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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21도

(다시) 금주일기

by 김시월

고향인 서울을 제외하고 애정하는 곳이 딱 두 곳이 있다. 하나는 경주고 하나는 제주도다. 경주는 역사적으로 좋아하고, 제주도는 그냥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제주도라서 그냥 좋아하는 곳 몇 곳이 있다.


아직은 서울만큼 내비게이션 없이 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주변에 도착하면 낯이 익어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있다. 그곳은 갈치조림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래도 분명히 얼마 전까지는 아침 적당한 시간에 가도 갈치조림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지? 대기번호 1번에서 10번 사이에 들어가지 않으면 갈치조림과 고등어조림을 반강제로 먹어야 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조림만 먹을 수 있다면 감사했으나, 간혹 고등어조림에서 비린 맛이 났기 때문에 제발 앞번호에 들어가길 바랐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던 때에 주 2회 휴무를 가지는 그 가게 때문에 꼭 일주일에 두 번을 방문했어야 했다. 그것도 아침 일찍. 우리는 술을 좋아했고, 낮부터 술을 마셨으며, 저녁까지 술을 마시려고 했으나 그 가게를 위해서는 전날 미리 잠들었고, 운전자와 조수석을 가리기 위해 가위바위보까지 했었다. 당연히 조수석에 있는 사람이 술을 마실 수 있었고, 운전자는 조림까지만 먹을 수 있었다.


조림가게에 조림만 먹으면 안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은 제주도 여행 초반, 그리고 그 가게를 알고 나서의 초반이었고, 어느덧 주소를 외워갈 때쯤 고봉밥뿐만 아니라 이건 술이 필요한 음식이다! 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한 명은 꼭 술을 마셔야 했다. 그래서 그날은 오후 일정을 싹 비웠었다. 갈치조림과 한라산을 마시면 오후 일정에 당연히 무리가 됐다. 왜냐. 한 번 마시면 멈출 수가 없으니까!


사람에겐 모두 소울 푸드가 있을 것이다. 누구에겐 라면, 누구에겐 된장국. 그래. 나한테는 갈치조림이었다. 제주도 성산 어딘가에 있는 그곳에 갈치조림! 일주일에 두 번이나 쉬고 겨우 들어가면 그렇게 친절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가고 싶은 그곳에서 파는 갈치조림!


누군가는 나를 ‘너 거기 홍보대사야?’라고 말하지만, 이미 내가 홍보하지 않아도 아침 7시에도 줄을 서는 곳이다. 차라리 내가 홍보대사여서 뭐라도 받으면 좋겠다. 근데 그게 아니잖아..! 내가 홍보를 한다고 해서 거기서 대기번호 -1이라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가 연돈을 홍보한다고 해서 백종원 선생님이 대기번호 -1을 해주는 건 아니잖아. (이미 연돈 줄 서기까지 해봤음)


난 그렇다. 술을 마시는 것은 시간 제약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침 8시에도 한라산 21도를 마시는 것처럼, 그냥 마시고 싶을 땐 마셔도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술을 못 마셔서 약간 좀비처럼 ‘마셔야 돼.. 마셔야 돼..’ 이러는 건 아니다.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고 있을 뿐.


난 돈을 받고 글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제주도의 그 갈치조림 가게가 어디냐고 물어봤을 때 홍보처럼 말하고 싶지도 않다. 왜냐면 이미 드라마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하다면.. 제주도 성산 갈치조림을 검색하길 바란다… 두 시간을 기다릴 만큼의 맛있는 식당이다. 왜 서울에 체인점을 안 내는지 정말 궁금하다. 이미 많은 사람이 문의했을 텐데. 나처럼 정말 그 가게를 애정하는 사람이 문의하면 받아줄려나? 대신 한라산 18도랑 21도도 같이 보내줘야 한다. 왜냐? 아침에도 한라산의 힘은 위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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