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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신 Sep 13. 2020

꿈을 위해서는 꽃을 키워야 한다

마음이라는 밭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어야 한다

지난달, 다섯 살부터 수영을 해온 둘째 딸이 수영을 쉬고 싶다고 했다.  50미터 수영장은 코로나 때문에 수영클럽들이 사용할 수가 없었다. 25미터 일반 수영장들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면서 수영 훈련도 들쭉날쭉 해졌다. 둘째가 다니고 있는 수영클럽도 사정은 매 한 가지였다. 덕분에 수영 패턴이 깨졌고, 그와 동시에 둘째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다.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마음 한쪽에 갈등이 자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둘째는 언니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언니도 여섯 살부터 수영을 했고 초등과 중학 내내 수영을 했다. 물론 지금은 수영이 포함된 다른 운동을 하고 있다. 진즉에 운동선수의 길을 들어선 언니를 보면서 자랐기 때문일까. 언니보다 더 빨리 수영을 시작했고, 클럽에도 더 빨리 합류했다. 둘째도 입버릇처럼 수영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좋은 운동신경과 체격 조건을 가졌기 때문에 나도, 아내도 기대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둘째는 수영에 흥미를 잃어갔다. 말은 안 하지만 함께 수영을 하던 친구, 동생들이 대회에서 상을 타는 모습을 보면서 속이 타지 않았을까. 연습은 열심히 하지만 기록은 줄지 않았다. 코치들의 "열심히는 하는데.."라는 말을 들으면 속이 탔다. "어제 가 세운 기록보다 더 좋아지면 되는 거야!"라고 아이에게 말했지만, 아이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수영을 좀 더 해보는 게 어떻겠니? 이제껏 한 게 아깝잖아.. 벌써 몇 년 째야? 8년이나 됐어."

"..."

"응? 어때.. 조금만 더 해보자.."

".. 음...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나는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더 이상 아이에게 수영을 하라는,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언니의 꿈이 자신의 꿈이라고 착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내와 나도 수영 선수가 되겠다는 아이의 말을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였던 것인지도. 걱정이 되기도, 아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스스로를 알아가고 있으니.


나는 어릴 때 어땠는가?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꼭 이루고 싶은 깊은 꿈이 있었는지, 지금도 품고 있는지. 과거를 더듬어 본다. 대통령, 의사, 변호사, 선생님, 외교관, 사장, 글 쓰는 작가(시인, 소설가 등) 등등. 뭐 이런 꿈을 꿨다. '대통령'은 꿈이라고 할 것도 없다. 초등학교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꿔봤던 꿈일 테니. '의사'와 '변호사'는 글쎄, 중학교 때쯤에 꾸었던 것 같은데.. 금세 알았던 것 같다. 나랑 안 맞는 것을. '외교관'? 그건 대학교 때 정말 잠깐 직업으로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노력? 전혀 안 했다. '선생님'은 친구들이 나한테 잘 어울린다고 했다. 애들 가르치며 잔소리하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친구들이 느꼈었나 보다.


'사장'은 '기업인'이라는 말로 바꾸면 좋겠다. 이건 고등과 대학 때 품었던 꿈이다. 언가 큰 기업의 사장이 되고 싶다는 그런 꿈을 꾸었다. 아직 가능성이 있는 꿈이다.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 '글 쓰는 작가(시, 소설..)'는 대학교 때 꾼 꿈이다. 실제 시를 쓰고, 어줍지 않은 소설을 썼었다. 잠깐.. 한 1년 정도. '글 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잊고 살았다. 직장생활에 흠뻑 빠져 쳇바퀴 도는 삶을 살다 보니.. 그렇지만, 나는 쳇바퀴에서 벗어났다. 예측할 수 있는 평탄한 길을 걷고자 했으나, 삶은 원래 예측할 수 없는 길이었다. 쳇바퀴에서 벗어나며 나를 돌아보고, 살피며 내 재능과 꿈을 찾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아마, 출간 작가도 될 것이다. 글 쓰는 작가는 기업가와 마찬가지로 포기하지 않은 꿈이다.


돌아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꿈'을 잊은 채 살았다. 먹고살기 위해 틀에 박힌 일상을 살았다. 열심히 회사를 다니며 남을 위한 일을 하고 스펙을 쌓기 위해 학교를 다니고, 자격증을 따며 살아왔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면, 결국, 삶은 내가 품은 마음속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다. 마음속 깊은 곳, 과거 어느 땐가 뿌려둔 씨앗이 싹을 틔우며 조금씩 자라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이의 꿈 나무는 빨리 자라고, 어떤 이의 꿈 나무는 조금 천천히 자란다. 어떤 이의 꿈 나무는.. 아예 자라지도 못하고 죽는다. (물론 나의 꿈도 그리 튼실하게 자라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차이는 꿈에, 목표에 집중하고 사랑과 관심을 기울이는 정도에 있는 게 아닐까?


마음은 밭이다. 밭에 고추, 상추, 오이, 호박, 수박, 가지, 열무, 감자, 고구마, 무, 배추, 사과나무, 배나무 등등을 흩뿌렸다면, 이 모든 것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튼실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고구마만 심었다면, 둥글고 작은 것부터 길쭉하고 큰 고구마까지 얻을 이다. 여기에 수시로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며 돌본다면, 다시 말해 사랑과 관심을 준다면 대왕 고구마들도 잔뜩 얻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이라는 밭에 꿈을 흩뿌리면 이것저것을 이룰 것이다. 하지만 큰 꿈을 이루려면 전문 농사꾼처럼, 진정 이루고 싶은 큰 꿈을 먼저 찾아야 하며, 그것을 마음에 심어야 한다. 그리고, 그 씨앗을 사랑하여 깊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사랑과 관심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행동하다 보면 이루어진다. 농사꾼이 스스로 심은 작물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는 만큼 자주 돌보고, 자주 돌보는 만큼 꿈을 좀 더 빨리 크게 이룰 수밖에 없다. 비와 햇빛, 바람 그리고 사랑을 받은 작물들이 잘 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모든 것이 마음이라는 밭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큰 꿈을 품고 이를 잘 돌보는 일이 쉽지는 않다. 진정 나의 꿈이 무엇인지를 쉽게 찾기도 어려우며, 꿈을 이루기 위해 강한 의지를 갖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강한 의지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주변의 소음과 먹고사는 문제를 이겨낼 정도가 되어야 한다. 아니면 먹고사는 문제를 내가 좋아하는 일로 할 수 있거나. 참 어려운 일이다. 지혜로워야 하며 용기와 의지도 있어야 가능하다.


나는 조금 늦게 내 꿈에 집중하고 있다. 어릴 때, 마음에 씨앗을 흩뿌리고 사랑으로 잘 돌보며 행동하지 못한 결과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으면 좋겠다. 조금 시간이 걸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의 꿈을 찾았으면, 그리고 마음속에 진정 이루고 싶은 꿈 하나 제대로 심고 과실을 맺기를 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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