 다닐 수 있었다. 앞으로 종종 사진에 등장할 예정이니 발견할 때마다 퀸 빅토리아 마켓을 떠올릴 수 있으면 한다.
퀸 빅토리아 마켓 중간 지점에는 과일과 엔틱한 소품을 파는 매대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여러 종류의 과일을 사서 멜버른 숙소에 쟁여둘 수 있었다. 호주에서 생산되는 과일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과일값이 정말 저렴했다! 한국에서보다 적어도 절반 가격이라서 그날 큼지막한 청포도 한 송이와 수박 한 통 절반 크기의 과일 팩을 샀는데, 우리가 우릴 너무 몰랐던 것인지 과일 팩은 그날 저녁에 숙소에 가자마자 동났고 청포도는 다음날인가에 바로 없어졌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야시장에서 더 사는 건데, 싶다.
중간 지점을 지나니 사방팔방에 보이는 푸드트럭이 눈에 보였고 끝 지점까지 인파 속을 헤엄치며 걸은 끝에 배가 고팠던 우리는 야시장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멜버른에 도착한 지 3일, 그리고 한국을 떠난 지는 적어도 나흘이 지난 셈이니 슬슬 국물이 땡기던 차였다. 그렇지만 호주 야시장 한복판에서 국물 요리를 찾을 수는 없어서 열심히 푸드 트럭을 돌아다닌 끝에 빵 그릇에 파는 버섯 수프를 국물 대신으로 먹기로 했다. 거기에 수프로는 부족할 테니 감자튀김과 닭고기를 곁들여서! 다 맛있었냐고 하면 그렇다고 답하지만 다 먹었냐고 한다면 닭고기를 남겼다고 대답할 수 있다. 둘 다 오랜만에 먹은 국물 음식에 수프는 빵 그릇도 뜯어먹을 정도로 싹싹 비웠지만 고기는 양이 많기도 많아 남길 수밖에 없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며 오른편을 보니 야시장 옆면에 있는 출입구가 보였는데 그쪽으로는 이런저런 수공예품 판매대가 연결돼있었다. 아이폰 폰케이스부터 노트북 파우치, 핸드메이드 가방과 당최 어디에 걸어야 할지 모를 가죽 공예품까지. 산 건 없지만 원래 야시장에서는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호강하는 느낌이 잔뜩 들지 않던가. 게다가 문득 위를 올려다보니 보이는 샛노란 전구 줄이 낭만적이었다. 마침 옷도 예쁘게 입었겠다, 머리 스타일도 나쁘지 않겠다, 예쁜 사진이 나올 수 있겠다 싶어 냉큼 친구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이 없어 혼자 정중앙에서 포즈를 잡고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아직도 호주 여행 사진첩을 볼 때 자주 보는 사진인데, 뭔가 이때의 몽환적이고도 낭만적인 느낌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적어도 다시 멜버른 야시장에 방문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목도리도 사고 사진도 예쁘게 찍고 배도 든든하게 채운 우리는 두 손 가득하게 과일을 들고 룰루랄라 다시 트램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이 트램을 멜버른 도착 3일 차에 드디어 타봤는데, 이 트램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그럼 이상, 왁자지껄하고 특별했던 겨울날의 야시장, 퀸 빅토리아 마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