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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영 Sep 14. 2023

모으고 생각하고 맞이하고 다시보기

    앞에서 로그라인을 잡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스토리를 구상해봅시다. 스토리의 구상 과정도 4단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1단계로그라인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모으자     


    1단계는 로그라인을 내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내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그래야 풍부한 쓸거리가 생깁니다. 스토리의 진도가 잘 안 나간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를 쓰려고 하거나 스토리 구상 과정의 1단계를 대충 넘어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웹툰,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책, 애니메이션, 신문기사 등등 내 로그라인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최대한 많이 보고 연구해서 쓸거리를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 

    삼하원칙의 ‘누가 무엇을 어떻게’에 집중해서 자료를 모으고 분석해봅시다. 각각의 요소를 따로 분리해서 찾아보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용사가 + 공주를 + 구출하려는’ 스토리라면 용사가 공주를 구출하는 내용의 다른 작품들은 물론이고, ‘용사’를 소재로 한 작품, ‘공주’가 나오는 작품, ‘구출’에 관한 책과 신문기사 등등 각각의 요소에 대한 자료를 모두 찾아보고 정리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제가 예전에 사기꾼에 대한 스토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사기꾼에 대해 잘 알기 위해 사기꾼과 관련된 웹툰, 책,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신문기사, 논문, 인터뷰 등등 최대한 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했습니다. 사기꾼들은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사기를 치는지, 그래서 어떻게 되는지를 철저하게 비교, 분석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저도 사기꾼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기 수법을 친구에게 사용해봤더니 잘 통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가끔씩 사기를 치고 다닙니다.는 거짓말이구요.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사기꾼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모든 자료를 검토하세요. 공부한 자료가 많을수록 쓸거리는 늘어납니다.      


    내 로그라인과 관련된 작품을 5개 이상 보고 다음의 포맷에 맞춰 정리해보세요.      


⦁ 관련 작품의 줄거리 : 

⦁ 내 로그라인과 비슷한 점 : 

⦁ 내 로그라인과 차이점 :      


“제 로그라인과 똑같은 작품을 발견했어요! 어떡해야 하나요?”      


    가끔씩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자료를 조사, 분석하는 과정에서 내 로그라인과 똑같은 작품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그 로그라인을 폐기하는 겁니다. 이미 있는 똑같은 스토리로는 사람들이 관심을 받기가 힘들고, 자칫 잘못하면 표절했다는 오해를 사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써 고민하고 만들었던 내 피와 같은 로그라인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걱정 마세요. 두 번째 방법이 있습니다. 기존의 작품과 차이점을 만들면 됩니다. 기존의 작품 주인공이 남자였다면 내 작품은 여자를 주인공으로, 기존의 작품이 현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내 작품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바꾸는 등 명확한 차이점을 만들어 재구성해보세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테니까 여기서는 일단 1단계 과정에만 집중하고 넘어갑시다.

      

◎ 2단계 깊게 생각하기     


    충분한 자료 조사와 연구를 마쳤다면 이제부터는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동안 공부했던 자료들을 내 로그라인에 맞춰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인물과 스토리에 살을 붙이고 전체적인 틀을 구상해봅시다. 내 스토리를 스케치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저는 2단계 과정을 대부분 커피숍에서 진행합니다. 혼자 커피숍에 앉아 몇 시간 씩 구상합니다. A4용지와 연필,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수많은 인물들을 만들었다가 없애고, 여러 방향으로 플롯을 재구성합니다. 

    이때 반드시 지키는 철칙이 하나 있습니다. 휴대폰(인터넷) 금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휴대폰을 보지 않습니다. 2단계 과정에서 휴대폰은 ‘절대 악(惡)’입니다. 모든 사고를 금지시키고, 좋은 생각을 방해합니다. 글쓰기 흐름을 산산조각으로 깨트립니다. 다소 과장된 표현 같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열심히 스토리를 구상하다 보면 스토리에 꼭 필요할 것 같은 정보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정보의 조사를 위해 휴대폰을 켜고 검색 창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때, 굵은 글씨로 강조된 흥미로운 메인 기사가 눈에 띕니다. 손가락으로 기사를 터치합니다. 읽어보니 별 거 없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내용 아래에 제시된 다른 기사는 평소 제가 궁금해 하던 것이었습니다. 터치합니다. 기사를 읽어보니 늘 갖고 있던 궁금증이 해소되었습니다. 뿌듯합니다. 이때 친구에게서 카톡이 옵니다. 지금은 글 쓰는 중이니까 바로 답은 안 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프사가 바뀐 것 같습니다. 터치합니다. 이성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 보입니다. 부럽습니다. 다른 사진들도 슬쩍 구경합니다. 그러다 시계를 보니 잠깐인줄 알았는데 시간이 훌쩍 지났다는 걸 발견합니다. 깜짝 놀라 휴대폰을 끕니다. 그리고 다시 스토리를 구상하려는데... 아차! 스토리에 꼭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려고 했었다는 게 떠오릅니다. 할 수 없이 다시 휴대폰을 켭니다. 그런데 또 굵은 글씨로 강조된 흥미로운 기사가 보입니다. 터치합니다. 무한루프에 빠집니다.     

  

    어때요? 저만 이런가요? 공감하시는 분 안 계세요? 노트북도 마찬가지입니다. 노트북으로 하는 인터넷 검색이나 카톡도 똑같습니다. 스토리에 꼭 필요한 정보라도 인터넷이나 휴대폰을 이용해야 한다면 자제하세요. 따로 메모해뒀다가 구상을 끝낸 후 한꺼번에 검색하세요. 구상하는 중간 중간 절대로 휴대폰을 보면 안 됩니다. 다른 건 다 괜찮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해도 좋고, 잠시 딴 생각을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은 절대 금지! 2단계에서는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놓고 가방에 넣어둡시다. 


◎ 3단계그분을 맞이하라

  

    ‘뮤즈(Muse)’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예술과 학문의 여신입니다. 휴대폰의 유혹을 이겨내며 2단계를 진행하다보면, 갑자기 뮤즈가 찾아오는 순간이 옵니다. 머릿속에 번쩍! 영감이 떠오릅니다. 해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생각들이 순식간에 정리되어 기발한 아이디어로 바뀝니다. “바로 이거야!!” 그동안 고민했던 부분이 시원하게 해결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적인 스토리 구조가 머릿속에 쫙! 펼쳐지기도 합니다. 그동안 고민하느라 수고했다며 뮤즈가 해답을 알려주는 느낌. 이건 뭐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 맛에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이거 진짜 재밌겠다!! 대박이다!! 확신이 듭니다. 작가들은 이런 현상을 ‘뮤즈의 속삭임’, 또는 ‘그분이 오셨다’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1단계를 설명할 때 말씀드렸던, 사기꾼에 관한 스토리를 쓸 때의 일입니다. 주인공이 상대의 휴대폰을 훔쳐야 하는 상황인데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작품에서 나온 방법들은 너무 식상했고, 그렇다고 색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도 않았습니다. 그동안 조사했던 수법들을 머릿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며 스토리를 구상하던 어느 날, 갑자기 번쩍! 새로운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그분이 오신 겁니다.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휴대폰 훔치는 방법! 몇 번씩 그 과정을 상상해본 후, 친구에게 실험해봤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친구의 휴대폰은 딱 5초 만에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물론 친구는 자신의 휴대폰이 없어진 줄 몰랐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종종 휴대폰을 훔치고 다닙니다. 라는 것도 거짓말이구요. 치열하게 스토리를 고민하면 반드시 깨달음의 순간이 온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진지한 자세로 스토리를 고민 또 고민하면 반드시 그분이 오십니다. 뮤즈가 다가와 속삭입니다.      


◎ 4단계 다시 보기     


    3단계를 지나면 자신감이 하늘을 찌릅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스토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때 냉정하게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합니다.      


‘혹시 나만 재미있는 건 아닐까?’      


    첫째도 둘째도 남이 재미있어하는 글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구상한 스토리는 반드시 타인의 검토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주변의 친한 친구 또는 가족에게 내 스토리를 보여줍시다. 이야기해줍시다. 그리고 피드백을 받아봅시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일반인의 평가가 더 좋습니다. 여러분의 웹툰 스토리를 보는 건 전문가 보다 일반인이 훨씬 더 많을 테니까요. 형제자매가 있다면 그들에게 보여주세요. 그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정확한 팩트폭격으로 당신의 심장을 후벼 팔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의 피드백을 귀담아 들으세요. 비평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칭찬은 잠깐 기분 좋고 끝나지만 비평은 내 스토리를 더욱 좋게 만듭니다.

    만약 주변에 스토리를 보여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해봅시다. 스스로 다시 검토해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스토리를 종이로 출력해서 소리 내어 읽어봅시다. 모니터로 봤을 때와는 다른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또는 원고를 다른 폰트로 바꿔서 읽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폰트만 바꿔도 원고가 낯설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스토리를 완성한 후,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흐른 뒤에 검토해야합니다. 짧게는 열흘, 보통은 한 달, 그 이상이면 더 좋습니다. 내 스토리를 완전히 잊고 거리를 두었다가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보면 어느 정도 객관화된 상태로 검토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 스토리를 재미없다고 하는데 어떡하죠?”

“제가 다시 읽어봤더니 너무 재미없네요. 어떡하면 좋을까요?”     


    내 스토리를 다른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하거나, 스스로 읽어봐도 재미가 없다고 느꼈다면 해결책은 딱 하나 뿐입니다. 다시 1단계로 돌아가 더 많은 자료를 공부하세요. 그리고 더 깊은 고민을 하고, 스토리를 수정해야합니다. 스토리 구상 1단계에서부터 4단계까지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좋은 스토리가 나옵니다. 거의 모든 작가들이 이런 과정을 반복합니다. 한 번에 뚝딱! 재미있는 웹툰 스토리를 쓰겠다는 욕심을 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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