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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일차] 과분한 인생

Peace, Love and Understanding - 측은지심

by 여운설

2023년 5월 27일 프로미스타 -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18.8 km


어머니께서 치통으로 고생하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평생토록 어디가 불편하다거나 아프단 말씀을 안 하시는 편이라 걱정이 컸다. 주치의는 학회에 참석하여 일주일 뒤에나 예약이 가능했다. 통증이 심해 진료를 미루는 게 마음에 걸렸다. 친한 선배의 자당이 부담될까 조심스러웠지만 고민 끝에 후배에게 부탁했다. 탁월한 실력에 환자와의 라포를 중시하는 철학을 가진 듬직한 친구다. 우려와 달리 흔쾌히 오시라 했다. 어제 염증 치료를 마쳤다는 소식을 받았다. 답례 인사를 할 겸 프로미스타에 도착해 S 원장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통화를 마친 후 지인을 알게 해준 소중한 인연에도 감사드렸다.


치통이 많이 완화되었다는 소식에 한 시름 놨다. 걱정거리가 사라져 부담 없이 하루를 시작했다. 연 이틀 같은 룸에 묵었던 중년의 아르헨티나 남성 둘이 눈인사를 하고 먼저 출발했다. 숙소 앞에서 웬디를 만났다. 누나와 기념 사진을 찍은 후 또다시 보자는 인사를 나눴다. 마을을 막 벗어날 무렵 대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뒤 돌아보니 마을 한편 위로 해가 솟아나기 직전이다. 6시 54분 빨간 해가 수줍은 얼굴을 내밀었다. 그간 일기가 따라주지 않거나 출발이 늦어 일출을 볼 수 없었는데 마침내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했다. 신자가 아니지만 감격스러운 마음에 기도 드렸다. 떠오른 태양을 등지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이슬 머금은 촉촉한 대지 위를 30분 가량 사뿐히 걸어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Población de Campos 마을에 들어섰다.


숙소 앞에 있는 성당, 일찍 서두른 보람이 있었다. 웬디와 헤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맞이한 까미노 일출. 해를 등에 지고 산티아고가 있는 서쪽을 향해 걷는 순례자 행렬.


마을 끝자락에서 작은 다리를 왼편에 두고 노란 화살표를 따라 직진했다. 10여 분 가량 길을 걷는데 뭔가 이상했다. 앞서 가던 순례자들이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게다가 소가 싸지른 배설물이 길 위에 가득해 걷기 힘들었다. 원래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난 짧은 코스로 가려했는데 우회 길로 잘못 들어섰다. 다리를 지나칠 때 표지판을 못 본게 화근이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기력과 시간을 허비한 데서 오는 심적인 대미지가 큰 탓이다. 너무 늦지 않게 알아차린 것에 만족하며 방향을 틀었다. 선뜻 실수를 자인한 행동에 보상받은 걸까? 도로 턱 길섶 옆에 검은 고양이와 눈을 마주쳤다. 널 보려고 이 길에 들어섰구나 라는 반가운 심정으로 가까이 다가서는데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 이상했다. 누나가 새끼들이 수풀 안에 있다고 일러줬다. 아깽이들이 부디 무탈하게 건강히 자라기를 바랐다. 지나쳤던 다리로 원점 회귀했다. 아까 놓친 왼편으로 구부러진 화살표가 보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내 인생도 이정표를 놓쳐 굴곡지거나 험한 길에 들어선 경우가 왕왕 있었다. 다행히 힘에 부쳤을망정 주위의 도움을 받아 나락에 빠지지 않고 비교적 무난한 여정을 이어올 수 있었다.

새벽녘에 어김없이 꿈을 꿨다. 이번에는 과 동기들 꿈이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동아리 동기와 후배들이 막판에 잠깐 나온 정도만 떠오른다. 가슴 졸이지 않은 걸로 보아 졸업 못하는 악몽은 아닌 듯싶다. 또렷이 생각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과학적으로는 간단한 이치다. 꿈은 단기 기억의 영역이다. 깨자마자 뇌가 기록하지 않으면 잊기 쉽다. 깊은 수면 중에 꿔도 기억하기 힘들다. 허나 속내는 다른 답을 원한 것 같다. 낯 부끄러운 과거를 잊으라고 말이다. 입학 후 동기들과 적잖은 교분을 나눴다. 비록 학회 활동을 하지 않았고 동기들과 어울려 다니지 않았지만 동질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다들 내가 야학과 동아리에 열심이라는 걸 이해해 줬다. 2학년 2학기에 휴학 아닌 휴학을 하여 점차 교류가 끊겼다. 2학년을 마친 친구들은 대거 군에 입대했고 홍일점 동기와 예비역 형들이 3학년이 되었다. 나는 정식으로 1년간 휴학했다. 결국 2학년 2학기부터 졸업할 때까지 과동기들과 수업을 같이 하지 못했다. 트리플 A 혈액형에 MBTI 분류상 ’I’ 형이라 먼저 연락하는 스타일이 못되어서 더 이상 동기들과 깊은 교감을 나누기 어려웠다.

곁에 없으면 마음이 멀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동기들은 이런 나를 밀어내기는커녕 기꺼이 안아주었다. 교내에서 마주치면 잘 살고 있냐, 야학은 잘 되냐며 격려했다. 몇몇 동기들은 좀 더 친했다. 그중에 예비역 J 형이 있다. 내 방황이 절정에 달할 무렵으로 기억된다. J 형이 모처럼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제안했다. 약속 장소에 갔더니 이제는 형수님이신 고시반 여자친구와 함께 나오셨다. 누님과 초면이라 조심스러웠으나 가벼운 근황을 시작으로 대화의 꽃을 피웠다. 막걸리 두어 통을 비울 즈음에 J 형이 고시반에서 CPA를 준비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입학 전에는 관심을 가졌으나 진학 이후로 별 뜻이 없어 에둘러 거절했다. 술자리를 계속 이어가다 정신 차려보니 택시 안이었다. 필름이 끊겼던 것이다. 순간 당황스러워 옷매무새부터 살폈다. 바지 끝단과 랜드로버 신발에 토한 흔적이 있었다. 형수님께 실례한 거 같아 난처했다. 언제 취했는지 알 수 없어 걱정만 하다가 다음 날 느즈막히 죄송하다는 전화를 드렸다. 별일 없었으니 괘념치 말라는 말에 안심 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시일이 꽤 지나 그날의 진실을 들었다. 듣기만 해도 식겁했다. 한창 술을 마신 다음 J형의 권유로 양형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시반 분위기가 어떤지, 형이 어떻게 지내는지 보여 줄 의도였을 게다. 하지만 거나하게 취한 내가 대판 사고를 쳤다. 불안한 시국에 나 몰라라 고시만 준비하면 쓰겠냐며 난장을 부렸다는 것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떳떳히 살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엄한 고시생에게 뒤집어 씌웠다. 머리를 식히려던 고시생들로서는 어이없을 일이다. 대거리가 안될 비쩍 마른 놈이 비틀거리며 시비거는 게 얼마나 같잖았을는지. 무엇보다 J 형에게는 예상치 못한 봉변이겠다.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고시반 조교를 뜯어말리고 이성의 끈이 진작에 끊겨 객기 부리는 나를 달래느라 얼마나 고생했으랴! 그런데 그날의 추문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이후에도 늘 웃음 지으셨다.

‘고시반 난동사건’은 젊은 혈기라 치자. J 형에게 죄송스럴 일이 잔뜩 똬리 틀고 있었다. 4학년 2학기 때 일이다. 2학년 2학기에 전과목을 수강 신청하지 않아 이수 못한 전공필수 과목 하나를 신청했다. 졸업하려면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 등진 것처럼 첫 수업 이후 무단 결강했다. 공부에 담 쌓았으니 중간고사를 패스했다. 담당 교수님의 연구 조교인 J 형에게 사정을 얘기했다. 부정한 청탁이라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학점이 나오게끔 도와주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최종적으로 F 학점으로 처리하실 거란 연락이 왔다. 교수님을 찾아뵀다. 성적은 통과했지만 출석 미달이라 자격이 없다며 나의 나태함과 불성실을 꾸짖으셨다. 반성하고 학교를 더 다니라 하셨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라 꿀 먹은 벙어리였다. 하지만 실망이 크실 어머니 생각에 나가라는 말씀에도 교수님 옆에서 한사코 버텼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숨을 쉬시며 어쩌면 되겠냐는 물으셨다. 말씀 떨어지기 무섭게 800쪽 분량의 고급회계를 정독하여 일주일 뒤에 리포트 두 권으로 요약하겠다고 약속드렸다. 간신히 얻은 기회였다. 반성의 의미로 성심을 다해 겨우 F학점을 면했다. 지금도 종종 출석일수 부족으로 졸업 못하는 꿈을 꾸는 이유이자 평생토록 J 형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부끄러운 과거다.

고마움을 전해야 하는 이들은 학부 동기들과 J 형뿐이 아니다. 대학원에 진학할 때 친형에게 모자란 입학금을 손 벌렸다. 나 때문에 형은 재학중인 대학원을 중도에 포기했다. 대학원 재학 중에는 지도교수님께서 경제적으로 많이 지원해주셨다. 석사 과정 내내 장학금을 받았지만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생활비 마련을 위해 휴학 했을지 모른다. 어디 그뿐인가 집에서 독립한 탓에 기거할 곳이 마땅찮아 선배와 동기 자취방을 전전하는 신세를 졌다. 취업해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상사와 직장 선배, 동료에 심지어 후배들까지 부족한 내게 여러 모로 힘이 되주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에 두 군데 회사까지 이력 사항이 동일한 동문선배 J 형은 어이없는 불찰에 크게 낙담한 나를 위로해주려고 1박 2일간 여행을 준비 했다. 채석강이 보이는 격포 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밤하늘에 불꽃놀이하며 고민을 달래주던 일 또한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추억이다.

분에 넘치는 인생의 조력자들이 하찮은 내 곁을 굳건히 지켜주었다. 내가 길을 잃거나 주저앉을 때마다 힘 내라 격려 해준 고맙고 소중한 인연들이다. 'You are my suhshine of my life(281)'처럼 음으로 양으로 나를 도운 지인이 내 인생의 은총 가득한 햇살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것이다 그간 걸어온 길이 아니라면 어떤 행로를 걸었을지 상상이 안 간다. 다만 나 홀로 이 길을 걷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내 모든 인연들과 어깨동무한 길일 테니까. 김 남주 시인의 시처럼 가로질러 들판 산을 만날 때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었을 길이다. 재능과 노력에 비해 과분한 인생을 살게 해 준 소중한 분들께 감사드린다.

지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내게 손길을 건넨 걸까? 인仁은 두 사람을 상징한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타인을 인식하고 서로 연관된 삶이라는 뜻이다. 서로 의지하며 존중하는 삶.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덕성이자 하늘의 본성이 인간의 마음속에 선천적으로 깃든 어진 마음씨다. 맹자는 사덕사단설四德四端說에서 인간 본성의 네 가지 덕성 중 인과 측은지심惻隱之心의 관계를 설파했다. 측은지심이란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깊이 슬퍼하는 마음이다. 곤궁에 처한 이들 돕고자 저절로 샘솟는 마음이 곧 어진 마음이자 자연스러운 인간의 덕목이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던 내게 아무런 대가 없이 흔쾌히 손을 내민 지인들에게 인의 향내가 그득했을 게 분명하다. 까미노 천사들도 측은지심이 충만한 인의 실천자이다. 이런 세상이라면 살만하다. 허나 언제부터인가 감탄고토甘呑苦吐가 인지상정이 돼버 렸다. 각박한 인심이 점차 천심을 대신하는 시대가 몹시 애석하다.

Elvis Costello and the Attractions은 'Peace, love and understanding? (284위)'에서 인이 사라지고 측은지심을 실천하는 이들을 비웃는 세태에 발을 굴렀다. 물신주의가 팽배할수록 자기에게 득이 되지 않을 일에 대해 관심 갖지 않는 가치관이 우세해진다.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인 이기주의가 지나칠 경우 온정을 베풀려는 사람들을 고리타분하거나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이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표리부동하다고 조롱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평화와 사랑, 이해심 같이 공동체를 위하는 이타적인 가치관이 어색해지는 현실이 서글프다.


Elvis Costello & the Attractions - (What’s So Funny ‘Bout) Peace Love and Understanding(1978년, 284위)

잠시 헤맨 길을 제대로 찾았다. 이제부터 탄탄대로다. 2차선 도로를 왼쪽에 끼고 쭈욱 앞으로 나가면 그만이다. 도처에 지뢰가 깔려 있긴 하다. 목장과 마을 진입로를 지날 때는 어김없이 가축들의 배설물이 잔뜩 널려 있다. 똥이야 밟아도 흙에 문대어 닦아내면 된다. 문제는 이슬이 내려 촉촉해진 대지위에 떼거지로 산책 나온 달팽이다. 시선 닿는 곳마다 달팽이들이 기어간다. 무거운 짐을 버거워하는 순례자처럼 제 몸뚱이보다 더 큰 집을 짊어 멘 채 풀섶을 향한 모습이 짠하다. 어떤 놈은 힘 겨운지 길 가운데 앉아 미동조차 않는다. 집이 없어 몸이 가벼울 민달팽이도 느리긴 매한가지다. 태평성대를 만난냥 어찌나 여유를 부리는지. 바쁜 걸음에 행여 달팽이를 밟을까 신경 쓰였다. 간혹 누군가 밟은 흔적을 볼 때마다 무신경하게 앞만 보고 갔을 순례자들이 원망스러웠다. 무엇이든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다른 생명을 희생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고기이든, 곡물이나 야채든 간에. 옛부터 자연과 동화되어 사는 사람들은 사냥감의 명을 거둘 때 먹이가 되어준 그들의 희생을 감사하며 넋을 위로한다. 아침 마실을 나왔다가 봉변 당한 달팽이들의 명운을 빌며 길을 나아갔다.


길을 잘못 든 덕분에 길냥이 모자를 만날 수 있었다. 아깽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했다. 메세타에서 처음으로 도로를 따라 걸었다. 아름드리 자리잡은 나무가 지루함을 달래준다.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 메세타는 현지인들의 실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아까 길을 잃은 마을명이 캄포스로 끝났는데 이후 만난 마을명도 마찬가지다. 레벤가 데 캄포스Revenga de Campos, 비야르멘테로 데 캄포스Villarmentero de Campos. 초원의 레벤가, 초원의 비야르멘테로란 의미겠다. 도화지 한가득 풀밭을 그리고선 서너 개 작은 점을 칠한 다음 그 점들을 얇은 실선으로 이으면 하루치 지도가 완성된다. 어지간한 길치라 해도 길을 잃기 어려운 메세타에서 오늘 까막눈이 돼 보았다. 어느 바에서 동양계 젊은 여성을 만났다. 누나가 한국인으로 착각해 우리말로 인사했는데 대만에서 왔단다-이 친구는 이후 땡볕 아래서, 카페에서, 알베르게에서 여러 번 조우했다-. 아무튼 외모만으로 함부로 판단하는 결례를 조심해야겠다.

6월이 코 앞이라 그런지 정오가 되려면 한참 먼데 작열하는 뙤약볕에 처음으로 더위를 탔다. 선선하게 걸으려면 출발을 앞당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 들어섰다. 마을 중심가 사거리 부근 하늘 위로 새들이 무리지어 한바탕 춤사위를 벌였다. 개선장군처럼 보무도 당당하게 마을에 들어서는 순례자를 환영한다는 듯 사방팔방 날아다니는 모습에 절로 감탄사를 뱉었다. 어제는 듣지 못한 새들의 합창은 군무群舞에 딸린 별책 부록의 보너스였다.


10시가 넘어서면서부터 처음으로 더위를 탔다. 뙤약볕을 피할 나무 그늘이 없어 더 그랬던 것 같다. 19km의 짧은 코스 덕분에 11시 반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다.


오늘은 수녀원에서 기부제로 운영하는 에스피리투 산토Albergue Espiritu Santo에서 묵는다. 11시 3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먼저 온 두 팀이 그늘 안에서 오픈 시각을 기다리고 있다. 세 번째로 체크인 했다. 곱고 인자하신 노수녀님이 수속을 밟아 주었다. 특이하게도 객실 이름을 대륙명에서 따왔다. 순서에 따라 한 팀씩 대륙별로 배정하는데 우리는 아프리카 방을 지정받았다. 널찍한 아프리카 방에는 아홉 개의 단층 베드가 준비되어 있다. 여유 공간이 많아 너무나 안락했고 샤워실이나 세탁실 등 고용시설들이 흠잡을 데 없이 정갈하게 관리되어 있다. 수녀원에서 정성을 다해 운영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넋 놓고 쉬는 와중에 아르헨티나 부부가 맞은편 베드에 자리했다. 세탁실이 잠긴 줄로 오해해 한참 손 빨래하여 팔뚝이 불거지게 물기를 짜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아래 널었다. 고생스레 빨래를 마쳤는데 순례자 한 명이 옆 문을 열고 나온다. 세탁비는 건졌다며 서로 위로했다. 사이좋은 남매의 정신승리였다.


비만 오지 않으면 스페인은 빨래하기 좋은 나라다. 강한 햇살에 자연 살균되어 뽀송뽀송하게 마른다. 꿉꿉하거나 군내 나지 않아 상쾌하다. 노수녀님께 추천받은 레스토랑에서 이른 만찬을 했다. 배 두드리며 나오다가 숙소가 오픈되기를 함께 기다렸던 한국인 부자와 마주쳤다. 맛도 좋고 가성비가 괜찮다 일러줬다. 화창하던 하늘이 잔뜩 신경질이 난 것처럼 어두컴컴해졌다. 바람이 거세지고 먹구름이 몰려온다. 한바탕 소나기를 퍼부을 기세다. 알베르게에 도착하기 무섭게 세찬 빗줄기가 몰아친다. 우리야 진즉에 빨래를 걷었으나 두 부자의 빨래가 고스란히 빗속에 널려 있었다. 그냥 놔두면 쫄딱 없이 비에 젖을 게 분명했다. 잠시 비를 맞더라도 옮겨주자며 누나와 눈빛을 교환했다. 주섬주섬 빨래를 챙겨 처마 안쪽에 들여놨다. 우리 마음속에 측은지심이 약간이라도 살아 있음을 느껴 감사했다.


정성스레 운영되는 에스피리투 산토 알베르, 오늘의 노고를 보상받으려 제대로 일광욕하는 옷가지들, 예쁘고 아담한 마을 카리온 데 로스 콘테스


흔히 돈에 연연하는 이들을 속물이라 칭한다. 돈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대는 건 낯 뜨거운 일이다. 독일의 게오르크 지멜은 이런 '돈' 문제를 철학적으로 고찰했다. 그는 '돈의 철학(2013년)'에서 화폐가 개인의 자유를 가져오는 순기능과 인간 소외의 역기능을 짚었다. 사람들이 돈을 벌기 전에는 부를 쌓는 것에 집중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 부를 축적한 다음에는 삶의 양식과 사회적 관계에 집착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한국 사회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믿는 젊은 세대들은 파이어족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族을 동경한다. 비단 MZ세대뿐이 아니다. 많은 시민들이 가능하면 경제적 자립을 토대로 조기은퇴해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경제적 자유가 너무 간절한 나머지 공동체 유지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공공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인색하거나 화폐의 교환 기능이 가져올 분업이 야기한 노동 소외를 외면한다.

자유와 소외. ‘돈’의 두 얼굴이자 빛과 그늘이다. 돈에 대해 서로 다르게 이야기한 노래가 있다. Barrett Strong은 'Money(that’s what I want, 288위)'에서 삶의 최고는 자유지만 그걸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며 돈이 최고라 말한다. 단, 돈으로 모든 걸 가질 수 없다는 전제를 깔아 놓긴 했다. 다른 곡으로는 The Beatles의 'Can’t buy me love(289위)'가 있다. 비틀스 팬이 아니어도 들어봤을 곡이다.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으니 그렇게 필요한 게 아니라 말한다. 이 곡이 나오기 2년 전에 비틀스가 바렛 스트롱의 'Money'를 리메이크해 불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내게는 리메이크보다 원곡이 더 낫게 들린다.

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복잡다단한 이야기가 싫은 분을 위해 준비한 노래가 있다. 펑크 록의 경쾌한 리듬이 압권이다. 'Heart of glass(1979년)'에 이어 Blondie를 세계적인 밴드로 등극하게 해 준 노래이자 그룹 최고의 히트곡, 바로 'Call me(283위)'이다. 때로는 머리를 비운 채 흥쾌한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것도 삶의 일미 중 하나다.


Blondie - Call Me(1980년, 28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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