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nder Road - 이상을 찾아 떠나는 희망찬 이차선 도로
2023년 6월 11일 사리아 - 포르토마린 22.2km
다시 혼자 걷게 되었다. 어제 걸어본 결과, 누나에게 20km 남짓한 거리는 아직 무리였다. 나흘만 더 택시로 이동해 컨디션을 회복하고 나서 마지막 이틀을 걷기로 했다. 누나가 바라던대로 산티아고에 걸어서 입성해 37일에 걸친 대장정의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순례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어느덧 6월 중순이다. 새벽에 가끔 비가 내리다 그치는 스페인 서북부의 해양성 기후가 여전하다. 아침은 선선한 편이지만 홍염에 만물이 달궈지는 오후가 되면 땡볕 아래서 걷는 게 녹록지 않다. 지열이 끓어오르기 전에 숙소에 도착해야 고생을 덜한다. 이를 감안해 일찌감치 길을 나설 작정이었다.
6시 기상해 짐만 챙겨 떠날 작정이었는데 햇모자가 사라졌다. 다른 짐과 섞였으려니 배낭을 풀어 샅샅이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침대 프레임 주위를 둘러봐도, 매트리스를 거들떠도 찾질 못했다. 아무래도 어제 저녁을 먹은 식당에 흘렸나 보다. 포기하고 7시 넘어 출발했다. 가는 길에 식당에 들렀다. 손님맞이에 바쁜 주인아주머니께 사정을 얘기했더니 바로 찾아주었다. 뜻밖의 선물에 감사했다.
모자를 찾은 건 반갑지만 자잘한 실수가 반복되어 심사가 편치 않았다. 순례가 종반을 향해 긴장이 풀린 건지 정신이 산란하고 집중하기 어렵다. 남은 일정만이라도 방심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산타 마리냐 교구 성당Igresia Parroquial de Santa Mariña 앞에서 순례자들이 사진 찍기 바빴다. 뭔 일인가 했는데 앞마당이 온통 꽃장식으로 화려하게 수놓여 있다. 일곱 색깔 무지갯빛으로 찬란히 물든 꽃장식은 비탈길을 따라 언덕 위로 이어졌다. 길바닥을 아름드리 수놓은 꽃들의 행렬은 산 살바도르 성당Iglesia de San Salvador에서 대미를 장식하고 사리아에서 순례를 시작하는 학생들이 그 앞에서 저마다 포즈를 취했다.
길바닥에 꽃장식을 하는 전통은 성체성혈 축일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를 기리는 주민들이 화려한 패턴으로 수놓은 꽃잎을 길가에 장식한 뒤 성체 행렬이 그 위를 걸은 데서 유래했다. 종교적 헌신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사리아의 전통은 이곳을 찾은 순례자를 환영하는 동시에 이들의 마지막 여정을 격려하는 축제의 장으로 연결된다. 순례자들은 주민들이 장식한 꽃을 감상하며 경건하고 신성한 순례의 의미를 되새긴다. 매주일마다 싱싱한 꽃으로 정성껏 장식하진 않을 터였다. 성체성혈 대축일이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아 꽃장식을 구경할 수 있는 행운에 고마움을 표했다.
신앙이 있어도 성당이나 교회에 무관심한 현대 사회에서 지역 공동체가 신심의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대학 시절 종교 동아리에 열심이었지만 신앙을 키우지 못했다. 하느님 말씀을 그대로 받들지 않고 보잘것없는 이성으로 이해하려고만 했으니 당연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가톨릭 학생회에 입회했던 1987년, 아일랜드 록밴드 U2는 흔들리는 영혼의 가스펠,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93위)’를 발표했다. 신앙을 가지려 노력했으나 이를 믿지 못하고 신이 존재한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어 절대자를 의심하는 현대인의 심정을 그렸다. 신을 찬양하고 믿는 성가가 아니라 의심의 송가다. 홀로 고요히 내면 속으로 침잠할 때면 간혹 성당을 찾아 고결한 존재 앞에 오체투지하는 나를 상상해 본다. 하느님이 이미 존재함을 믿고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진실한 신자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내가 그러지 못하는 건 덧없이 초라할 이성의 잣대로 알량한 의심을 일삼기 때문일 진저.
순례자들은 사리아 지명에 익숙하다.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를 공식 인증하는 기준은 도보 100km, 자전거 200km 이상이다. 사리아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114km. 사실상 프랑스 루트의 완주증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관광지다. 오늘 목적지인 포르토마린에서 순례를 시작하면 공식 완주 증명서를 받지 못한다. 스페인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이 사리아에서 대거 순례를 시작하는 이유다. 이런 연유로 사리아부터 숙소난이 극심해진다. 이를 감안해 3,4일치를 미리 숙소 예약해 오다 이틀 전에 산티아고까지 숙소 예약을 완료했다.
사리아 외곽을 빠져나오자 안개 낀 사색의 길이 펼쳐진다. 공동묘지를 지나려니 이승을 등진 고인들을 지근거리에서 추모하려는 남은 자들의 심려가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까미노에서 만난 마을 공동묘지들은 유령이 나올 법한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지 않는다. 길섭으로 이어진 돌담길이 제주의 그것을 닮아 올레길을 걷는 것 같다. 숲길이 끝나기 무섭게 안개 무성한 오르막 개활지가 등장한다. 9시 반이 넘자 안개가 희미해지면서 마지막 몸부림을 친다. 스페인 청소년들의 행렬이 안개가 소리 없이 물러난 자리를 대신 채워 주었다.
100km 표지석에 도착했다. 이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딱 100km 남았다. 대장정이 종지부를 앞두고 있어 가던 길을 멈췄다. 먼저 도착한 프랑스 순례자들이 표지석 옆에 앉아 독사진을 찍은 후 일행이 한데 모여 어설프게 셀카를 찍길래 제대로 서보라 했다. 셔터를 몇 번 누른 후 핸드폰을 건네 주니 표지석 옆에 서보란다. 덕분에 나도 예정에 없던 인증샷을 남길 수 있었다.
사리아에서 꼭 찾고 싶은 낙서가 있었다. 순례 기행서적 ‘조금 일찍 나선 길(2022년)’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구절이다. ‘Jesus didn’t start in Sarria.’ 아마도 낙서를 쓴 이는 사리아에서 시작한 순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사였겠지. 10대 후반의 작가 태윤은 중요한 건 길 자체가 아니라 걷는 우리라고 강조했다. 까미노는 오롯이 걷는 자의 것이라며. 낙서가 어디에 있을까 사리아 구간을 걷는 내내 두리번거렸는데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사리아에서 순례를 시작하면 생장 피에드 포트에서 출발하는 것 보다 의미가 많이 퇴색하는 걸까? 거리 그 자체가 순례의 의미와 진정성을 보장하진 않는다. 도보 100km를 최소 인증거리로 삼은 이유는 행정 편의와 더불어 성지를 향한 최소한의 고행을 몸소 체험하라는 뜻일 것이다. 남보다 더 걸었다고 순례가 그만큼 더 거룩해지거나 우월해지진 않는다. 예수님과 야고보가 실천한 인류애를 기리는 순례길에 거리의 장단이 얼마나 차이가 있으랴! 사리아 논쟁에서 Chuck Berry의 반감이 공감되었다. 클래식 작품만 피아노로 연주하는 여동생에 불만을 가진 그가 신나는 R&B 리듬으로 노래했다. ‘Roll over Beethoven(97위)’에서 클래식 음악가와 평론가들이 대중음악을 깔보는 태도를 베토벤에 비유하며.
론세스바예스에서부터 잊을만하면 까미노 곳곳에서 ‘마이클 잭슨’이라 쓴 낙서가 나온다. 그를 추모하며 순례하는 냥 까미노에 새긴 낙서를 볼 때마다 역사상 위대한 팝송 명곡 리스트에 선정된 그의 작품이 ‘Beat it(337위)’ 뿐이라는 게 떠올랐다. Jackson 5 시절을포함해도 두 곡뿐이다. 최소한 그를 20세기 팝의 아이콘으로 등극시킨 ‘Billie Jean(1982년)’은 있을 거라 추측하지만 아직까지 듣질 못했다. 순위가 얼마나 높을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나오겠지 하며 지나쳤다.
쾌청하기 그지없는 초여름 한낮에 고즈넉한 포르토마린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미뇨강El Rio Miño을 낀 교통의 요지로 로마 시대에 형성되어 중세까지 번영을 거듭했다. 1960년대 미뇨강 하류에 벨레사르 댐이 들어서 원래 마을은 수몰되었고 지대가 높은 현 위치에 새로 조성되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벨레사르 다리 초입에 자유의 종Liberty bell)이 있다. 이 조각상이 설치된 배경은 알려진 바 없다. 아마 마을 재건을 기념하는 취지가 아닐까 싶다. 이 다리를 지나는 순례자들이 호수 너머에 있는 휴양 마을에서 자유와 희망을 맛볼지 모르겠다.
Liberty bell을 보자마자 상기한 노래는 밥 말리의 ‘Redemption song(66위)’이다. 이 노래가 순위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늘 들은 곡 자유의 종과 어울릴만한 노래들이 있다. 먼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4년)’의 삽입곡으로도 유명한 ‘California dreamin’(89위)’이다. The Mamas and The Papas가 몽환적인 보컬 하모니로 자유에 대한 환상을 그린 노래. 2분 37초 분량의 단순한 멜로디 속에 화자는 뉴욕의 추운 겨울에서 따뜻하고 자유로운 캘리포니아를 그리워한다. 이 곡을 감상할 때마다 딱 꼬집긴 어려우나 뭔가 허전하고 아련해진다. 냉엄한 현실과 도달하지 못할 이상향의 간극을 은유하며 자신의 삶을 관조한 탓이라 여겨진다. 1960년대 중반 히피 문화에 매료된 당시 미국의 청춘들에게 자유와 희망의 상징이던 캘리포니아를 주제로 해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했으리라 추측한다.
다른 한 곡은 The Police의 ‘Every breath you take(84위)’이다. 이혼 후 복잡한 감성에서 영감을 얻은 스팅은 매혹적인 분위기 아래 달콤한 사랑을 고백하는 로맨틱한 노래를 만들려 했다. 정작 의도와 달리 이별 후 집착과 소유욕을 그렸다는 후일담이 있다. 떠나간 연인에 대한 강박과 질투, 스토킹에 가까운 감시와 통제 등 잃어버린 사랑에 집착하는 불안한 상실감이 중독성 있는 기타 리프와 절제된 드럼으로 어우러진다.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난 자유의 소중함이 새삼스런 요즘에 또 생각난다. 드러머 스튜어트 콥랜드는 녹음하는 내내 스팅과 사사건건 다툰 끝에 결국 팀을 떠났고 폴리스는 해체되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만들어진 이 곡은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8주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전 세계적인 대성공을 거두었다.
미뇨강 하류에서 2,000년 넘게 오손도손 살아온 포르토마린 주민들은 구시가지가 수몰되자 산등성이로 이전했다. 그중 일부는 정겹던 마을을 떠났을 게다. 낙후된 지역을 재개발하거나 활성화시켜 원주민들이 중산층으로 대체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아닐지언정 타의에 의해 고향을 떠나는 원주민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정착하기 충분한 보상금을 받아 어디서든 밝은 미래를 그렸을지 궁금하다. Bruc e Springsteen은 희망 없는 마을을 떠나 미래를 찾자고 연인을 설득했다. ‘밤이 성큼 다가섰으니 2차선 도로가 우리를 어디든 데려다줄 거야, 우리에겐 이 날개를 바퀴로 바꿔 현실을 만들어 볼 마지막 기회가 있다’며 천둥의 거리를 달리자던 ‘Thunder road(1975년)’에서.
성장 동력이 훼손돼 가뜩이나 지지부진하던 경기가 설상가상 최고 권력자가 획책한 내란으로 꽁꽁 얼어붙은 잿빛 가득 암울한 12월, 모두가 한 줌의 희망도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2024년이 반나절도 채 남지 않았다. 2025년, 푸른 뱀의 해에는 가슴 속에 가득 찬 낙담을 훌훌 털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짊어진 삶의 더 나은 기회를 향한 썬더 로드로 떠나길 바라마지 않으며.
누나와 점심을 푸성지게 먹고 눈만 붙인다는 게 저녁까지 잠들었다. 7시 반쯤 짜파구리를 먹으러 주방에 갔는데 선객들이 한상 차려 놓고 만찬 중이었다. 자리가 없어 쭈뼛거리는 우리에게 함께 식사하자며 눌러 앉힌다. 풍성한 야채샐러드와 토마토소스 베이스의 프랑스식 수프가 입에 달라 붙었다. 이탈리아 아저씨들이 와인에 거나하게 취해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다니며 만담을 하다 급기야 왈츠를 추기 시작한다. 이에 질세라 프랑스 아주머니들이 가세한다. 이탈리아 아저씨가 강권해도 독일에서 온 처자들은 새초롬히 앉아만 있었다. 유쾌한 모임이 끝날 즈음 빈손인 것이 끝내 겸연쩍었던 우리 남매가 팔을 걷어붙여 설거지에 나섰다. 한참 왈츠에 빠졌던 이들이 다 같이 들러붙어 만찬의 자취를 감췄다. 자유의 종소리가 가득 울리는 듯한 포르토마린의 행복한 저녁은 이렇게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