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대되는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모스텔라레스 언덕의 절승이다. 이 언덕은 카스트로헤리스에서 사 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주변 평지보다 백이십 미터 남짓 높아 언덕 아래로 펼쳐진 초원을 조망하기 적당하다. 이틀 앞서 이곳을 지나간 김 선배가 일출이 특히 장관이라 알려 왔다. 고원 정상에서 일출과 조우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일찍 일어났는데 강우 예보가 있어 동트는 장려한 순간을 맞이하기 어려웠다. 하여 찬찬히 아침을 먹은 다음 여섯 시 오십 분에 느긋하게 출발했다. 막상 길을 나서니 비가 오지 않았다. 대신에 언제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구름이 잔뜩 꼈다. 게다가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끈을 살짝만 풀어도 모자가 날아갈 정도다. 십오 일간 겪은 일정 중에 가장 드셌다. 그래도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에 굴하지 않았다. 온몸에 단단히 힘을 주어 묵묵히 한 발자국씩 모스텔라레스로 향했다. 이미 까미노에 제대로 녹아든 길손의 전진을 감당하기에 강풍은 너무 미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멀찌감치 솟아있는 정상은 늘 까마득해 보인다. 언제 오르려나 싶지만 꾸역꾸역 걷다 보면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만물지상의 권좌 위에 서게 된다. 모스텔라레스 언덕 정상에서 사방을 내려보는 기분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언덕 아래에 무릎 꿇어 고개 숙인 초원을 만기친람 하는 황제의 심정으로 오시하는 맛은 겪어 본 이만 알 수 있다. 어제 유심 충전을 해드렸던 스페인 젤라 부부를 언덕에서 재회했다. 반갑게 인사하고선 사진을 찍어 드렸다. 두 분은 우리보다 천천히 걸을 계획이었다. 아마 산티아고까지 다시 뵙지는 못할 게다. 김 선배를 떠나보낼 때처럼 서로를 격려하며 쿨하게 헤어졌다. 배낭 하나를 동키로 보낸 가벼운 행장에 늦지 않은 출발이라 정상의 절경을 오래 감상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바람이 너무 거칠었다. 경적을 세차게 울리는 폭주 기관차처럼 휘몰아치는 돌풍에 불안한 감정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김 선배가 보내준 사진으로 장엄한 일출을 머릿속에 대신 그리며 길을 재촉했다. 언덕을 내려왔다. 바람이 상당히 잦아들었지만 사위가 뻥 뚫린 평원이라 몸 피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메세타가 만들어낸 대자연의 경이로운 풍경을 벗 삼아 적당히 쉴 곳을 찾을 때까지 걷기로 했다.
끊임없이 몰아쳐 오는 강풍에 메세타 고지대마다 설치된 풍력 발전기가 제대로 바쁜 날이다. 블레이드가 바람개비처럼 연신 쌩쌩 돌아간다. 전력 그리드에 적합한 전기를 만들려면 거대한 날개가 풍속과 상관없이 일정한 속도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 아마도 감속기가 눈코 뜰 새 없이 비명을 지르며 등골이 휘도록 일할 게 틀림없다. 메세타 강풍을 대면하기 전까진 고원의 비바람에 고생한 경험담들이 와닿지 않았다. 판초우의가 뒤집혀 입으나마나였단 말이 실감 나지 않았다. 겪어보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폭우를 맞아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것도 아닌데 따스한 물로 샤워를 하고 싶어졌다. 바람이 극심한 나머지 새들마저 잠잠해졌다. 청아하게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뭇가지와 풀숲에 몸을 숨긴 건지 주위는 온통 질주하는 바람 소리뿐. 위압적인 바람에 새들도 어찌할 수 없나 보다. 하긴 만물의 영장도 무지막지한 폭력에 굴종하기가 다반사인데 하물며 미물인 새들이 오죽하랴!
정말 납작한 납작 복숭아, 까미노를 가로막은 모스텔라레스 언덕에 올라 사위를 오시해 봤다. 거센 바람에 잔뜩 낀 구름이 조금씩 물러난다.
선진국에 근접한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 치유되지 않는 부끄러운 민낯이 있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부 집권 시기에는 권력 기관과 기성 언론들이 백가쟁명의 소신을 주장하기 바쁘다. 그런데 보수 색채가 강한 정부가 들어서면 대체로 알아서 몸조심하는 구태를 반복한다. 군사 정부처럼 언로를 틀어막고 입에 재갈을 물린 것도 아닌데 제 풀에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경향이 짙다. 언론은 비판적인 여론을 쫓아야 할 귀를 무심하게 닫는다. 권력을 향해 대담한 질문하긴커녕 혀 짤린듯 침묵으로 일관한다. 문민정부 이후 안기부를 제치고 명실상부하게 최고 권력 기관으로 부상한 검찰 또한 대동소이하다. 검찰 내부 비리에 얼굴을 돌리기 일쑤인 건 차라리 애교스럽다. 탁주 한 사발 들이켜 오른 취기에 기대어 명 받은 대로 꼭두각시 칼춤을 추는 망나니 마냥 무소불위의 기소권을 전횡한다. 무고한 이에게 의도적으로 남용하거나 명백한 범죄 혐의를 모른 척 눈감아준다. 검찰의 과도한 권한을 제한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검찰 내부 게시판은 분기탱천한 은거지사의 상소를 흉내 낸 호기로운 검사들의 비난으로 잔뜩 도배되었다. 그랬던 이프로스가 부조리가 판치는 요즘 유독 쥐 죽은 듯 한산하다. 검찰에 대한 세간의 민심이 흉흉하다 싶으면 골방에 처박아 둔 존안자료에서 쓰레기 하나 꺼내 보란 듯이 난도질하는 변죽만 울려댄다. 정권을 견제할 사정기관이 권력과 비선의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프리덤 하우스나 국경 없는 기자회가 집계하는 언론자유지수가 급전직하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나서야 대가 없는 자유란 어불성설이었음을 깨닫는다.
목가적인 향내가 물씬한 초원에 어울리지 않을 답답한 실정을 곱씹으려니 참담하다. 평정심이 충만해야 할 순례자 답지 않게 하릴없이 울분이 끓어오른다. 라스타파리아니즘이 가득한 노래로 간신히 달랬다. Bob Marley의 'Get up stand up(296위)'란 곡이다. 밥의 추모 앨범 'Legend(1984년)'에서 애청하는 작품 중 하나다. 밥이 아이티에서 공연하는 동안 빈민가에서 영감을 얻어 곡을 썼다고 알려진다. 어쩌면 아이티의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그가 자라났던 트렌치타운을 연상했는지 모른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 네 권리를 주장하고 싸움을 포기하지 말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이 곡은 우리로 치면 '아침이슬(1971년)'에 견줄만하다. 아이티 국민들이 애창하는 저항 가요이자 레게의 신이었던 그가 생애 마지막 공연에서 부른 엔딩송이었다.
생전에 그는 자메이카에서 발흥한 라스타파리교에 심취했다. 라스타파리안들은 아프리카인들을 고대 히브리 민족의 후예라 여겼다. 아프리카 흑인들이 신에게 순종하지 않은 죄를 저질러 백인의 노예로 전락했다 믿었다. 에티오피아 황제를 재림 예수로 여겨 하일레 셀라시에 1세가 아프리카계 서인도 제도 주민들을 선조들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데려다줄 것을 소망했다. 라스타파리아니즘은 내세의 행복에 연연하지 않는다. 우리 곁에 재림 예수가 실존하는 만큼 현실의 억압에 당당히 맞설 것을 주장한다. 레게 머리로 알려진 드레드록스는 이들을 구별하는 헤어 스타일이다. 머리카락을 여러 가닥으로 땋아 사자 갈기처럼 부풀려 길게 늘어뜨린다. 1968년 어느 날 밥은 자신의 상징이기도 한 드레드록스를 미련 없이 잘랐다. 머리를 둥그스름하게 부풀린 아프로(Afro) 스타일로 변신해 가두시위에 합류했다.
Bob Marley - Get up Stand up(1975년, 296위)
1968년은 온 세계가 혁명의 깃발로 뒤덮인 한 해였다. 변혁을 요구하는 도도한 흐름은 사소한 학내 이슈에서 비롯되었다. 프랑스 낭테르 대학생들이 기숙사 통금과 남학생들의 여학생 기숙사 출입금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학생들의 시위가 두 달을 넘기자 정부가 낭테르 대학을 폐쇄했다. 5월 3일 이에 항의한 소르본 대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곧이어 파리 전체 노동자의 삼분의 이가 연대 파업을 하며 시위에 동참했다. 학생과 노동자들의 시위가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국가기능이 마비될 지경에 이르러 드 골 정부는 의회를 해산해야 했다. 불길은 이내 주변국으로 퍼져 나갔다. 파리에서 베를린과 로마로 번졌다. 급기야 혁명의 물결은 바다 건너 영국과 미국에까지 이르렀다. 연초부터 반전 운동으로 고무되었던 양국의 젊은이들이 학교를 점거하며 광장으로 뛰쳐나왔다. 남미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다. 태평양 건너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학생 시위의 신풍이 도쿄와 오사카를 강타했다.
시위대의 요구는 학내 문제에서 남녀평등과 여성 해방에 이어 미국의 베트남 침공과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반전과 평화, 인권과 평등과 같은 보편적인 진보의 가치로 확대되었다. 록밴드 The Rolling Stones의 멤버 믹 재거는 같은 해 삼 월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베트남전 반대집회에 참가했다. 당시 최고 인기 아이돌 가수가 가두시위에 나섰으니 화젯거리였을 것이다. 시위 집행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 그는 도중에 행렬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나선 오 월 파리 대학생들의 시위를 보며 68세대를 지지하는 노래를 작곡했다. 롤링 스톤즈의 노래 중 가장 정치적인 작품인 'Street fighting man(295위)'가 탄생한 비하인드 스토리이다. 가투에 동참하라 외치면서도 록밴드의 일원인 자신은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는 신세임을 토로했다.
The Rolling Stones - Street Fighting Man(1968년, 295위)
프랑스 5월 혁명 내지 68 운동이라 일컬어진 대규모 시위는 열악한 교육환경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전후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서로 다른 가치가 오랫동안 충돌하여 누적된 갈등과 모순이 폭발한 결과였다. 전후 기성세대는 1, 2차 세계 대전을 겪은 와중에 부모와 동년배들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나치와 이에 부역한 비시 정부 치하에서는 생존이 최우선이었다. 해방을 맞아 뼈 빠지게 일해 참혹한 폐허뿐이었던 조국을 자기 손으로 재건했다는 자부심이 강했다. 개인의 자유보다 국익을 앞세웠고 기독교적 윤리의식이 무척 강했다. 종전 후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영광의 삼십 년’의 주역으로서 소비자본주의의 훈장을 당연시했다. 그러나 68 세대는 보수적이며 물질 만능주의에 경도된 부모 세대들과 달랐다. 물질적 풍요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의 유혹에 빠지는 걸 경계했다. 권위주의적인 구질서를 배격하고 보다 많은 자유를 바랐다. 이런 해석이라면 프랑스 5월 혁명을 촉발시킨 총성은 첨예한 세대 갈등의 비약이었을 것이다. 21 세기 한국 사회에서 점차 구체화되는 세대 간 가치 충돌 양상과 닮은 부분이 많아 보인다. 오래전 프랑스를 뒤엎었던 혁명은 우리네 모든 부모와 아이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살아있는 역사이다.
자유를 향한 열정은 흑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백인들의 노골적인 차별을 묵묵히 견뎌내던 흑인들이 혁명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가수 James Brown은 'Say It Loud, I’m black and proud(305위)'에서 편견과 도그마에 굴종하길 거부하며 스스로에 자긍심을 갖고 권리와 대가를 요구하라고 일갈한다. 흑인의 긍지를 잃지 말라 노래했다. 이 곡을 감상하며 한국의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가 각자의 긍지를 잃지 말기를 희망했다. 흔히들 한국의 진보는 도덕적이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말한다. 이 명제의 진위를 논하려는 게 아니다. 이런 세평이 자자할 정도로 양 진영은 자신의 도덕성과 능력에 자긍심을 가질 거라는 가정에서 하는 말이다. 이제는 상당수 시민들이 진보의 도덕성을 의심하고 보수의 무능함을 혹평한다. 자신들이 존립해야 할 근거가 부정당하는 것이다.
나는 달리 말하고 싶다. 진보는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라고. 세상에 털어 먼지 안나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먼지 한 톨 없는 이들만 진보를 부르짖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완전치 않은 존재다. 비록 불완전해 겨가 묻었어도 끊임없이 자기를 돌이켜 정진할 굳은 의지만 변하지 않았다면 진보 대열에 동참할 자격이 충분하다 여긴다. 한편 보수가 무능에서 벗어나려면 자기부정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싶다. 무엇이 자기부정일까? 보수주의는 전통적인 제도와 관습, 가치를 중시하는 이념이다. 따라서 기존 사회 질서와 역사가 연속되게 하는 제도와 관행이 유지되길 원한다. 기득권을 인정하는 만큼 대부분 시장 경쟁으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받아들이는 우파와 결을 같이 해 보수 우파라 불린다. 일제 강점과 분단, 그리고 동족상잔을 겪은 한국의 보수 우파들은 전통과 역사를 이어받지 못했다. 위정척사와 왕정복고를 추구한 복벽파들이 주축이었던 전형적인 보수세력이 궤멸된 자리를 개화기의 보수주의자들이 대신했다. 이들은 자유, 민주, 공화주의라는 서구의 이념을 중시했다. 이후 민족주의와 결부하여 근대화를 추구했다. 일제 강점 후 독립운동을 하던 세력 중 우익 계열은 사회주의 계열과 차별하는 수단으로 민족주의를 강조했다.
한국 보수의 역사적 배경에 근거하면 민족주의적 가치를 희석하는 행위야말로 한국의 정통 보수주의에서 일탈하는 자기부정이다. 나는 보수의 처참한 몰락이 구시대 인물과 부왜(附倭) 인사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결과라 감히 단언한다. 전자는 건강한 보수라면 하기 힘든 시대착오적인 궤변을 늘어놓는다. 후자는 21세기판 대동아 공영을 획책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단체, ‘일본회의’의 주장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한다. 톨스토이는 극단적인 애국심은 인위적이고 비이성적인 유해한 감정이라 신랄히 비판한 바 있다. 배타적인 민족주의 또한 유해하긴 마찬가지다. 내가 보수에게 바라는 민족주의란 편협한 감정이 아니다. 보편타당한 인류애를 바탕으로 하되 외세의 부당한 위협이나 폭력적 침탈에 대항하려는 민족의식이다. 민족의 이익에 반해 외세에 봉사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막아내려는 최소한의 의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만 지적하고 넘어가련다. 초대 국회가 제정한 제헌 헌법의 전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 ~ 이하 생략 ~'
뉴라이트가 국부로 추앙하는 이승만은 제헌 의회 의장의 자격으로 제헌 헌법을 통과시켰다. 그는 초대 국회의장으로서 대한민국의 법통이 기미년 삼일운동에 있음을 명명백백하게 천명했다. 독립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1919년에 대한민국을 건립했으니 과연 8.15는 광복인가? 건국인가? 자신들이 존숭 하는 국부의 언행마저 부정하는 자가당착한 부왜 세력이 이를 가리려 보수를 참칭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낯 뜨거울 일이다.
누가 메세타를 지나는 까미노가 지루하다 했는가? 부르고스를 떠난 지 삼일 째다. 혹시 앞으로는 모르겠다.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지금껏 지나친 곳곳마다 눈에 담고 가슴에 새기고 싶지 않은 경관은 하나 없었다. 현대판 죽장망혜(竹杖芒鞋)의 소박한 차림으로 기행 하는 나그네라면 모두가 무위자연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다가 종국에는 무아지경에 빠질 것이다. 이런 환상적인 명승지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이데올로기와 혁명의 역사 따위를 복기하는 나는 누구인가? 천외천, 무릉도원에 오르길 희망하다가 끝끝내 현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질곡의 땅으로 되돌아온 등선에 실패한 도인일까? 아니면 하등 쓸모없을 잡스럽고 단편적인 지식을 제 입맛에 따라 이리저리 억지로 꿰 맞추려는 구태의연한 얼치기일까? 무엇이 되었든 남은 걸음이라도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고 싶다. 천혜의 아름다움을 향유해보고 싶다. 모스텔라레스 언덕을 내려와 한 시간 남짓 걸었다.
까미노에는 이처럼 아름다운 경치가 가득하다. 거친 바람때문이었을까? 절승에 어울리지 않을 현세의 이데올로기를 소회했다. 오직 푸르른 건 들판위에 선 생명의 나무일뿐인데.
들판에 작은 성당이 서 있다. 성 니콜라스 소성당이다. 이곳을 지나는 순례자이 쉴 만한 벤치가 마련되어 있다. 내실 제단 앞에 신실한 길손들이 조용히 기도할 수 있게끔 테이블과 의자를 비치해 뒀다. 이테로 델 카스티요와 이테로 데 라 베가를 거쳐 카스티야 운하가 있는 보아디야 델 까미노까지 아름다운 길이 이어진다. 운하를 옆에 끼고 미경에 취해 지루한 줄 모르게 프로미스타에 들어섰다. 오늘도 일찌감치 도착했다. 예약한 루스 데 프로미스타 알베르게에 두 사람이 앞서 기다리는 중이다. 한 시 반에 오픈이란다. 문 열려면 아직 사십 분 정도 남았다
초원길을 가로질러 보아디야 델 까미노에 들어서면 카스티야 운하가 순례객들을 맞이한다. 한가히 흐르는 운하를 따라가다 보면 오늘 묵을 프로미스타가 길손이 기다린다.
인류가 오랜 역사에서 세계적인 혁명의 도미노를 체험한 건 오직 두 차례뿐이다. 바로 1848년 2월 혁명과 1968년 5월 혁명이다. 공교롭게 모두 프랑스에서 촉발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전부 실패했다. 전자의 끝은 제정의 복귀였고 후자는 드 골 정부의 총선 승리와 드 골의 후계자 퐁피두가 대통령 취임하며 마무리되었다. 자본주의에는 공짜점심이 없다는 격언이 있다. 모든 일에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시대 전환이라 해도 예외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의 거장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명작 ‘자이언트 로보’의 OVA 리메이크작(1992년)에는 시대 전환을 관통하는 질문에 비정한 해답이 담겨 있다.
'행복은 희생 없이 얻을 수 없는가? 시대는 불행 없이 넘을 수 없는가?'
68 운동은 청춘의 과열로 너무 일찍 영락했다. 언제나 중천에 떠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서산낙일이었다. 괴테는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오직 푸르른 것은 생명의 나무뿐’이라 말했다. 기실 이념은 그 자체로 중요치 않다. 이념을 따지는 건 인간이 좀 더 윤택하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시간은 항상 미래로 흐른다. 그러니 이미 지난 과거 현상을 현재 시점에서 규명하는 이론과 이념에 맹목 해서는 안된다. 과학적 이론과 이데올로기는 부단히 변하는 현실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류의 삶이 한 단계 더 진전할 수 있다. 파우스트 박사가 언급한 명제는 인간의 삶이 이론의 한계를 넘어선 고귀한 존재임을 선언한 경구였을 것이다.
혁명이 가져다 줄 열매는 달콤하다. 하지만 공짜가 아니기에 그 과실을 얻기 위해서는 파우스트 박사처럼 영혼을 걸어야 한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 조화를 이루어 공동체 안에서 인간의 진정한 가치가 구현될 유토피아를 만드는 걸 마지막 프로젝트로 삼았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인류는 구원을 얻는다. 그 대가로 자신의 영혼은 악마에게 구속된다. 자유의 땅이 완성되기 직전 파우스트 박사는 다음과 같은 최후의 유언을 남겼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살고 싶다. 그러면 지금 멈추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혁명의 깃발은 갈가리 찢겼으되 그 숭고한 기치마저 덧없이 사그라진 것은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혁명의 씨앗이 되살아 꽃을 피웠다. 2월 혁명이 민주 공화정의 토대가 되고 자본주의의 폐해를 완화시킬 사회주의 사상을 발흥시켰듯이 자유와 인권, 평화와 평등을 강조했던 5월 혁명은 오늘날 프랑스인들에게 육화 된 이념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적어도 그들은 누구처럼 자유를 공허하게 외치지 않는다. 역사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인류는 한 줌의 자유를 위해 무수한 피를 흘려야 했다. 초개와 같이 목숨을 내던졌다. 본디 자유는 그런 희생을 치르고서야 얻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영혼 없는 연설문을 앵무새처럼 외워대는 자신의 모습에 취한 나르키소스가 되어서는 일 년에 한 번 기념식 단상 위에 올라 자유민주주의를 기십 번 외쳐댄들 결코 얻을 수 없다. 한국호를 책임질 선장에 어울리지 않을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존재가 거론하기엔 너무나 거룩하고 묵직한 주제이다.
때마침 알베르게 문이 열렸다. 재빨리 정리를 마친 다음에 길건너편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무척이나 자유가 고픈 궁상한 신세를 잊기 위해서라도 돼지 안심 스테이크를 푸짐하게 먹었다. 며칠 전 극심했던 허기가 어느덧 남의 일이 되었다. 역시 나는 배 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에 어울리나 보다. 던치(Dunch)로 먹은 터라 저녁은 패스. 후원에서 햇볕을 쬐는 순례객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길냥이를 보자 하쿠가 그리웠다. 아내 말로는 며칠 전부터 칭얼대기 시작했다 한다. 하쿠와 영상통화를 했다. 아빠는 보이지 않고 내 음성만 들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하쿠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한국에 있을 아내와 하쿠, 타타가 보고 싶어 진다. 유리창 너머로 왁자지껄 들리는 순례자들이 떠벌리는 수다에 아랑곳없이 객실 모퉁이에서 필론과 돼지가 그러했듯 나도 눈을 감아 무심히 잠을 청했다.
오늘은 불편했을 수 있는 부족한 소회의 글을 끝까지 읽어준 분들에게 특히나 더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달래준 산티아고 길냥이. 편히 쉬고 있는 여성 순례객에게 양해를 구해 누워 놀아달라 보채는 길냥이를 찍었다. 나는 역시 배부른 돼지를 원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