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묵묵하고, 가벼운 것의 힘.

by 김다지


그의 첫인상은, 지극히 평범했다. 미팅할 사람이 ‘이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요란한 제안도, 유려한 말솜씨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내 말을 들어줬다. 정말 ‘듣기만’ 했다. 이전에 만난 대표들은 하나같이 언변히 화려했다.


“요즘 트렌드는요-”로 시작해서 “저 한 번 믿어주십쇼.”로 끝났다. 그런데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오히려 그게 이상했다. 내가 준비해간 PPT와 도면을 보며 원하는 바를 말했고, 그는 메모를 했다. 일방적으로 나만 떠들어댄 미팅의 막바지에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화장실은 바닥 철거 후 방수를 다시 하고 덧방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한 마디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덧방이 아니고 철거요?”

“네, 10년이 넘은 아파트는 방수를 새로 하는 게 맞습니다.”

“왜요?”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짧고 단호했다. 말의 높낮이도 거의 없는데, 그 안에 이상한 힘이 있었다.


“누수 위험이 있으니까요. 어차피 고치는 김에 바닥을 정리하고 가는 게 낫죠.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 덧방에 대한 내 고민이 한순간에 정리됐다. 예산도 별로 늘지 않고, 덧방의 찝찝함도 사라졌다.

게다가 ‘배운 대로 한다’는 원리원칙이라니. 이런 말을 이렇게 담담하게 하는 사람이라니….

나는 마지막으로 확인하듯 물었다.

“다른 업체들은 방수는 안 건드리려고 하는 거 같던데요.

혹시 누수라도 생기면 책임은 대표님이 지셔야 하잖아요.”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톤 하나 변하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뭘 그런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

“당연히 제가 책임져야죠. 제 현장인데요.”


그 말이 이상하게 꽂혔다. 감정도, 꾸밈도 없는데 묘하게 믿음이 갔다. 캄(calm)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람. 엄청난 기세는 없었지만, 그 안에 묵직한 신념이 있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계속 생각했다. 이상하게 끌렸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한다. 사기꾼일 수도 있잖아?

그런데 이상하게, 이미 마음이 한쪽으로 자꾸 내달렸다. 내달리는 마음을 캄(calm)하게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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