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5 일차] 다가온 백화요란의 종막

Light My Fire - 까미노가 끝나면 시작될 인생 여로

by 여운설

2023년 6월 14일 리바디소 다 바이소 - 오 페드로우소 22.4km


까미노 데 산티아고가 정말 막바지에 다다랐다. 대성당까지 남은 거리는 겨우 41.9km. 이틀이면 족할 거리다. 6월 중순의 갈리시아 숲길은 녹음이 짙어가는 푸른 언덕과 은은한 안개가 어우러져 종착역에 다가서는 길손들에게 성스러운 만찬을 공들여 차려준 듯하다. 면면부절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눈앞에 펼쳐진 경치가 유려한 풍경 그 이상의 감동을 부른다. 그간의 까미노 여정 속에서 마주한 희망과 회한, 설렘과 고독이 이곳에서 한꺼번에 응축된 기분이다.


발끝에서 시작된 탈력감이 전신으로 퍼져 몸이 무겁다. 오늘따라 속도가 나지 않고 정신이 혼란스럽다. 초점이 또렷하지 않아 시야가 흐릿하고 착 가라앉은 감정이 답답한 가슴을 짓누른다. 딱히 피로가 쌓이거나 아픈 건 아닌데. 설마 벌써 까미노 블루 증후군이 찾아온 건 아니겠지? 산티아고 순례를 마쳐 일상으로 돌아와도 까미노가 그리워 몸부림친다는 까미노 블루. 그루미 한 증후군을 견디다 못해 다시 까미노로 떠나는 이들이 많다는 걸 익히 들어 알지만 그래도 지금은 아니겠지하며 자위한다.


모레가 되면 이 긴 여정이 끝난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여정을 계획할 때 마지막 날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 광장에서 오전을 여유롭게 보내려고 하루 일정을 이틀로 나눴다. 막상 여행의 종막에 달한 아쉬움이 몽글몽글 솟아나니 당시의 선택이 신의 한 수였다. 순례를 시작한 이후로 그간 일각이 지체될세라 잰걸음하기 바빴는데 남은 일정은 거북이 행보를 하기로 했다. 얼마 남지 않은 까미노의 여운을 하나라도 흘리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1686744393700-3.jpg
AD_4nXdnNUm-t9-UXwN_rhLEixuBTsGU32tOjEUWbPXhwElK8EaMY9oMVQd-C-5D7Pw6a8uuiSxl3TeX2FsNKILMNIQZDr147eIvx8dtRYC-oBGUfnedwmzQe5B8KpPuKfhc5p7Rj8_3MA?key=_69p7iY9TRv_ELJdeGa-Ficu
20230614_075241.jpg
20230614_075504.jpg
20230614_075632.jpg
20230614_081936.jpg
아침 안개 속에 혼자만의 사색을 즐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게 피톤치드와 고요한 사유의 행복을 한아름 안겨준 갈리시아 숲도.


프레곤토뇨Pregontoño에서 20분 가량 걸었을 때 길섶에 덩그러니 놓인 추모비를 만났다. 까미노에서 세상을 등진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드물지 않은 터라 생경하진 않았다. 하지만 종착지를 불과 하루 남겨두었다는 점이 내게 무겁게 다가왔다. 고인의 이름은 Miguel Rios Lamas. 2011년 10월 9일에 이곳에서 영원을 맞이했다. 산티아고까지 단 34km를 남겨 두고. 운명을 다하기 직전 고인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하루만 더 버텼더라면 야고보를 만난다는 안타까움으로 애절했을지, 아니면 완연한 병색에도 746km의 길었던 생의 마지막 수행을 찬란하게 불태웠다고 만족했을지 궁금하다. 무엇이든 간에 하느님 곁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를 기도했다.


알려진 바로는 해마다 순례자 중 몇 명은 카미노에서 생을 마친다. 누구는 심장마비로, 어떤 이는 앓던 질환이 심해져, 상당수는 교통사고로 이승과 작별한다. 혹자는 겨울철 무리하게 산을 넘다가 눈보라에 갇히거나 길을 잃고 조난사하며, 아차 하는 순간에 낭떠러지나 경사 심한 비탈길에서 낙상사를 당하기도 한다. 매년 50만 명에 육박하는 순례자들이 까미노에서 소천한 이들을 추모하는 기념비를 가슴 아프게 지나친다. 중세 사람들은 순례자가 순례 중에 죽으면 연옥을 거치지 않고 바로 천국에 간다고 믿었다. 넋을 잃은 이를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는 커다란 위안이었을 것이다. 야고보의 시신이 별빛 가득한 산티아고 초원에서 발견된 이래로 까미노에서 하늘의 별로 승화한 모든 이들이 천국에서 영면을 맞이했길 바란다.


야고보의 전승이 가득 찬 까미노 위로 전설적인 명곡이 흐른다. Led Zeppelin 절정의 네 번째 앨범에 수록된 빅 히트곡, ‘Stairway to heaven(31위)’이다. 이 앨범보다 판매량이 많은 앨범은 마이클 잭슨의 ‘Thriller(1982년)’와 이글스의 ‘Their greatest hits(1976년)’가 유이하다. 1991년 기준, 20년간 이 곡의 송출 건수 300만 번, 누적 방송시간은 무려 44년에 달한다. 당시 통계로 역대 2위다. 참고로 역대 1위는 누적 방송시간 57년을 자랑하는 The Righteous Brothers의 ‘You've lost that lovin' feelin'(34위)’이다.


8분에 가까운 대곡인, 서정적인 어쿠스틱 도입부와 곡 중반의 블루스, 강렬한 하드 록 피날레로 이어지는 복합적인 구조로 구성된 이곡은 록 음악 역사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곡 중 하나다. 밴드의 보컬리스트인 로버트 플랜트가 쓴 가사는 다층적으로 해석되고 신비로운 감흥을 주는 시적 표현이 탁월하다. 개략적인 줄거리는 물질적 탐욕과 허영에 집착한 여인이 삶의 목적과 영적인 통찰을 얻기 위해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는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완만히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흐름과 지미 페이지의 감성적인 기타 솔로는 록의 진수를 새롭게 표현했다는 극찬을 받았다.


Led Zeppelin - Stairway To Heaven(1971년, 31위)


그동안 까미노에서 만나 함께 걸은 길벗들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 우연하게 시작된 낯선 인연들이 서로의 길을 풍성하게 채워주었을 것이다. 오늘은 레온에서 연이 닿았던 미국인 모녀,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서 같은 방을 썼던 아르헨티나 부부, 나헤라에서 숙소를 함께 한 한국인 아저씨와 앨라배마 한인 할아버지를 만났다. 이들과 주고받은 웃음과 격려는 발걸음에 힘을 보태 주었고, 적막한 산길을 따뜻하게 물들였다. 종착지에 다다른 성취감과 기다리던 마침표의 설렘은 기쁨을 던져 주지만 우연한 인연과의 이별은 아쉬움을 자아낸다. 우리는 인생을 걷는 방향이 서로 달라 이 길 끝에 서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길에서 우연을 맺은 우리는 현실로 돌아가면 또 다른 불확실한 길을 걷는다. 저마다 여정이 다르고 목적지가 천자만별이기에 까미노가 맺어준 인연의 끈은 이내 풀릴 것이다. 다시 이 길로 돌아오지 않는 한.


문득 가슴 시린 진추하의 ‘우연(1976년)’이 듣고 싶어졌다. ‘당신과 나는 칠흑같이 어둔 밤바다에서 만났지만 당신은 당신만의, 나는 나만의 길이 있으니 기억해도 잊어버리기를 바라요. 우리 만남에 있었던 그 빛나던 느낌들일랑’ 구성진 가사와 달리 차마 짧은 우연을 잊지 못하겠다는 듯 나와 길손들은 누구랄 것 없이 마지막 남은 여정을 격려하며 작별의 사진을 남기려 했다. 마치 기억의 습작으로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래려는 것처럼.


돌이켜 보면 까미노에 맞이한 모든 순간은 그 하나하나가 찬란한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워털루 다리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낙원의 행복을 만끽한 The Kinks의 ‘Waterloo sunset(42위)’처럼 함께 걸었던 길벗들과의 일장춘몽은 강가에 노을 진 저녁 햇살 마냥 아련하게 아름답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에서 온 여행자들이었고 순례길에서 함께 한 시간들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특별한 빛을 더했다. 그래서 이 우연한 별리가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것 같다.


Elvis Presley는 이별 후 찾아온 외로운 감정을 비통한 호텔에 비유했다. ‘Heartbreak hotel(45위)’의 쓸쓸한 멜로디가 흐르고 길벗들이 사진 찍자는 제안을 해올 때 이별의 순간이 코앞에 왔음을 실감했다. 까미노 위에서 나누던 짤막한 담소와 웃음, 어색한 침묵 속에서도 끊이지 않은 연결의 순간들은 멀지 않아 찾아올 까미노 블루를 지필 불쏘시개다. 헤어짐으로 비워진 마음 한편은 언젠가 발화할 불씨와 일상에서 맞이할 또 다른 새로운 추억들로 채워질 것이다.


Ray Charles의 ‘Georgia on my mind(44위)’가 흘러나온다. 제목의 조지아는 1930년에 원곡을 작곡했던 호아기 카마이클의 여동생 이름이다. 레이 찰스가 차에 탈 때마다 원곡을 흥얼거리길래 운전수가 정식으로 취입해 보라 권유해 리메이크했다고 한다. 까미노 블루에 어울리는 블루스 감정이 충만하다. 내 마음속의 조지아는 어딜까? 귓가에 흐르는 곡을 들으며 각자가 그리워할 집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음을 재차 느꼈다. 아르헨티나의 마를린, 미국에서 온 모녀, 앨라배마 교포 할아버지와 한국인 예술모자 아저씨. 저마다 안식처가 다를지언정 까미노에서 쌓아 올린 인연의 시간은 우리 마음속에 지은 작은 집에 명료히 새겨질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 까미노 블루가 찾아오면 그 집에서 찰나의 습작과 기억의 단편을 하나씩 꺼내 우연의 길벗들을 떠올리겠지.


20230614_084120.jpg
20230614_085809.jpg
20230614_103852.jpg
20230614_082141.jpg
20230614_100712.jpg
20230614_093830.jpg
산티아고 목전에서 생을 다한 Miguel Rios Lamas의 추모비. 그의 영원한 안식을 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마를린 부인, 레온에서부터 친해진 미국인 모녀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 갈리시아의 숲 속 풍경은 이 모든 감정을 품어주는 듯하다. 안갯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교회 첨탑은 곧 도달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연상시키며 이 여정의 끝을 가리킨다. 하지만 돌아서면 그 끝이 곧 또 다른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먹먹해진 가슴을 애써 진정시킨다. 비록 길벗과의 작별은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그들이 37일에 걸쳐 내 삶에 남긴 흔적은, 까미노에 새겨진 노란 화살표처럼 지워지지 않을 것이기에.


산티아고 시내 전경이 한눈에 보일 언덕을 향하며 나는 생각한다. 헤어짐의 순간이 아쉬운 것은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그만큼 소중했기 때문이라고. 길벗들과 나눈 모든 단편들이 내게 깊고 선명한 자취를 남겼다. 대성당 광장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떠나겠지만, 까미노를 나란히 걸었던 길은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길벗들도 인생길에서 찰나의 우연이었을 나를 명징히 각인해 주길 바라며 까미노의 끝자락에서 나는 이렇게 되뇐다. 나의 길벗들에게 고맙다고, 이 길 위에서 함께 걸어줘서 감사하다고, 마지막으로 스쳐간 모든 순간이 진정 축복이었다고.


어제 숙소 커다란 방에 투숙객은 우리 포함 세 명뿐이었다. 누나는 하고 많은 빈 침대들 중 하필 우리 옆 베드를 선택한 여성 순례자 때문에 잠을 설쳤다. 사위가 구분되지 않는 암흑의 정적을 깨는 충전기의 영롱한 푸른 일점이 눈에 거슬린 탓이다. 한참을 잠 못 이루다가 비몽사몽 중에 작고하신 아버지가 생각났다고 한다. 선친께서 작고하셨을 때 난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렇게 어렸던 내가 청춘을 거쳐 장년줄에 들어선 지 이미 오래인데도 누나 가슴속에 여전히 어리다는 이유로 선친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철부지 동생으로 남아 있는 나를 떠올리며 새벽말미에 숨죽여 우셨다고 한다. 혹여나 내가 눈치챌까 싶어서.


둘째 누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어린 나와 남동생의 끼니를 곧잘 챙겨줬다. 지금도 두부를 한 입 거리로 적당히 깍둑썰기 해 파 송송 썰어 넣은 누나의 파된장찌개를 잊지 못한다. 그런 누나가 눈물 흘리는 걸 봤다면 덤덤히 울지 마시라 다독였을 게다. 다 큰 지가 언젠데 옛날 생각은 왜 하냐며.


여인의 눈물은 애잔하다. 그래서 Bob Marley는 그래선 안 된다며 여인에게 울지 말라했을 것이다.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No woman no cry(37위)’는 레게 음악의 상징과도 같은 노래로 1974년 솔로 버전보다 다음 해의 라이브 버전이 더 유명하다. 가사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빈민가, 트렌치 타운의 뜨거웠던 추억을 기억하는 여인에게 앞으로 사정이 나아질 테니 울지 말라는 당부의 내용이다. 노래 속에 등장하는 여인은 단지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신을 키운 어머니, 빈민촌인 고향, 궁핍한 조국 자메이카를 비유한 다. 그런 까닭에 자메이카인에게 이 노래는 공동체의 연대감과 희망을 향해 투쟁하는 민중의 삶으로 다가설 법하다. 밥 말리에게 음악은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도구였다. 원곡을 직접 작사, 작곡한 그는 이 곡의 저작권을 자신이 어려웠을 적 성심껏 도와준 친구 빈센트 포드에게 선뜻 양도했다. 치킨 수프가게를 운영하는 친구의 형편이 어려워지자 기꺼이 도와주기 위해서다. 그뿐이 아니라 밴드 멤버들에게도 다른 곡들의 저작권을 골고루 나눠줬다.


Bob Marley - No Woman, No Cry(1974년, 37위)


https://youtu.be/IT8XvzIfi4U?si=lfjyjHuvfuTz8N5H

No Woan No Cry(1975년 버전) - 공식 뮤직비디오


출입문이 모두 닫힌 자정에 쪽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 팔순 생신을 맞으신 징인 어른께 전화드렸다. 대도시 교외의 제법 번화한 마을의 야경인데 하늘에 별이 많이 떠 있다. 어릴 때는 여름밤마다 동네 공터에 펼친 평상에 누워 무성히 흐르는 은하수를 감상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이후로는 별을 잊은 채 살아왔다. 꿈도 낭만도 같이. 서울 밤하늘은 도시의 불빛에 가려 별들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구름 없는 한 밤중이거나 그믐에서야 헤아릴 수 없이 먼 은주에서 용케 길 찾아 달려온 별들이 뿜어낸 아주 오래된 자취를 간신히 찾을 수 있다. 이제라도 가끔은 밤하늘을 보며 식어버린 내 인생의 불을 다시 밝히고 싶다. 어느 순간 꺼져버린 열정과 욕망, 자유로운 감정에 불꽃을 다시 지펴 내어. The Doors의 ‘Light my fire(35위)’는 억제된 모든 걸 불태울 듯한 자유롭고 황홀한 오르간 솔로와 기타가 합을 이루는 간주가 백화요란하다. 들을수록 이 노래의 백미다.


The Doors - Light My Fire(1967년, 35위)



1686744378007-1.jpg
AD_4nXdJYKrb1Ry1QESKOThZZKCw9jNYmPFbViPV_CE4FNOEqUyk3saUHDDHlvU-bgDnFmbyiQh_zH9MD0tpoa3kD1W46qewcgDqLP1qiuwXH6rFLMKo4NjxlHXiX_FdNGWBbGE9mX0xwg?key=_69p7iY9TRv_ELJdeGa-Ficu
AD_4nXdBuDMmpR35Nd6TaGMPmEZipwrqoCV3MrLgQ2kFFb8Rzu7oMWxThSy8T_p01qmL7JfhATvnmMPpcWkn4meQvLERqLTX5vQNSWIExO656oiGGKWjBkI6uJ686KWHELqNJiGpeKFt?key=_69p7iY9TRv_ELJdeGa-Ficu
AD_4nXdzlkLe2xilIqNunBXB9xJWGl0aVqRLtO20pMZ8dztc8bczB5VZSE70Q4wQut5vyY9oL7N4kEiQp5U9n-rTY1ZWQx5qcCOFk1Hwaf9KCKKQp57T93l6UjJUkol_1WCBxzPBjnFxWw?key=_69p7iY9TRv_ELJdeGa-Ficu
AD_4nXe9T5bQIClIy1tuDypnhmaL-cDzBifHdP4oB9oL87_Od2EwcXPxmChH1ZikSLbXqz7T5ny9CIJ-KyA2yAsIwUptMm-K3lrvjQAa823-CDwNqau8Qs3QJXNR2ZgsTeUZD1MdIgpc2A?key=_69p7iY9TRv_ELJdeGa-Ficu
20230615_004115.jpg
도로 위 언덕에 자리잡아 탁 트인 경치가 일품인 알베르게 미라도르 데 페드로우소. 무량한 우주를 억겁의 세월 숨가쁘게 달려온 별들의 자취를 언젠가부터 잊고 살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