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배와 헤어졌다. 이별 기념으로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을 알베르게에서 단출히 식사했다. 근처 레스토랑 오픈 시간이 맞지 않아 만찬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 미리 사둔 넉넉한 먹거리로 시장기를 달래고선 바로 출발했다. 숙소 앞뜰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걸음이 빠른 김 선배 더러 먼저 가시라 했다. 건강하고 무사히 완주하자는 격려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로그로뇨를 떠나는 날 두어 시간 함께 걸으며 제대로 교감을 나누었거니와 무엇보다 사려 깊고 조용한 성품에 끌렸다. 앞으로 다시 볼 수 없게 되어 많이 아쉬웠다.
작은 마을이라 도로를 걸은 지 얼마 안 돼서 완만한 비탈길로 접어들었다. 철조망에 둘러싸여 드문드문 맨땅을 드러난 초지대위에 수백 마리의 양 떼들이 풀을 뜯거나 한가로이 앉아 있다. 개중에는 아침부터 그리 바삐 어디 가냐는 듯 지나치는 순례객을 쳐다본다.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자 서서히 몸이 달궈진다. 잔뜩 흐리고 바람이 심해 쌀쌀한데도 체열로 후끈하다. 흙길이 어느새 너덜길로 바뀌었다. 길바닥은 지층을 뚫고 불규칙하게 솟은 크고 작은 바윗돌 투성이다. 바위 몸통에서 떨어져 나와 부서진 주먹만 한 자갈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아주 오랜 옛날 이 땅에 살았을 이들은 산기슭 어딜 가도 발에 차이는 이 돌로 소중한 타제석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아직 경미한 발가락 통증이 남아 있는 누나에게 울퉁불퉁한 자갈길이 부담될 것 같았다. 서두를 거 없으니 천천히 가자 했다. 괜히 발목이라도 다치게 되면 낭패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는 이십 킬로미터가 채 안된다. 체크인 시각도 미리 여유 있게 오후 두 시 삼십 분으로 잡아 놨다. 시간이 무척 널널하다. 현재 시각 일곱 시 오십 분. 설렁설렁 걸더라도 부르고스 대성당에서 상당 시간을 때워야 한다. 이리 천천히 걷는데도 출발한 지 사십 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올라서면 바로 옆에 길쭉한 나무 십자가가 커다랗게 세워져 있다. 지나가는 순례객들이 자신의 번민을 대속하려 하나둘씩 쌓았을까? 십자가 아래로 조그맣게 돌무더기가 쌓여있다. 십자가를 보는 것만으로 죄를 씻어내 경건해진 기분이었다. 한국의 대다수 산들은 정상 자리가 협소하다. 적게는 서너 명 많아야 수십 명이 자리할 수 있다. 여기는 얼핏 봐서 수십만 군중이 모일 법한 평지가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마치 우뚝 솟은 산 허리를 전쟁의 신 아레스가 칼로 가로 베어 만들어낸 광장 같다. 앞서간 순례객이 사라진 너머 아래로 비야발이 보일 것이다.
초지대의 양떼를 지나 새들이 합창하는 길을 오르면 정상 초입에 있는 커다란 십자가가 순례객을 맞이한다. 정상에 펼쳐진 평지 끝자락 아래에 비야발 전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까미노에서 부지불식간에 느끼거나 처음 경험한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유난히 낮게 깔린 뭉게구름이다. 거짓말 좀 보태 저 멀리 보이는 뭉게구름에 가까이 가면 머리가 닿을 듯한 착각이 인다. 서울에서는 뭉게구름이 이 보단 높았던 것 같은데. 처음엔 막연히 고지대니까 구름이 낮은 거라 넘겼다. 이내 의문이 들었다. 그런 이유라면 남한 제일 봉 백록담이나 지리산 천왕봉 아래로는 구름이 널려 있어야 했다. 정확한 까닭은 모르겠다. 우기에도 비만 그치면 습하지 않은 지형에 강렬한 태양 복사열로 쉬이 달궈진 공기가 이슬점을 높게 형성시켰기 때문이라 막연히 추측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정수리에 사뿐히 내려앉을 법한 뭉게구름을 볼 때마다 낯설어 한동안 눈을 떼기 어렵다.
두 번째 언제부터인가 귀를 자극하기 시작한 새들의 공연이다. 오늘도 십자가에 이르는 너덜 비탈길을 오르는 동안 한 무리의 새떼가 구성지게 울어재꼈다. 지지배배, 째액째액 서로가 한 소절씩 정겹게 주고받는다. 새들의 합창 소리가 연이은 도보로 피곤에 쌓인 순례객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질주하는 버스의 타이어 마찰음과 자동차 경적 소리 혹은 지하철 멈춰서는 날카로운 금속성의 굉음들로 가득한 도심의 무미건조한 잡음과는 천양지차이다. 까미노에서나 맛볼 수 있는 한정판 ASMR이다. 한 번 의식하게 되니 날 좋은 아침 숲길을 지날 때마다 새들의 판타스틱한 삼중창, 사중창이 기다려진다.
끝으로 납작 복숭아를 꼽고 싶다. 이 놈은 처음 보는 낯선 모양새다. 위에서 보면 여느 복숭아처럼 동그랗게 생겼다. 그런데 옆을 보면 위아래로 눌려 있는 게 정말 납작하다. 쉽게 도넛을 연상해 보시라. 도넛 구멍을 메우면 딱 요 모양이다. 움켜쥔 주먹보다 작은 크기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딱 한입 거리다. 단물이 가득하고 육질은 적당히 물러 식감도 괜찮다. 오뉴월이 제철인 덕에 구하기도 쉬워 간식 삼기 적당하다.
서울 도심 야경을 이루는 장식물 중에 네온사인을 두른 교회 종탑과 십자가들을 빼놓기가 어렵다. 시선 닿는 곳곳마다 세워진 십자가를 볼 때엔 어떤 감흥도 일지 않았다. ‘교회가 이렇게 많구나’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까미노에 와서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다. 순례길에 위치한 마을마다 대부분 조그맣게라도 성당이 있다. 규모가 큰 곳엔 성당이 여러 개 있는 경우가 있다. 길을 걷다 보면 성당 말고도 가톨릭을 상징하는 건축이나 장식물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성당을 마주치거나 십자가와 가톨릭 장식물 등을 지나칠 때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들을 바라보기 전에 가슴 한편에 남아 있어선 안될 불결한 무언가를 털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일어난다. 왜 그런지 통 알 길이 없다. 그냥 그런 마음이 저절로 든다. 특히 카미노의 돌무더기 위에 세워진 십자가를 마주 대할 땐 더 그렇다. 나를 돌아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내 가족과 곁에 있는 지인들을 떠올린다. 특정하지 못할 수많은 내 잘못을 돌이켜 참회한다. 찰나의 고백으로 그 죄가 결코 사해 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용서도 바라지 않는다. 단지 고백을 하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운 무언가가 머리를 조아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가족과 지인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한다. 특히 구순에 이르신 어머니와 암과 싸우고 있는 선후배들의 건강을 간절히 기원했다.
참척(慘慽)과 단장(斷腸)의 슬픔을 노래한 이가 있다. 참혹하리만큼 슬프고 창자가 끊어질 고통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Eric Clapton은 자식을 잃은 참척의 고통을 'Tears in heaven(353위)'에서 노래했다. 네 살배기 아들 코너는 동물원에 데려가기로 한 에릭을 기다리면서 유모와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그러다가 돌이킬 수 없는 변을 당했다. 술래잡이에게서 도망가던 중에 가정부가 청소하려고 열어 논 창문 너머 베란다에서 추락한 것이다. 코너는 사고 직전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단 한 줄의 편지를 적었다. 아빠에게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였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에릭은 코너에게 답장을 보내기로 했다. 에릭의 답장이 바로 이 노래다. 에릭이 첫 소절을 직접 썼다. 작사 중에 슬픔이 복받쳐서 그랬을까? 나머지는 작곡을 맡았던 윌 제닝스에게 부탁했다. 그리운 아들에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려는 마음을 그려달라 했다. 아들의 사고가 있기 전 에릭은 사정이 생겨 예약한 헬리콥터를 스티비 레이 본에게 양보했다. 그런데 헬기가 추락하여 스티비가 사망하게 되었다. 그를 추모하려 이 노래를 준비했다가 아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후일담이 있다. 곡이 탄생한 배경 때문에 상업적으로 이용할 의지가 전혀 없었으며 2004년에 이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와 그때의 감정이 남아 있지 않거니와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MTV 실황 버전인 'Unplugged(1992년)'는 개인적으로 애장 하는 앨범이다. 아끼던 후배가 하느님 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았다. 항암 치료를 무탈히 잘 받고 있다며 산티아고 완주 후 늦여름 즈음에 만나자 했었는데 귀국한 지 얼마 안 돼서 황망한 소식을 받았다. 후배가 보고 싶을 때면 가끔씩 LP를 걸거나 스크린에서 에릭이 눈 감고 음유하는 영상을 감상한다.
Eric Clapton - Tears In Heaven(1991년, 353위)
산에서 내려와 비야발을 지났다. 높이 솟은 나무 꼭대기 지척까지 내려앉은 뭉게구름 사이로 눈이 시리도록 청명한 햇살이 대지 위를 질주한다. 태양의 아우라에 온세계가 연둣빛으로 호응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사위를 가득 채우는 듯한 장관이었다. 짙은 녹음은 썰물이 되어 일촌광음으로 뒷걸음쳐 물러난다. 차안이 아닌 피안의 세계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몽환적인 미지의 어딘가로 내 몸이 쑤욱 빨려 들어가는 몽롱한 느낌마저 들었다. 좀 더 걸어 오르바네하 리오삐코를 지나 부르고스 공항을 앞에 두고 갈림길이 나타났다. 공항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비야프리아를 경유해 부르고스 도심까지 가는 쇼트커트이다. 공항을 왼쪽으로 크게 돌아 카스타냐레스로 가면 아르란손 강을 끼고 공원으로 조성된 우회 숲길을 지난다. 서두르면 후회만 남는다는 교훈을 얻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시간 또한 여유 있다. 고즈넉한 산책길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주저하지 않고 왼쪽 길로 들어선다.
비야발을 지나 오르바네하 리오삐코를 향해 가는데 짙은 구름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내려온다. 연두색으로 물든 밀밭이 황홀하다. 천국이나 신선이 사는 도원이 이런 분위기라 여기졌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부르고스로 가는 갈림길 중 왼쪽 길을 가라 하지 않았다. 오롯이 내가 자유로이 선택을 한 결과다. 에릭 클랩튼과 그리 길지 않은 우정을 나눈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추앙받는 Jimi Hendrix는 'Little wing(357위)'에서 아무 제약이 없는 자유를 이야기했다. 화자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연인이 천 가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그녀는 연신 괜찮다며 자신에게서 원하는 건 무엇이든 가지라고 위로를 한다.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자유(Freedom)라면 어떠한 제약도 없는 자유다. 그러니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거리낄 것 없이 마음껏 향유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무한한 자유는 위험하다. 자유주의 태두라 할만한 존 스튜어트 밀은 남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에서 사적인 행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의 파레토 최적을 외친 것이다. 다만 그 행동이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쳤다는 확실히 증거가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긴 했다. 밀은 인간의 자유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위해 사회가 이 같은 불편함을 충분히 감수해야 한다 믿었다. 한 개인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위해 하다는 전제가 달려 있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할 자유를 부정한 것이다. 자유에 대한 밀의 견해는 프리덤보다 리버티(Liberty)에 근사하다. 리버티의 사전적인 정의는 억압적인 제한을 받지 않는 상태이다. 상기한 내용들을 종합하면 리버티는 자유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동시에 타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제약을 받는 자유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주류 계층은 정부 규제를 비판하거나 시장 원리를 옹호하고자 자유 민주주의의 원칙을 종종 언급한다. 대개는 행위의 자유만을 강조하지 자유의 책임을 부각하진 않는다. 이들이 말하는 자유란 freedom일까? liberal 일까? 전자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는 국가와 권력의 부당한 강압으로부터의 정치적 자유 못지않게 자유의 존재와 정당성을 위협하는 개인의 과도한 일탈을 법률로 제한한다. 프리덤의 과잉에 빠지게 되면 강자존 약자멸(强者存 弱者滅), 적자생존의 정글로 들어서게 될지 모른다. 대가 없이 사회에 기여하는 강자를 사회 구성원들이 존중해 주는 강자존(强者尊)이란 리버티의 이상을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맛볼 날은 과연 언제쯤일까?
강자존(强者尊)이란 피안의 세계를 그려보는 동안 부르고스로 향하는 숲길에 들어섰다. 아르란손 강여울을 건너니 차츰 차안의 세상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느낀다. 비야발을 지나면서 잠시잠깐 접했던 몽환적인 경치가 Eurythmics의 'Sweet dreams(are made of this, 356위)'가 던지는 이미지와 묘하게 일치한다. 도입 부분의 신시사이저 베이스 리프와 드럼 소리가 환상의 세계로부터 흘러나오는 것 같다. 애니 레녹스의 중성적인 목소리와 가녀린 코러스도 이런 분위기를 한층 더 고양시킨다. 이 노래를 듣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몽롱해진다. 달콤한 꿈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 걸까? 인류가 바라는 유토피아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몽환적인 분위기와 달리 이 노래를 만들 때 연인이었던 데이비드 스튜어트와 애니 레녹스는 상황이 녹록지 못했다. 곡에 필요한 악기와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할 정도로 재정이 열악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자주 다투게 되어 둘의 사이가 악화일로에 접어들 즈음에 이 노래를 만들었다. 노랫말 중에 누군가는 너를 이용하길 원하고 누구는 너에게 이용당하기를 원한다는 대목이 있다. 가슴에 무척 와닿았다. 작은 것에 연연하는 소심한 편이지만 나는 남에게 해가 되고 싶지 않기도 하지만 그들에게서 피해받는 것도 원치 않는다. 간섭받지 않고 알아서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걸로 족한 성향이다. 성격이 이래서인지 자본주의 체제의 우리 사회가 구시대의 낡고 천박한 자본주의가 아닌 공정한 경쟁을 담보하는 제대로 된 그것으로 승화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파레토 최적을 추구하는 경쟁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urythmics - Sweet Dreams(Are Made of This, 1983년 356위)
강을 끼고 공원을 관통하는 숲길이 도심 한복판까지 이어진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인데도 한가로이 산보를 즐기는 시민들이 상당하다. 생면부지의 이방인이 'Holla'하며 인사를 건네면 산책 나온 시민들이 환하게 웃어주며 순례자에게 축복하듯 'Buen Camino'라 응답한다. 한결같이 삶에 찌들지 않은 여유로운 표정들이다. 무언가에 쫓기거나 얽매이지 않는 모습이 생경하면서 부러웠다. 모르는 이가 지나가며 웃음을 건네면 못 볼 걸 봤다는 듯 의심에 찬 눈으로 경계하고 무표정하게 굳은 얼굴이 대부분인 우리 사회와 너무나도 대비되었다. 경제적으로야 북부 유럽에 미흡하지만 그래도 이 나라가 선진국임을 상기하게 해주는 계기 중 하나였다. 또 다른 인상적인 경험을 꼽으라면 횡단보도나 무단으로 길을 건널 때이다. 몇 미터 앞은 물론이요 이삼십 미터 이상 떨어진 차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심지어 무단횡단하는 행인을 발견하면 바로 멈춰 서거나 속도를 낮춰 서행하다 멀찌감치서 정지한다. 보행자를 무시한 채 쌩하니 지나가는 교통 문화에 익숙해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해도 되려 먼저 건너라는 손짓에 요지부동이다. 언제 어디서든 보행자를 우선하는 문화가 강력한 규제에 기인한 탓인지 모르겠다. 원인이야 어떻든 교통약자를 보호하는 사회 관습이 몸에 밴 시민의식을 맛볼 수 있었다.
오르바네하 리오삐코와 카스타냐레스를 잇는 숲길을 따라가면 부르고스 공원 산책로를 만난다. 공원 규모가 상당하다. 넓은 공원에 시민들이 듬성듬성 한가롭게 산책을 즐긴다.
이런 조그만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스페인에 대한 편견이 많이 깨졌다. 십이 년 전 남부 유럽 국가에 닥친 재정 위기가 전 세계를 경제 위기로 내몰았다. 세상은 이들을 남부의 돼지들이라며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라 조롱해 댔다. 공교롭게 이들 네 나라는 모두 한때 세계를 호령한 제국이었다. 스페인은 다스리던 강역의 어느 한 곳에서는 반드시 해가 떠있어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라 불렸다. 제국은 영원하지 못했다. 신대륙에서 약탈한 금과 은에 과도하게 의존하다 쇠락한 영욕의 역사를 지녔다. 화려했던 제국의 낙일은 장려하지 못했다. 관객 없는 무대 위에서 홀로 쓸쓸하게 은퇴공연을 하는 연극배우 마냥 네덜란드와 영국에 밀려 역사 무대의 뒤로 내려가야 했다. 부르고스 대성당을 가기 위해 공원을 빠져나왔다. 부르고스 시청 광장에 레콘키스타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엘 시드 기마상에서 훗날 도래할 제국의 풍모를 엿볼 수 있었다.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국토 회복을 주도한 카스티야 왕국은 세계를 경영하는 제국으로 거듭날 스페인 통일 왕국의 초석이었고 부르고스는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다.
부르고스 대성당에 도착했다. 정오를 갓 넘은 시각, 작렬하는 태양으로 이글거리는 광장이 한산했다. 햇볕을 쬐는 고양이 마냥 한참을 벤치에 앉아 대성당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순례에 지친 나그네상 옆에 앉아 사진을 찍은 후에 적당한 바를 찾아 모처럼 한적하게 점심을 먹었다. 체크인 시간에 맞춰 예약한 호스텔로 갔다. 알베르게가 아니여서인지 세탁기가 구비되지 않았다. 코인세탁소로 갈까 하다가 시립 알베르게에 빨래 원정을 가기로 했다. 관리인이 입구에서 제지할까 봐 가슴이 콩당콩당 요동쳤다. 다행히 걱정과 달리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순서를 기다렸다. 차례가 되어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으려는 찰나 젊은 한국 여성이 다가온다. 우리가 세탁을 시작하면 빈 곳이 없다. 이미 돌고 있는 세탁기들은 가동한 지 얼마 안돼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처음 보는 사이였으나 괜찮으면 같이 세탁하겠냐고 제안했다. 우리가 지불할 요금은 어차피 똑같고 세탁 용량이 한참 남아 일인 분의 세탁물을 더 돌려도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녀는 우리 제안을 고마워하며 흔쾌히 수락했다. 이것은 작은 호의였지 천사의 선행이라 하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제대로 된 선행은 다음 기회로 넘겼다. 저녁을 평점 높은 맛집에서 모르씨야(스페인 순대)와 깔라마리로 해결했다. 알코올을 입에 댈 수가 없어 누나가 시킨 상그리아를 보는 걸로 만족했다. 지난 오 년 동안 마신 콜라보다 여기서 십이일 사이에 마신 콜라가 더 많은 거 같다. 알코올보단 그래도 카페인과 탄산이 위장에 더 낫겠거니 스스로 위안 삼는 중이다.
부르고스를 창시한 디에고 로드리게스 포르셀로스와 레콘키스타의 영웅 엘시드 조각상을 지나 부르고스 대성당에 도착했다. 부르고스에 들어서야 영욕의 스페인 역사를 제대로 실감했다.
대성당 광장에서 한참을 노닐었다. 타파스로 오찬을 하고서 숙소에 들어가 잠시 쉬다가 빨래를 하러 시립 알베르게에 갔다. 저녁은 모르시야와 깔라마리 세트. 보기보다 양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