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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치아 모스카토 다스티

(다시) 금주일기

by 김시월

아주 예전이다. 누군가 기념일을 축하할 때 먹을만한 와인이라면서 간치아 모스카토 다스티를 추천해줬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마시는 술이 소주와 맥주, 막걸리, 더 마셔봐야 칵테일이었다. 한우물만 파는 스타일이라 주로 소주만 마셨다가, 정말 어쩌다 칵테일을 마셔도 오직 깔루아밀크만 마셨다. 그런데 내 선택지에 없는 와인이라니. 심지어 이름도 길다. 간치아 모스카토 다스티.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늘 소주 콜? “로 끝나는데 외국인들은 ”오늘 간치아 모스카토 다스티 콜?“ 하려나. 당연히 그렇게 안 하겠지.


그때는 가자주류 같은 주류 전문점이 있다는 것도 잘 몰라서 그냥 대형마트로 향했다. 이마트에 판다고 하길래 집 근처에서 이마트로 향하는 마을버스를 타고 가봤다. 세상에! 와인 종류가 이렇게나 많다니. 나는 이마트에 간 목적도 잊어버린 채 벽을 가득 채운 와인들을 구경했다.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으로, 그 안에서 나라별로 또 나눠놔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쭉 둘러보다가 내가 찾는 ‘간치아 모스카토 다스티’가 있을 만한 곳을 살펴봤다. 지금이야 어떤 색이고 어떤 모양인지 외워서 한 번에 찾을 수 있다지만, 그땐 눈앞에 두고도 사진과 비교하며 맞는지 몇 번을 확인했다.


소주는 가게에서 마셔도 한 병에 몇 천 원인데, 간치아는 달랐다. 병이 크다지만, 이거 좀 나한테 사치 아닌가? 괜히 한 발 물러섰다가, 궁금한 건 또 못 참으니까. 그렇게 시작한 간치아의 매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졌다. 달달하고 탄산이 있는 그 맛은, 가끔 소주는 너무 쓸 것 같고, 맥주는 배부를 것 같을 때 마시면 딱 알맞은 맛이었다. 달달한 안주와도 어울리고, 짭짤한 치즈랑도 어울리고, 매콤한 안주에도 어울렸다. 한 번 맛을 알고 나니 한동안은 계속 간치아만 마셨다. 독립한 친구네 집에 집들이를 갈 때도 사가고, 집에서 혼자 마시기도 하고, 친구들이랑 놀러 갈 때도 욕심을 부려서 몇 병 사갔다.


그런 게 있다. 하나에 꽂히면 거기에만 집중하다가, 잠깐 눈을 돌리면 바로 식어버린다. 그때 그랬다. 간치아만 계속 마시다가 한 번 다른 길로 빠져버리니 간치아를 잊어버렸다. 그 사이에 가격도 올랐더라. 그때는 그래도 여러 병을 사도 큰 부담이 없었는데, 사실 배부른 건 맥주랑 똑같아서, 그냥 가성비 있게 맥주를 마실까 싶기도 할 정도로. 그래도 맛있더라! 왜 그렇게 항상 맛있는 거니.


최근에 내가 꽂혔던 술이 있나? 아마 막걸리를 좀 마셨던 것 같다. 위에서 말했듯 한우물만 파는 스타일이라 막걸리도 장수 막걸리만 마셨다. 막걸리 종류도 많아서 막걸리 전문 술집에서 이것저것 마셔봤는데, 아무리 맛있다는 걸 마셔도 결국 돌아가는 건 장수 막걸리였다. 근데 장수 막걸리보다 맛있는 녀석이 나타났다. 어떻게 보면 비슷한 결인데, 나는 지평 막걸리가 그렇게 맛있었다. 아마 지금 마셔도 한 사발 들이킬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운동을 끝내고 마시는 지평 막걸리가 예술이었는데.


요즘은 편의점에서도 와인을 판다. 와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류를 파는데, 참 이게 묘하다. 너무 쉽게 마실 수 있는 환경이 되어버렸다. 전에는 좋았지만, 지금처럼 금주를 목표하고 금주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레이스를 달리고 있는 나에게는 매우 불만 가득한 환경이다. 특히 이마트24에 가면 와인코너가 더 크게 있는데, ‘모스카토’, ‘다스티’ 두 단어가 자주 보여서 고통스럽다. 저 이름이 들어간 것들은 웬만하면 맛있던데… 하고 속으로 많이 아쉬워하고, 겉으론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지, 몇 번을.


내가 과연 언제 이렇게 <간치아 모스카토 다스티>를 열변을 토하며 말하는 날이 있겠어. 금주가 끝나는 날, 제일 먼저 마실 술을 뭐다? 바로 <간치아 모스카토 다스티>. 사실 모른다. 그때는 또 다른 술이 마시고 싶어질지. 날씨도 이렇게나 변덕스러운데, 사람 마음은 더 변덕스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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