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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신 Dec 06. 2020

푸른빛(1/3)

부제: Q-Bot, 영혼의 소리.

벌써 몇 주째 똑같은 꿈을 꾸고 있다.      


꿈은 항상 같은 자리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서 끝이 난다. 꿈의 끝에서 나는 항상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울고 있는 아내 희수와 친구 도영을 봤다.      


오늘도 같은 꿈을 꾸었다. 늘 그렇듯이, 꿈을 깨는 동시에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나와는 달리 희수는 늘 같은 자리에서 고른 숨을 쉬며 자고 있다. 한 결 같이 평안한 그녀. 나와는 달리 그녀는 늘 침착했다. 침착하지 않 적이 없다. 내 꿈속에서 봤던 모습을 제외하고.      


나는 희수의 옆에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가 미웠다, 아니 밉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편안히 잠들어 있는 그녀가 싫었다. 베개로 그녀의 얼굴을 눌러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느덧 내 손에는 베개가 들려있었다. 베개를 들고 있는 손을 보는 순간, 나는 정신을 차렸다. 깜짝 놀라 베개를 놓고 머리를 감싸 안았다. 도대체 내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왜 꿈에서 깨기만 하면 그녀가 싫어지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자명종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6시. 집에서 한 시간 반을 가야 하는 회사에 출근하려면 빨리 준비를 해야 한다. 이 놈의 서울은 사람이 직접 운전을 하던 20년 전과 다를 바 없다. 자율주행차로 차를 공유하는 지금도 3천만이 거주하는 서울에서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젠장. 자율주행차로도 한 시간 반이나 걸리다니. 아무리 도로와 차량이 최적화되어도 사람 자체가 많은 것을 당할 재간이 없다.      


나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를 했다. 머리에 쏟아지는 뜨거운 물줄기가 목덜미를 지나, 등을 따라 엉덩이를 거쳐 흘러내렸다. 뜨거운 물줄기가 간밤의 꿈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목덜미를 잡고 머리를 뒤로 젖혔다.      

달리고 있는 자동차. 자율주행으로 달리던 차가 갑자기 지그재그로 속도를 내며 달렸다. 이상했다. 핸들을 잡았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었다. 자율주행 모드로만 다녔기 때문에 운전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차 자체가 수동모드로 전환되지도 않았다. 차는 여전히 시속 200 키로가 넘는 속도로 수도권 제2 순환고속도로를 폭주했다. 당황했다.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오른쪽 방향으로 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산이 거꾸로 보였다. 산 아래에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새털구름이 떠있었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남양평? 금사면? 그리고 이마에 피를 흘리며 땅바닥에 거꾸로 박힌 나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 순간 나는 하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내 옆에는 나의 아름다운 아내, 희수가 울고 있었다. 반달 같은 눈에서 하염없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 방울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주위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마침내 심연에 빠진 듯 죽음 같은 어둠이 이어지고 호흡이 멈추었을 때 친구 도영의 얼굴이 보였다. 도영은 진지하게 내 눈을 뒤집었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깼다. 도대체 이 꿈은 뭘까? 왜 똑같은 꿈을 계속 꾸는 것일까? 최근 며칠 동안 같은 꿈을 꿨다. 그리고 마음속 한편에 의구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무언가 있다.      


샤워를 끝내고 커피를 끓이고 있을 때 희수가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나도 커피”하며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희수와 나는 커피 한잔과 프렌치 브레드를 먹은 후에 함께 출근을 했다. 희수는 클론 에이드(Clone Aid) 사에서 일한다. 클론 에이드, 생명복제회사. 여전히 UN에서는 인간 복제를 금하고 있지만, 캐나다에 본사를 두고 있는 클론 에이드는 서울에도 연구소를 세웠다. 아내는 그곳의 수석 연구원이다. 아내는 유인원의 몸에서 인간의 세포를 배양하여 인공장기를 만드는 일을 한다.      


나는 아내의 직업이 싫다. 철학과 교수인 나와 클론 에이드에 근무하며 생명 복제를 하고 있는 그녀가 부부라고 하면 누가 믿을까. 20년 전, 학교 앞 카페에서 처음 만났던 날, 반달 같은 눈으로 활짝 웃지만 않았어도. 그날 나는 그녀의 입 꼬리 끝에 걸린 보조개를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 박사과정을 마치자마자 결혼을 했다. 나는 철학과 교수가 그리고, 그녀는 생물학이라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클론 에이드에 취직을 했다.     


자율주행 모드로 다니는 차 안에서 그녀는 논문을 읽었다. 나는 그녀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넸지만 논문에 빠져들어있는 그녀의 심드렁한 대답에 실망하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로는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3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서울에 살고 있으니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나는 3천만이나 서울에 살게 된 것이 믿기지 않았다. 사람들의 수명은 도대체 얼마나 늘어날 것인지. 동의보감에서는 인간의 자연적 수명이 120살이 넘는다고 했다. 하지만 21세기 초에 수행한 DNA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수명은 겨우 38년에 못 미친다고도 했다. 한데, 지금 서울에는 이미 100살이 넘은 사람이 9백만 명이다. 9백만 명. 그래, 사람들은 잘 죽지 않는다. 이게 다 클론 에이드 같은 회사들 덕분, 아니 때문이다. 죽어야 할 때는 죽어야 하는 데, 이들이 인공장기를 만들어 내면서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은 돼지 몸에서 자란 인공장기로 낡아빠진 자신의 장기를 손쉽게 갈아 치웠다. 그리고 다시 살아났다.     

 

“여보, 사람들의 수명이 너무 길어진 거 같아. 이 많은 차들을 봐. 도대체 서울에 3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게…. 정말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나는 회의 준비에 여념이 없는 아내에게 말했다.      


“왜? 오래 살면 좋잖아. 요즘 같이 좋은 세상을 많이 누려야지?”      

“글쎄, 내 생각은 좀 달라.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자연의 이치야. 30년 전만 하더라도 100살이 넘는 경우가 많이 없었단 말이야. 그때는 그래도 서울 인구가 1천만 명 정도뿐이었고..”     

“여보, 나 회의 준비해야 해. 미안해.”  

    

나는 미안한 눈빛을 보내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여전히 아름다운 반달 같은 눈과 갈색의 눈동자,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입술 끝에 걸린 보조개. 나도 살짝 웃어 보였다. 아름다운 여자였다. 아름다운 여자. 아름다운. 그랬다. 그녀는 늘 아름다웠다.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던 꿈속의 그 순간에도. 그 순간, 나는 갑자기 꿈 이야기를 했다.      


“있잖아, 희수야. 나, 요즘에 자동차사고로 계속 죽는 꿈을 꾼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      


희수가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미세한 흔들림이 떨림이 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머리를 숙였다.      


“별소리를 다 하네. 우리 남편, 요즘 너무 피곤한 거 아니야? 영양제라도 좀 먹여야 할까 봐.”     

 

그때 자율주행 자동차의 Q-Bot이 오늘의 뉴스를 요약해서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녀 관심을 가진,  내게는 재미도 없는 생명공학에 대한 내용이었다. Q-Bot이 요약해주는 내용을 듣는 사이에 아내의 회사인 클론 에이드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기 전 그녀는 나에게 약간은 진한 키스를 했다. 촉촉한 그녀의 입술. 평소와 달랐다. 늘 그저 웃으며 인사만 하던 그녀가 아니었다. 도대체 왜. 나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이제껏 보지 못했던 불안함을 느꼈다.      

그녀가 내린 후 자동차는 학교로 이동한다는 말을 하고, 조용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차창 밖에 희수와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도영과 KFC 할아버지처럼 생긴 거구의 외국인이 보였다.  

    

‘그래, 도영이도 내 꿈에 나왔었지?’      


문득 전자공학도였던 도영이 클론 에이드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내 상식으로는 전자공학도가 할 일은 없을 터였기 때문이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친구 도영에게 전화해 저녁 약속을 잡았다. 녀석을 만나 꿈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내가 느꼈던 그 이상한 감정과 평소와 달리 불안했던 희수의 눈동자도 말하고 싶었다. 무심코 손에 들고 있던 베개, 그 이야기는 할 수 없겠지만.      


“여, 친구. 오랜만이야.” 도영이 손을 높이 들며 레스토랑으로 들어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우리는 부모님의 안부를 물었다. 고등학교부터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심지어 녀석은 자신의 사촌 동생 희수를 소개해줬다.      

“친구, 요즘 나 이상한 꿈을 자꾸 꿔. 벌써 몇 주 째야.”

“꿈, 무슨 꿈?”

“응, 있잖아. 자동차 사고로 내가 죽는 꿈이야. 그 꿈 끝에는 항상 희수와 네 얼굴이 나와. 희수는 울고 있고. 너는 내 눈을 뒤집어 보는 그런 꿈이야.”

“...” 도영이 나를 바라봤다. 검은색 눈동자,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이었다.

“그리고, 희수가 자꾸 미워져. 내게 하나뿐인 사람인데, 왜 이런 감정이 올라오는지. 알 수가 없어.”     


그날 밤, 나는 기도를 했다. 오늘은 같은 꿈이 이어지지 않기를.


젠장. 기도라는 건 원래가 틀려먹었다. 또 똑같은 꿈을 꿔버렸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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