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1 일차] 위아의 자기 증식

Mr. Tambourine Man - 미몽과 미망의 늪에서 헤어나

by 여운설

2023년 6월 10일 트리아카스텔라 - 사리아 17.8km


모두가 곤히 잠든 새벽 5시, 조용히 방문을 열고 숙소 밖으로 빠져나와 무거운 마음을 달래며 장인어른께 전화를 걸었다. 한국 시간은 낮 12시. 아버님 팔순 회연이 시작될 시각이다. 원래 예정된 일정이 한 달 뒤로 미뤄져 부득불 모임을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한국을 떠나기 전 자리를 비운 불찰을 미리 말씀드렸어도 통화하는 내내 죄송스러웠다. 경사스러운 자리에 맏사위가 빠져 친지분들께 면이 서지 않으실텐데 아버님께서는 쾌활한 목소리로 끝까지 건강하라며 되레 나를 격려하셨다. 두둥실 흐르는 구름 사이로 휘영청 밝은 달이 신새벽 어둠 속에서 헛헛헤 하는 나를 보듬어주었다.


6시가 넘자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고고르르한 순례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갈아입을 옷가지를 침낭에 대충 둘러 응접실로 나갔다. 누나가 빠트린 물건이 없나 확인했다. 기다란 소파가 출발하는 이들의 배낭으로 차곡차곡 메워졌다. 소파 뒤 구석에서 짐을 챙긴 다음 옅은 어둠을 커튼 삼아 옷을 갈아입었다. 정신없이 부산스레 배낭을 패킹한 찜찜했지만 괜찮겠지 하며 대충 꾸려 놓고 공용 주방에서 누나와 간단히 요기를 했다.


누나는 닷새만에 도보 순례를 재개했다. 통증이 남아 있어 배낭을 메긴 아직 무리라 배낭 하나는 동키로 보냈다. 누나 컨디션에 맞춰 적당한 간격으로 뒤따르기로 했다. 나는 신경쓰지 말고 누나 페이스에 집중하시라 신신당부했다. 팝송 감상하며 산림욕 삼아 유람할 작정이었다. 평속 3km로 걸어도 휴식 포함, 오후 2시 넘어 숙소에 도착하리라 예상했다. 이 정도면 크게 부담되지 않을 것 같았다.


까미노를 다시 마주한 누나는 긴장 반 설렘 반이었을 게다. 아니면 고통과 시련을 딛고 장도에 오른 환희를 만끽했을지 모른다. 무릎이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은 동생과 함께 걷는다는 행복으로 지워냈을 것이다. Al Green은 사랑이 주는 행복을 얘기했다. 행복은 사랑을 통해 느낄 수 있다. 당신이 누군가에 대해 아주 기분 좋은 감정을 가질 때 행복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단지 함께 걸으며 함께 말하는 것. 사랑이 잘못될 수도 있지만 연인 곁에서 사랑하며 행복하자고 노래했다. 그의 히트곡 ‘Love and happiness(98위)’에서.


갈리시아 숲길은 덩굴이 얼기설기 얽힌 아름다리 나무가 가득한 원시림을 지난다. 산실San xil을 지나는 경로는 주로 제주 사려니길 같은 울창한 숲을 통과한다. 고개를 치켜올려야 꼭대기가 보이는 거목마다 덩굴과 이끼가 잔뜩 끼여 태곳적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요한 적막을 깨는 건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과 등산 스틱이 자갈돌과 부딪쳐 틱틱거리는 마찰음뿐. 반복되는 수행과 경 읽기가 지겨워 몰래 속세로 도망쳐 나온 도동이 엄사부가 그리운 나머지 회초리 맞을 각오하고 깊은 숲 속의 도량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20230610_070307.jpg
20230610_070824.jpg
20230610_071026.jpg
20230610_071008.jpg
20230610_072757.jpg
20230610_080304.jpg
닷새만에 까미노에 다시 선 누나. 무리하지 않게 천천히 사리아를 향했다. 산실에 들어서자 넝쿨이 가득한 갈리시아 원시림이 펼쳐졌다.


산실을 지나는 원시림 풍경. 새소리가 상쾌하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바람들을 모두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둘씩 체념한다. 그렇게 포기한들 마음이 편할 순 없다. 설령 어렵게 이룬다 쳐도 마찬가지다. 바라는 꿈을 이루지 못해 몹시 괴로워하는 미몽迷夢에 사로잡히거나 원하는 바를 이뤘으되 그것을 위해 놓친 욕망이나 더 큰 욕심을 잊지 못하는 미망未忘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십상이다. 산실을 지나는 갈리시아의 원시림이 엄사부로 분해 그렇게 살아온 나에게 회초리를 들어 꾸짖고, 미스터 탬버린 맨은 나보고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라고 한다. 너무 늦지 않게 돌아와 다행이라며. 이제라도 미몽과 미망을 벗어 던지라면서.


‘Mr. Tambourine Man(106위)’은 음유시인 Bob Dylan이 1965년에 발표한 곡이다. 그는 몽환적이고 상징적인 가사로 노래를 듣는 이들이 자신만의 초월적인 세계로 탐험하는 기회를 주려 했다. 밥이 인도하는 세계는 청자의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그는 애청자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여정을 통해 자아 성찰과 정신적 깨달음을 얻기를 바랐다.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세상을 노래하는 만큼 현실의 고통, 삶이 야기하는 압박, 세상이 강요하는 질서와 규범에서 자유롭기를 소망했다. 갈리시아 밀림에서 이 노래의 여운이 더욱 두드러졌다.


Bob Dylan - Mr. Tambourine Man(1965년, 106위)


사나운 개가 있다는 몬탄Montan을 무사히 지나쳤다. 그간의 경험상 사납기로 악명이 자자한 목축견들은 낯선 외지인으로부터 축사를 경계하거나 목초지를 오갈 때 소떼를 모는 용도로 키우는 것 같다. 겁이 많은 나로서는 무척 신경 쓰였지만 마을을 지나는 나그네들이 응당 감수할 일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악명 높은 구간이 끝났다는 점이다. 개들의 위협이 사라지자 마음 편하게 신나는 디스코를 들을 수 있었다. 디스코에 록을 가미해 새로운 사운드를 소개한 곡. 기타와 신시사이저의 리프, 신나는 비트가 강렬한 보컬과 제대로 핫하게 버무려진 노래. 바로 Donna Summer의 ‘Hot stuff(103위)’다.


20230610_083954.jpg
20230610_084303.jpg
20230610_083417.jpg
20230610_100914.jpg
20230610_101140.jpg
20230610_101736.jpg
아름다운 초지대를 지날 즈음 구름이 점점 하얗게 옅어졌다. 한걸음씩 내딪은 결과 산티아고까지 123km 남았다.


도네이션 바에서 충분히 쉬었는데도 12km를 넘게 걷자 누나 페이스가 조금씩 쳐지기 시작했다. 처음보다 속도가 많이 줄었다. 초반에는 예상보다 1,2시간 일찍 도착하겠다 싶었는데 마지막 6km를 남기고선 평속 2km에 그쳤다. 아침에 어림잡은 시간과 얼추 비슷할 거라 추측했다. 막판에 힘이 부대끼는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누나가 충분히 이겨낼 거라 믿으며 말없이 뒤를 따랐다.


정오가 되자 하늘이 완연하게 밝아졌다. 부는 바람결에 흰 구름이 물러나 새파란 창공이 훤히 드러난 오후 2시. 누나가 탈진하기 직전, 드디어 사리아에 예약해 둔 카사 펠트레Albergue Casa Peltre에 도착했다. 방에 들어가니 어제 길냥이를 챙겨준 고흥에서 온 여성 순례자 두 분이 솔솔 부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중이었다. 누나도 생각보다 고된 일정에도 무사히 도착했다며 안도하는 듯 했다.


그런데 시에스타를 부르는 감미로운 햇살과 달리 내 심정은 빛을 잃고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동키로 보낸 배낭을 받아 짐을 정리하다가 피엘라벤 기모 집업이 없어진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소지한 긴팔 옷이 두 벌뿐이라 당황스러웠다. 순간 짜증이 확 일었다. 베드에 빠뜨린 걸 누나가 챙기지 못한 건지, 셔츠로 갈아입은 후 소파에 흘린 건지 기억이 불분명한데도 무작정 누나에게 퉁명스럽게 잔소리했다. 확인을 다 했다면서 왜 찾지 못했냐고. 어제도 누나에게 받은 현금 50 유로를 비상금 조로 되돌려준 걸로 착각해 한 소리했다. 순례 말미에 일이 풀리지 않거나 뜻대로 되지 않는 스트레스를 누나에게 푼 것이다. 아차 싶었다. 미안했지만 바로 사과하지 못했다. 속으로만 후회하는 내가 한심스럽고 답답했다.


AD_4nXe-I79G8MlCwf34kRkVBVwBC_7FTTvmi2F70X6axYnFSkMP6FV3EqjLWET0J4ufskLIdVPd-gFNC5HDB-AJV16sah7R8WFRWwQ8VpFYcBu4vdxiGqJdmtLWo-QFNx0nvKkPt7AudQ?key=ADddwMLt3KdtPU1abagTuzhM
20230610_104559.jpg
20230610_121634.jpg
20230610_105752.jpg
20230610_120940.jpg
20230610_105024.jpg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바에서 한참 쉬었다. 사리아에 가까울수록 날이 훤해지는데 숙소에 도착한 이후 내 마음은 어두워져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누나에게 싫은 소리 하며 짜증을 냈던 게 어제오늘만이 아니었다. 카카벨로스 숙소에서 반바지를 화장실에 두고 나왔을 때, 프로미스타에서 핸드폰 충전기를 두고 나와 결국 잃어버렸을 때, 순례 초반에 우의 커버를 누나에게 맡겼던 걸로 착각했을 때도 누나에게 궁시렁댔다. 그럴 때마다 누나는 일언반구 없이 잠자코 내 기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순례를 떠나기 전, 스스로에게 철석같이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어떤 경우라도 누나에게 화를 내거나 말다툼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말이다.


까미노에서는 순례자들과 자주 부대낀다. 함께 걸어도, 혼자여도 마찬가지다. 고된 일정인지라 일행끼리 사소한 일로 심심치 않게 갈등한다. 솔로일지라도 스쳐가는 이들로 인해 불편을 겪거나 길 가다가 친해져 동행하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안 맞아 멀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순례 준비를 하면서 부부, 연인, 친구 혹은 까미노에서 친해진 일행들과 함께 걷다가 의가 상하거나 관계가 소원해지는 걸 보며 누나에게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한 게 무색해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현대 의학에서 암을 진단하려면 종양이 최소 1cm 이상 자라야 한다. 암이 이 정도로 크기 위해서는 10억 개의 암세포가 필요하다. 암세포는 대략 90일마다 증식을 한다. 암으로 판정받기까지 한 개의 암세포가 7년 반 동안 30번의 세포 분열을 해야 한다. 그 이후로는 순식간에 기하급수적으로 자란다. 누나에게 불만을 가진 불온한 세포가 언제 내 마음 속에 출몰했을까? 초면의 젊은 순례자들에게 자연스레 하대하는 누나에게 그러지 말라며 타박한 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교사 특유의 어투가 마땅찮았던 내 위아爲我 세포 하나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30일에 걸쳐 매일 자기 증식한 결과 누나에게 짜증 부리거나 내 부주의나 잘못을 누나 탓으로 뒤집어씌우는 적반하장의 무례를 일삼을 정도로 커졌다.


가슬추연加膝墜淵. 좋을 땐 무릎에 앉히고 미우면 연못에 밀어 넣는다는 뜻으로 기분에 따라 사랑과 미움을 나타내는 언행이 예에 어긋남을 일컫는다. 언제부턴가 누나의 언행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퉁명스럽게 말하거나 실수를 누나 탓으로 돌렸다. 꽉 막힌 내 위아가 일으킨 사달이다. The Rolling Stones가 이런 나를 책망하는 것 같다.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100위)’를 노래하며. 어느 누구도 원하는 걸 항상 가질 수는 없다. 내가 일방적으로 그린 이상적인 누나 모습을 현실에서 찾는 어리석음을 저지른 것이다.


오전에 감상한 Otis Redding의 ‘I’ve been loving you too long(to stop now, 110위)’을 다시 들으며 누나 심정을 헤아렸다. 낯선 순례길에서 힘들거나 불편할수록 내게 더 의지했을 텐데 오히려 상처 받았을거다. 후회막급에 만시지탄이다. 그나마 이를 묵묵히 삭인 듯하여 다행이다. 상처는 긁을수록 덧나서 곪기만 한다. 누나는 내가 긁은 상처의 고통스러운 가려움을 이겨내 굳어진 생치기에서 새 살을 돋아냈을 것이다. 누나를 잘 보필하겠다는 다짐을 져버린 미안한 마음을 Van Morrison이 달래준다. 우리가 샤랄라라 이렇게 부르던 노래가 기억나느냐고 묻는 ‘Brown eyed gril(109위)’로.


Otis Redding - I’ve Been Loving You Too Long(to Stop Now, 1965년, 110위)


모닥불을 피우는덴 옹이 진 장작이 최고다. 옹이가 많을수록 화력이 좋다. 생채기를 감싸서 단단해진 게 옹이라서 그렇다. 옹이 장작불이 한창 타고나면 숯불이 된다. 숯불은 원적외선을 방출해 체온을 올려주는 효능이 있다. 체온이 오르면 각종 질병의 원인균이 없어지고 혈관이 확장돼 혈액순환이 원활해진다. 누나의 굳은 심지는 옹이 장작이 되고 숯불로 화해 내가 부린 짜증을 순화시켰을 것이다. 상처받은 마음은 잉걸불로 잦아들어 점차 평온을 되찾았을 것이고.


에고Ego를 달리 말해 위아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위아가 있다. 이게 지나치면 사회에 해악이 되지만 자본주의의 근간인 선천적 본능이자 필요악이기도 하다. 나는 여태껏 위아를 부정하거나 억누르려고만 했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다고 믿으면서. 누나에게 저지른 언행만 보면 그렇게 스스로를 옥죄였으되 가슴속 위아를 주저앉히기는커녕 그것이 활개 치도록 모른척 외면했던 것 같다. 이제라도 위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그것이 건강하도록 관리해야겠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어제 머문 펜션 콤플레소 사코베오Pensión Complexo Xacobeo 에 전화했다. 옷을 분실했다는 말에 청소하다 발견해 보관 중이란다. 사리아에 거주하는 스태프 한 분이 퇴근길에 전해주기로 했다. 5시 좀 넘어 숙소 앞에서 기다리는 내게 환하게 웃으며 건네주고 바삐 돌아갔다. 고맙단 인사만 하고 보내어 못내 아쉬웠다. 왓츠앱에 내게 천사가 되어준 일을 잊지 않겠다는 감사 메시지를 남겼다. 구글 지도에도 숙소 리뷰에 고마운 사연을 적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