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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일차] 욕화중생성후랑

Hotel California - 한강의 기적이 기억해야 할 빛과 소금

by 여운설

2023년 6월 13일 팔라스 데 레이 - 리바디소 다 바이소 25.4km


이틀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출발이 지체되어 일찌감치 누나의 배웅을 받으며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사흘째 안개가 무성했다. 하얗게 그늘진 창백한 얼굴 같이 희멀건 안개를 헤쳐 나가다가 미국인 모녀를 만났다. 꽤나 부지런한 그녀들이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지칠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어깨를 나란히 하자 언제나 그렇듯 활짝 웃으며 아침 인사를 한다. 웃음에 인색한 나를 스스럼없이 무장해제시키는 미소가 늘 고맙다.


아침 안개가 Procol Harum의 고전적인 곡 ‘A whiter shade of Pale(57위)’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어울렸다. 부드럽게 흐르는 안개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BWV 156’에서 영감을 얻은 느린 코드의 오르간 연주가 아우러졌다. 잔잔한 멜로디를 들으며 적막한 숲길에서 나를 되돌아 본다. 연구릿빛을 희미하게 머금은 모녀의 하얀 얼굴처럼 창백한 그늘의 수렴 뒤에 가려진 사물들이 본신의 색채를 은은하게 발산시켰다. 끝까지 건강하라는 당부를 던지고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 부유하는 노래가 되어 안개 너머로 흘러 들어갔다. 서늘한 아침이 지나면 헛되이 사라질 농무와 달리 내 순례의 기억에 이름도 모르는 그녀들이 오랫동안 남으리라는 것을 예감하면서.


Procol Harum - A whiter Shade of Pale(1967년, 57위)


이미 여러 차례 느꼈듯이 갈리시아 지방의 우거진 숲은 늘 제주도의 원시림을 연상시켰다. 무성히 자란 나무에 덩굴과 이끼가 잔뜩 낀 자태가 영락없는 곶자왈 환상숲이나 비자림을 빼닮았다. 비록 현무암은 아니지만 초지 위에 돌담을 쌓은 것도 올레길에서 흔한 풍경이다. 까미노의 모든 길이 다 좋았지만 갈리시아 구간은 특히 여운이 깊었다. 산티아고가 지척이라는 기대감이 가벼운 흥분의 마루를 불러일으키되 조만간 대장정을 마친다는 아쉬움에 고양됐던 쾌감이 침잠의 골로 가라앉는 감정의 진폭을 겪어 그런 거 같다.


이른 아침에 앞서가는 미국인 모녀, 만날 때마다 환한 미소로 맞이해줘 고마웠다. 제주 숲 운치가 나는 갈리시아 숲 길. 우리집 막내 이브 필이 나는 길냥이


10시 즈음에 미국 앨라배마에서 오신 한국인 할아버지를 만났다. 며칠 전부터 뵀는데 워낙 걷는 폼이 유별나 멀리서도 눈에 띈다. 도포 자락 휘날리듯 양팔을 좌우로 벌려 스틱을 휘적이며 팔자걸음으로 재게 걸으시는게 독특하다. 그간 인사만 드리고 지나치다가 종착점이 다가오는 김에 말벗을 자청했다. 대화를 나눠보니 대단한 노익장이셨다. 여든 초반의 나이에 혼자 까미노에 나선 것도 놀랍지만 매일 30km 이상을 걸어 26일 만에 산티아고에 들어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숙소가 여의치 않은 날에는 40km도 걸으셨단다. 어지간한 3,40대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강행군이 힘들지 않으냐 물었더니 사업이 바빠 한 달 내로 미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대답 다음 말이 걸작이다. ‘걷는 것만큼 쉬운 게 없어. 사업이 걷는 것처럼 쉬우면 원이 없겠어. 중고등학생 때 매일 3,40리를 걸어 다녀 걷는 건 이골이 났지.’ 해학적인 답변에 실소하며 그러시겠다고 맞장구쳤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사무엘 울만의 ‘청춘’을 실천하셨을 것 같다.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은’ 당신은 80세가 넘어도 여전한 청춘이시다. 치열하게 사업하면서 철저히 시간 관리하고 누구보다 순례에 열정적인 할아버지는 틈만 나면 나태했던 내게 커다란 귀감이셨다. 내가 즐기하는 작가 미상의 한시를 소개한다.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니

전랑사재사탄상前浪死在沙灘上 앞 물결은 모래톱 여울에 스러지네

전랑불사회해상前浪不死回海上 앞물결이 스러지지 않고 바다로 돌아가면

욕화중생성후랑欲火重生成後浪 꺼지지 않고 되살아나 뒷물결 된다네


남들은 한참 전에 인생 3막을 맞았을 연세에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에 기자재를 납품하는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당신이야말로 뒷물결에 밀려나 스러진 앞물결과 달리 대양으로 살아 돌아가 다시 장강을 흐르는 뒷물결이지 않은가! 비록 나보다 걸음이 느릴지라도 아침 6시에서 오후 5,6시까지 걸어 나를 늘 앞서 나간, 요 며칠간 나와 할아버지의 경주는 마가복음 10장 31절에 딱 들어맞는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 말씀은 의미심장하다.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고자 고난을 자처하거나 가난을 선택한 이들과 예수님이 이끄는 영생을 기꺼이 받으려는 사회적 약자가 하느님에게 먼저 구원받을 거라는 희망의 암시를 던진다.

세상이 다 내 것인냥 두 팔을 길게 휘적이며 씩씩하게 걷는 앨라배마 할아버지, 낯선 순례자가 무서운지 승용차 꽁무니 아래 숨어 뻔히 쳐다보는 길냥이. 고요한 갈리시아 숲이 포근하다


또한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혈통만 믿고 메시아의 왕국에서 살거라 장담하는 유대인이나 남보다 먼저 예수를 받들었다 해도 기도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심판의 날에 나중 된 자로 전락한다는 섬뜩한 경구의 말씀이다. 내가 이해하는 기독교는 평생토록 하느님과 예수님 말씀을 사회에서 실천하는 종교다. 아무리 교회에서 공염불로 성경을 읽거나 찬송을 외친들 천국행 티켓을 얻지 못할 거라 믿는다. 먼저 된 이가 나중이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말엔 변화의 진리가 담겨 있다. 변화에 대한 영원한 메시지를 노래했다고 알려진 명곡이 있다. Bob Dylan의 ‘The times they are a-changin’(59위)’다. ‘국회의원, 정치인들아. 부름을 경청하라. 문 앞을 가로막지 말고 마을 회관을 닫지 마라. 시대는 변하므로, 체제는 빠르게 사라지니 지금 정상에 선 자들은 훗날 나중이 되리라.’ 61년 전에 새해 벽두 한남동 관저 주변 풍경을 흡사히 묘사한 것 같아 전율스럽다.


Bob Dylan - The Times They Are A-Changin’(1964년, 59위)


1966년 미국 LA 시의회는 캘리포니아 웨스트할리우드 선셋 스트립의 클럽 판도라스 박스에 출입을 금지했다. 매일 밤 젊은 이들이 몰려들어 교통 혼잡을 일으킨다는 이유에서다. 클럽을 애용하던 이들뿐만 아니라 이 지역 자영업자와 열성 음악 팬들이 시의회의 처사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클럽은 다음 해 폐쇄되었으나 분노에 찬 시위대들은 1970년대 초까지 집회를 이어갔다. 권위적인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 저항 운동의 상징이 된 판도라스 박스를 기념하기 위해 Buffalo Springfield가 ’For what it’s worth(63위)’를 불렀다.


청춘들의 저항은 때로는 사회의 금기를 저격하기도 한다. 기성세대로서는 사회 질서를 흩뜨리는 행동이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관습과 고정관념을 벗어나려는 청춘이 대담한 재치를 선보이려는 욕구를 어느 정도 용인해야 변화가 일지 않을까? The Sex Pistols는 1977년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25주년 기념식에서 왕정을 조롱하려는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템즈강에서 ‘엘리자베스호’에 승선해 ‘Anarchy in the U.K.(53위)’를 연주할 작정이었다. 당돌한 공연 시도는 경찰의 제지로 무산되었지만 노래속 저항 정신을 실천하려 한 그들의 진정성을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오늘날 영국인들이 왕실의 지속된 추문에 실망한 나머지 입헌군주제를 지지하는 여론이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진 걸 보면 만물은 불변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무정부주의는 그 뉘앙스와 달리 혼돈의 카오스를 지향하지 않는다. 억압과 불평등을 강제하는 정부나 권력의 통제 없이 자율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정치 철학이다.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가 없어도 인간이 스스로 통치하며 상호 협력하에 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 믿는 이상적이고 낙관적인 세계관이다. 독재나 전제정치에 반대하고 권력의 집중을 거부한다. 경직된 관료제를 대신할 공동체 대안을 마련코자 다양한 혁신을 꾀한다. 이 같은 긍정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기적 유전자의 속성상 현실에서 이루기 어렵다는 점과 기존의 법과 사회 제도가 무너질 때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취약점이 있다. 결정적으로 과거 무정부주의자들이 암살, 테러 등의 폭력적인 방법으로 사회 변혁을 추구한 전례로 인해 대중들에게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불온 사상으로 낙인찍혔다.


역사의 잘못된 전철이 새해 벽두부터 반복되고 있다. 한남동 관저에 잔뜩 웅크린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의 내란행위를 부정하는 극렬 지지자들을 준동시킨다. 유언비어를 일삼으며 자신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시민에게 폭언하거나 심지어 물리적인 위협을 가할 듯 대든다. 불법적인 폭력과 무법천지를 장려하는 듯한 그들의 언행이야말로 무정부주의가 아닌 일그러지고 음습한 무정부 상태를 조장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들려주고픈 노래가 있다. Simon and Garfunkel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47위)’다. 평화롭고 감미로운 이 곡으로 집단 최면에서 벗어나 냉정한 이성을 되찾기를 바란다.


작금의 혼란은 해방 이후 압축 성장한 후유증의 단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민주적 가치와 원리는 도외시한 채 나눠 먹을 파이만 키우면 된다는 성장 만능주의, 파이가 커졌어도 아직 부족하다며 여전히 분배를 뒤로 미루는 근시안, 그로 인해 허약해진 사회 안전망이 야기한 각자도생의 생존본능. 세계가 환호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The Eagles의 ‘Hotel california(49위)’. 컨트리 뮤직 성향의 그룹을 록밴드로 거듭나게 해 준 곡. 후반부 돈 펠더와 조 웰시가 주고받는 기타 솔로가 압권인 이 노래는 아메리칸 드림의 어두운 뒷면을 그린다. L.A. 중서부 서민들이 상류층을 바라보는 우려 섞인 시각과 성공의 밑바닥, 낙원의 그늘을 묘사한다. 원하면 언제든 체크아웃 가능하지만 결코 떠나지 못하는 곳. 화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호텔 캘리포니아가 우리 사회의 요지경인 거 같아 씁쓸하다. 개인적으로는 일렉트릭 기타 버전의 솔로 독주의 몽환적인 느낌이 좋다. 극심한 갈등으로 해체되었던 그룹이 마침내 지옥이 얼어붙어 재결성하여 발표한 ‘Hell freezes over(1994년)’의 언플러그드 버전 역시 일품이다. 청춘의 날 선 감정들이 인생의 연륜으로 다듬어지고 뭉뚱해져 절묘한 하모니를 자랑한다. 커피로 치면 일렉트릭 버전은 아메리카노, 언플러그드 버전은 드립커피로 비유하겠다.


The Eagles - Hotel California(1976년, 49위), 4분 19초부터 기타 솔로를 들으시길


숙소까지 8km 남을 무렵 숲 속 벤치에 배낭을 내려 숨을 골랐다. 옆 벤치엔 한 청년이 도원경에 빠져 수박 반통을 잘라먹고 있었다. 돌아보면 부담될까 모른 척하며 쉬는데 혼자 먹긴 너무 많다며 입을 좀 거들어 달라는 농을 건넨다. 몇 조각 수박을 얻어먹었다. 올해의 첫 수박을 스페인에서 경험하다니. 태양빛을 잔뜩 받아 그런지 우리네 하우스 수박보다 훨씬 달고 맛있다. 어디서 왔냐 물음에 독일에서 왔다고 한다. 짧은 대화를 이어가는 사이에 미국 플로리다 출신의 부부가 5,6살로 보이는 어린 남매와 함께 자리로 다가왔다. 독일 청년이 건넨 수박을 한 조각씩 받아 든 아이들이 무척 귀엽다. 하루에 많이 걷지 못하지만 소풍 하듯 걸어왔단다. 이 페이스로 산티아고까지 갈 계획이라길래 격려해 줬다. 우리가 정담을 나누는 사이에 한 여인이 더 어린 꼬마를 데리고 지나쳐 갔다.


그러고 보면 까미노는 다양한 연령층이 존재한다. 성인뿐 아니라 자전거나 아기용 등산 캐리어에 실려 부모들과 함께 순례하는 어린아이들, 사리아 이후로 부쩍 많아진 10대들에 심지어 휠체어에 앉은 어르신들까지. 산티아고를 향한 순례의 행렬은 야고보를 잊지 않으려는 모든 이들이 함께 한다. 종교와 신앙을 떠나 참된 사랑을 되새기려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하나가 되는 길이 바로 까미노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줄 수 있다고 여긴다. 사랑하는 이가 바로 내 세상일 테니까. Percy Sledge의 ’When a Man Loves a Woman(54위)’의 다짐을 좀 더 넓게 보면 예수님이 얘기한 사랑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게 얻어 먹은 꿀수박, 정말 맛 있었다. 하와이에서 온 한국인 모자, 처음엔 일본인인줄. 오늘 머무는 알베르게 밀페스, 밀페스에서 바라본 걸어온 길.


누나는 내가 안개 숲을 벗어나 한창 걸을 즈음인 늦은 오전에 숙소에 도착해 간만에 한국에 전화를 했다. 누나 부재 중에 부모님을 모시느라 애쓰는 매형이 안쓰러웠단다. 삼시 세끼를 챙기는 것은 물론이요, 병치레 간병에 통원 치료까지 혼자 감당해야 하니 몹시 벅차실 게다. 어머니를 돌보는 막내 누나도 매 한 가지다. 부모님들은 연세가 드실수록 어려지신다. 막내 매형에게 ‘우리는 어디 안 가요?’라는 어머니 한 말씀에 예정에 없던 속초 여행을 나서는 길이라 한다. 귀국하면 매형들과 막내누나에게 거하게 한 턱 내야겠다.


어릴 적 팝송에 관심을 갖게 해준 추억의 노래를 오늘에서야 들을 수 있었다. Michael Jackson을 팝의 황제로 등극시킨 곡, 빌보드 핫 100에서 7주간 1위를 차지했으며 1983년 가장 많이 팔린 싱글, 음악 채널 MTV가 대중들에게 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르게 만든 곡. 1983년 3월 25일 모타운 25주년 기념식에서 최초로 선보인 문워크 댄스는 이 곡이 수록된 앨범 ‘Thriller(1982년)’를 역사상 최다 판매 앨범으로 등극시켰다. 바로 ‘Billie jean(58위)’다.


Michael Jackson - Billie Jean(1982년, 58위)


오늘은 베스트 명곡을 도저히 두 곡으로 추리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과욕을 부렸다. 상위 랭크로 갈수록 취사선택 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고심참담苦心慘憺한 심정으로 선택의 아픔을 취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건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나서도 아직까지 부질없는 욕심을 놓지 못하는 내 미련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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