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적서 뜯어보다가 포기한 썰 푼다.

by 김다지



나는 인테리어 업체와 10번의 미팅을 마쳤고, 내 앞에는 10개의 견적서가 놓여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견적서를 뜯어볼 시간이었다.


방송작가로 살아오며 나는,

여행프로그램을 할 땐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장소를 찾고, 섭외를 하고, 촬영을 진행했고,

운동프로그램을 할 땐 직접 운동을 배워보기도 했고,

연애프로그램을 할 땐 드라마타이즈 대본을 썼고,

댄스프로그램을 할 땐 댄서들이 추는 춤을 직접 춰보기도 했다.


오죽하면 작가를 '잡가'라고 하겠는가,

인테리어 견적서 쯤이야 내가 충분히 뜯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도면을 펼치고, 견적서를 펼치고, 펜을 쥐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말했던 것들이 다 반영이 되어있는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머리가 띵해졌다.


업체마다 카테고리를 나누는 방식부터 공정 순서, 금액 산정 방식도 모든 게 달랐다. 기업 이윤이 표시된 곳도, 표시되지 않은 곳도 있었다. 게다가 필름을 붙여야 하는 문의 개수가 틀린 곳도 있었고, 넣지 않은 공정이 들어가 있는 곳도 있었다. 어떤 공정의 항목 자체가 빠져있기도 했다.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무엇을 비교해야 하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깨달았다.


견적서를 뜯어보는 건 무의미했다. 견적서를 기준으로 업체를 선정하는 것도 무의미했다. 그건 기준이 될 수 없었다. 이 견적서들은 다 엉터리 같아 보였다. 화가 났다. 뭘 믿고 그 큰돈을 맡겨야 한단 말인가,

또다시 혼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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