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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차] 정규직 전환을 꿈꾸는 기간제 천사

All You Need Is Love - 최초의 풍요로운 사회

by 여운설

2023년 5월 21일 벨도라도 - 아타푸에르카 30.0km


바람이 목동 되어 양떼구름을 듬성듬성 몰고 간다. 지나간 구름 사이로 햇살이 가득하다. 간만에 키다리 아저씨 그림자가 반긴다. 며칠간 몰아친 가슴속 폭우와 돌풍이 잔잔해졌다. 심란하기만 했던 어제의 그늘에서 벗어나 가벼운 흥분이 고조된다. 목재로 지어진 다리를 지나는 감촉이 흙길을 걷는 맛과 또 달라 절로 웃음 짓게 한다. 밀밭 사이로 까미노를 걷는 묘미가 곁들여지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제 실수를 만회하려 진득하게 프레임을 잡았다. 흡족할 만한 사진을 몇 장 건졌다. 누나는 저만치 앞서갔다. 서둘러 휴대폰 목줄을 대충 둘둘 말아 주머니에 넣고 누나에게 잰걸음 쳐 뛰어갔다.


그렇게 희희낙락 모처럼 즐거워하던 차였다. 뒤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뒤따르는 일행들이 언성 높여 얘기하나 싶어 모른 척하며 걸었다. 우리가 돌아보지 않자 급기야 꽥꽥거리며 고함친다. 뭔 일인가 뒤를 돌아봤다. 할아버지 세 분이 두 손을 들어 등산 스틱을 휘휘 저으신다. 부지불식간에 실례했던가 기억을 더듬었다. 도통 실수라 할 만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가만히 쳐다 만 보자 그중 한 분이 앞서 나와 손을 흔드는데 누나가 손에 든 게 아무래도 핸드폰 같다고 했다. 아차 싶어 재킷을 더듬었다. 옷깃만 잡힐 뿐 만져지는 게 없었다. 아뿔싸하며 냅다 앞선 분께 달려갔다. 할아버지가 네가 떨어뜨리고 가는 걸 봤다는 웃음과 함께 폰을 건넨다. 너무 고마웠다. 연신 고개 숙여 Muchas Gracias를 되뇄다. 이탈리아 분들께 스페인어라니. 그래도 까미노에선 무차스 그라시아스가 공용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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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뒤로 여명이 차오른다. 별의 들판과 레콘키스타를 장식한 그래피티, 키다리 아저씨와 목교를 걷는 맛에 취해 핸드폰을 흘렸다. 이탈리아에서 오신 세 분의 대천사.


마침내 내게 까미노 천사가 발현했다. 순례길에서 언젠가 한 번은 만날 거라 여겼지만 이렇게 빨리 조우하리라곤 전혀 생각지 않았다. 폰을 잃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편을 초래한다. 인적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은 분실의 대가라 치자. 항공권과 열차 e-티켓은 비상용으로 지참한 인쇄물로 대체 가능하다. 문제는 구글 드라이브에 업로드한 엑셀 파일이다. 여기에는 일자별로 세세한 스케줄과 각종 순례 정보들이 일목 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더 이상 무용지물이다. 마드리드 여행까지 남은 31일의 일정을 전부 기억해 내거나 새로 짜야 한다. 간편 결제가 불가능해져 모든 비용을 현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소지할 현금이 늘어 번거롭다. 이렇게 식겁할 일들이 넘쳐난다. 상황이 이런지라 내게는 단순한 천사가 아니라 천사들을 이끄는 대천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천사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이 환한 미소로 나타나 곤혹스러울 뻔한 나를 수렁에서 건져주었다.


봉변 당하거나 진퇴양난에 처한 순례자에게 천사들은 늘 나타난다. 생면부지 이방인에게 당연스레 도움을 주고는 홀연히 떠나간다. 그들이 머문 자리에 넘쳐나는 감동만이 천사가 다녀갔음을 증명해 준다. 순례자들을 심려시킨 근심덩이가 어느새 사라진다. 잔잔한 미소와 감격에 찬 행복은 까미노의 연꽃이 되어 도움이 필요할 다른 이에게 날아간다. 순례길이 열린 후 어느 나그네가 베푼 작은 선행 하나가 도미노로 이어졌다. 천년을 이은 릴레이는 어느덧 천사들의 합창이 되어 까미노 곳곳에 울려 퍼진다. 이 날의 기쁨을 잊지 않고 천사가 필요한 이들에게 후한 이자를 더해 기부하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까미노에 흔하디 흔한 천사들은 아쉽게도 정규직이 아니다. 상당수가 계약기간이 짧은 기간제 천사로 짐작된다. 순례를 마치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종료되는 임시직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37일간 순례 중에 천사들에게 상당한 도움을 받거나 배려와 양보를 얻었다. 그럴 때마다 자청하여 낮은 곳에 임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귀국후 몇 개월 만에 까미노 약발이 다했다. 천사의 본성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드는 얌체 차량이 얼마나 짜증스럽던가! 비상등을 켜 사과하면 그나마 양반이다. 끼어들기야말로 떳떳한 자기 권리라는 뻔뻔한 운전자에 혈압이 오른다. 왕왕 나도 모르게 분노의 상향등을 날리거나 클랙슨을 울린다. 순례 중이라면 얼마나 급하길래 하며 사고 나지 않게 천천히 다니시라 염려했을 게다. 어쨌든 기간제 천사라도 좋다. 계약이 만료되면 기회 봐서 까미노에 들러 재계약하면 그만이니까. 천사는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나으니까. 천사로 인해 성선설이 힘을 받고 인류 공영의 이상이 허무한 신기루가 아님을 증명하게 될테니까.


까미노 천사를 생물유전학으로 표현하면 이기적 유전자의 이타적 행동이라 정의할 수 있다. 순례 중에 내가 특별히 더 착해지거나 선행을 더 베풀진 않는다. 자연선택설의 관점에서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주체는 나라는 ‘개체’가 아니다. 그 개체를 이루는 ‘유전자’다. 선행을 하는 도중에 일부 유전자는 어쩔 수 없이 훼손되거나 희생당한다. 그러나 유전자 전체로는 진화적으로 번성하거나 자기 복제를 하는데 더 유리하기 때문에 선행하는 것이다. ‘나’라는 개체(천사)의 이타적 행동은 기실 그 선행을 유도한 유전자가 이기적으로 작동한 결과다. 여기서 이기적이란 말은 자기의 이익을 꾀한다는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다. 유전자가 다른 이의 자원을 이용해서 자기 복제를 늘리는 행위를 뜻한다. 결국 천사의 선행은 유전자가 자기 복제 본능에 이득이 되도록 개체의 행위와 기질에 영향을 미친 결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류의 선행을 이기적 유전자의 본능이라 해석하는 게 각박하다 여길지 모르겠다. 설령 이기적 유전자가 천사를 탄생시킨 절대자라는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손 치자. 산티아고에 무사히 도착하기까지 혹시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해 기꺼이 선행을 적립하는 걸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예기치 못한 어려운 지경에서 다른 천사들에게 도움을 받게 될 터이니.


이기적 유전자는 파레토 최적을 원할까? 경제학에서 파레토 최적이란 한정된 자원을 배분할 때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지 않고서는 자신에게 이득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 상태이다. 이를 유전자 단위에서 해석하면 서로가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각자 최선의 이득, 즉 자기 복제를 한다는 뜻이겠다. 다른 유전자의 자원을 활용해 자기 복제를 꾀하는 이기적 유전자의 속성상 파레토 최적은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다. 만일 개체나 집단으로 기준을 바꾸면 어떨까? 이기적 유전자가 개체의 이타성을 용인하듯이 파레토 최적을 허용할까? 내 견해는 그렇다에 가깝다. 내게 남는 자원을 다른 이에게 양보한 대가로 내게 필요한 자원을 얻으면 내가 속한 집단과 사회는 파레토 개선이 가능하다. 당연히 그렇지 못한 다른 집단이나 사회과의 경쟁에서 생존 확률이 올라간다.


Depeche Mode의 ’Personal Jesus(368위)’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아내가 그를 회고한 책에서 영감을 얻어 지어졌다. 아내 프리실라는 ‘Elvis and Me’에서 엘비스가 어떻게 자신의 멘토가 되었는지 소개했다. DM의 리더 마틴은 이 책을 읽다가 사람의 마음과 신이 어떤 면에서 비슷한 지, 도움이 필요할 이에게 희망을 줄 예수님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구원이 필요한 이들이 자신만의 예수로부터 도움을 받는다고 노래했다. 만일 자기만의 예수가 있어 저마다 다른 예수님의 말씀을 행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본다. 상기한 파레토 최적이 깨지거나 다른 최적의 상태로 변하는 과정에서 야기될 혼란이 불가피할 것 같다.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라 주장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성경을 다르게 해석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시켜 설파한다면 어떻게 될까?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밀어라는 구절이 있다. 자구로는 적의를 표한 이에게 왼뺨을 내밀어 한결같은 호의와 사랑을 표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고대 중동과 유대 문화를 연구한 성경학자는 다른 해석을 한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오른손을 신성시 여겨 남을 때리는 미천한 일은 왼손에 맡겼다. 뺨을 맞은 모욕을 갚고자 왼뺨을 내밀면 상대방은 오른손을 써야 한다. 결국 상대방이 스스로 부정하고 천한 존재임을 드러내게 하라는 말씀으로 해석 가능하다. 예수님의 진정한 속뜻은 어디에 있을까? 예루살렘에 들어간 예수님이 성전이 다 허물어지리라고 하신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Depeche Mode - Personal Jesus(1989년, 368위)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Villafranca Montes de Oca마을을 지나 오카산에 올랐다. 정상으로 이어진 좁다란 흙길에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져 시원했다. 구릉진 정상을 넘어서니 태양이 강렬히 내리쬔다. 평평히 다진 널찍한 신작로에 그늘 한 점 없다. 화살비처럼 내리쬐는 햇살을 방패 마냥 온몸으로 받으며 터덜터덜 걷는다. 산을 거의 다 내려올 즈음이었다. 길 오른편에 돌과 시멘트로 조형된 기념비가 이채롭다. 혹시나 싶어 철렁한 마음이었는데 역시나 프랑코 정권에 살해된 희생자 기념비Monte de la Pedraja 1936였다. 기념비 바로 옆에는 순례 도중 명운을 다한 이를 기리는 돌무덤이 애처롭게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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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벌판과 무너진 창고를 지나 오카산 흙길을 올라 정상을 내려오면 몬테 데 라 페드라하 희생자 묘지와 기념탑을 만난다. 그 옆에 자리잡은 순례자 무덤이 애처롭다.


제2 공화국을 전복시키기 위해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던 1936년, 그를 지지하는 반정부군이 공화국을 수호하려던 300명을 이곳 몬테 데 라 페드라하에서 총살했다. 프랑코는 보수 가톨릭 신자였다. 총통의 주요 지지세력 중 극우 성향에 가까운 스페인 가톨릭 교회가 있었다. 프랑코 정권은 구약의 야훼가 내린 추상같은 명령에 충실했다. 여호와를 따르지 않는 이교도처럼 저항군을 한 줌의 자비 없이 섬멸하라는 불같은 엄명을 따랐다. 어째서 네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신약의 하느님을 외면한 걸까? 너희는 이웃과 적을 가리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 심판의 날에 하느님께서 무도한 그들을 반드시 심판하리니. 아마도 예수님의 본심은 이게 아닐런지? 이십여만 명의 목숨을 빼앗은 프랑코 총통은 과연 하느님의 심판을 받았을지 사뭇 궁금하다.


어떤 전쟁도 전쟁 그 자체는 반인권적이다. 권력을 찬탈하려는 내전이나 명분 없는 침략 전쟁은 말할 나위 없다. 식민 지배를 반대하는 독립전쟁이나 독재에 항거하는 자유혁명이라 해도 전쟁 중에 민간인들의 애꿎은 희생을 피할 수 없다. 역사의 진보를 위한, 부당한 박해에 저항하는 전쟁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반전과 휴머니즘을 노래하는 건 그만큼 전쟁이 참혹하기 때문이다. Beatles가 부른 ‘All you need is love(362위)’도 그중 하나다. 1967년 영국의 BBC는 세계 최초로 전 세계 6 대륙을 위성으로 연결하는 ‘Our world’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프로그램 취지에 맞는 노래는 영국을 대표한 비틀스에 의뢰했다. 존 레넌이 작곡한 이 노래의 제목은 당시 반전 운동에서 사용되던 구호 중 하나다. 존은 자칭 혁명을 꿈꾸는 예술가라 부를 정도로 부조리를 혁파하는 변화와 진보를 그리는 곡을 만들려 했다. 우리에게는 곡이 태동된 배경과 전혀 다른 여운 가득한 로맨스 영화 ‘Love actually(2013년)’의 OST로 더 잘 알려져 있다.


The Beatles - All You Need Is Love(1967년, 362위)


희생자 기념비를 지나면서 다시금 518 광주가 떠올라 숙연한 마음이었다. 독재에 저항한 모든 분들의 숭고한 의지에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다. 무거운 마음은 아헤스Agès까지 한동안 이어졌다. 그래도 비야 프랑카에서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까지 12km의 한적한 능선 숲길은 내게 간만에 커다란 위안을 주었다. 거센 풍랑이 가라앉아 평온한 심중을 되찾아 주었다. 아헤스까지 4km 남짓한 숲길도 괜찮았다. 흠이 있다면 오후에 좀 더웠다는 것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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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처럼 쏟아지는 햇살을 피해 잠시 쉬다 걸었더니 멋진 휴식터가 나타난다. 오르테가 마을 공터에서 이탈리아 할머니와 사총사를 만났다. 저 멀리 아헤스 마을이 보인다.


사흘 전에 출발한 나헤라부터 고도가 점차 높아져 오늘 머무는 아타푸에르카는 해발 구백 미터 중반에 달한다. 아타푸에르카 산맥을 넘어 부르고스Burgos에 도착하면 레온Leon까지 280km가량 광활한 메세타 고원을 관통해야 한다. 길고도 지루한 길이다. 하지만 이십여 년 전 처음 이 길을 안 순간부터 해발 8~900m 고원에 펼쳐진 장대한 평야를 동경해 왔다. 메마른 대지 위에 밀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저 멀리 오른편 지평선 너머로 행진하는 군대처럼 산맥이 끝없이 이어지는 곳. 곧 그 길에 서게 된다. 그래서 기대가 무척 크다.


아타푸에르카는 유럽을 대표하는 구석기 유적지다. 대체로 구석기인의 이미지는 미개하거나 간신히 유인원을 면한 원시인에 가깝다. 또한 굶주리기 십상이거나 맹수에게 희생당하는 나약한 존재로 그려진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2011년)'에서 일반의 상식을 통쾌히 뒤엎는다. 인류 역사의 99% 이상을 차지한 구석기 수렵채집인들의 삶이 예상과 달리 상당히 안락했을 것이라 설파한다. 저자는 이 시기를 ‘최초의 풍요로운 사회’라 불렀다. 당시 현생 인류의 인구는 대략 7~80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인구는 극히 적고 주위에 먹거리가 넘쳤다. 건강에 좋은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고 주당 노동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았다. 낮은 인구밀도에 가축을 키우지 않아 전염병이 드물었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성인병의 원인인 탄수화물 섭취를 지양하고 값 비싼 유기농 식단을 찾는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근로 시간을 줄여 여가를 즐긴다. 아이러니하게도 구석기시대가 현대인들이 바라는 풍요로운 선진사회의 모습이다. 구석기인들은 현대인보다 두뇌 용적이 더 커서 다방면으로 생존 지식을 갖춘 재능인이었다. 건장한 체격에 영아기만 잘 넘기면 60세 이상 살 확률이 높았고 일부는 80세를 넘긴 걸로 알려진다. 변변한 의학이랄 게 없던 선사시대임을 고려하면 믿기 힘들 정도로 놀랍다. 다만 풍요로웠으되 고난과 결핍에서 완전히 해방된 사회가 아니었음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


B.C. 1만년 전후에 발생한 농업혁명은 인류가 얻는 식량의 총량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한 결실은 아니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으며 잉여생산물을 향유하는 엘리트 계층이 탄생했다. 그 결과 20세기 이전까지 평균적인 농부들은 평균적인 구석기인보다 더 열심히 일하되 더 열악한 식사에 시름해야 했다. 농업혁명이래로 사피엔스는 자신의 조상인 수렵채집인보다 힘들고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왔다. 저자는 씨를 뿌려 작물을 기르고 가축을 키우는 농업혁명을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 혹평한다. 발상을 전환하면 인류가 밀이나 쌀을 키운 게 아니다. 밀과 쌀이 인간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 밀은 이기적 유전자의 본능을 확실히 보여준다. 진화적 관점에서 현생인류 출현 전, 한낱 잡초에 불과했을 밀은 오늘날 유전자를 가장 많이 복제한 성공적인 식물이 되었다. 밀의 이기적 본능이 대성공을 이루기까지 밀을 위한 지난한 노동은 오로지 인간이 감당했다. 밭을 골라 잡초를 뽑거나 물을 대고 해충을 막아 영양분을 제공하는 일련의 고된 노동을 끝없이 반복해야 했다.


AI가 본격적으로 꽃 피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류가 가용할 자원 총량은 구석기 수렵채집 시대에 비할 바가 아니다. 늘어난 양만큼 비약적인 파레토 개선이 이루어졌다. 당시 수렵채집인들은 무리를 이끄는 리더는 두어도 특권을 가진 엘리트를 허용하지 않았다. 수확한 자원을 집단이 정한 규칙에 따라 공유하고 나누며 나름의 파레토 최적을 유지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도 그 때처럼 파레토 최적 상태일까? 오늘날 2천억$의 부를 축적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1$도 안 되는 일당을 벌기 위해 10시간 넘게 노동하거나 기아에 지쳐 생명을 위협받는 1억2천만명에 달하는 절대 빈곤층이 공존한다. 백번 양보해 빈부 양극화, 부의 불균형이 고착된 현 상태를 파레토 최적이라 하자. 파레토 최적이 곧 공정함을 뜻하진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부의 재분배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다. 자산과 소득에 세금을 매겨 빈곤층에 나눠 주자는 아이디어를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 세금만큼 납세자들의 효용이 감소되며 저소득층의 근로 의욕을 저하시키니 사회 미덕과 파레토 최적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부의 양극화가 극에 달해 부의 한계효용이 제로에 가까워진 부자들을 가정하자. 이들은 부를 더 쌓는다 한들 더 이상 효용이 늘지 않는다. 그렇다면 향후 늘어날 자원은 한계효용이 증가될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배분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개선된 파레토 최적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AI와 로봇이 가져올 생산성 혁신과 노동 해방이야말로 사피엔스를 유토피아로 인도하는 노란 벽돌길일 것이다. All you need is love를 아타푸에르카에 도착해 다시 들었다. 내게는 파레토 최적을 향해 갈 사피엔스가 외쳐야 할 구호로 들렸다.


숙소 근처에서 예비역 김 선배를 다시 만났다. 나헤라 이후부터 부르고스 전까지 평이 좋은 알베르게들은 이미 풀부킹된 상태다. 그나마 베드가 남은 라 플라수엘라 베르데La Plazuela Verde에서 같이 머물기로 했다. 우리는 부르고스에서 하루 머문다. 김 선배는 산티아고에서 형수님과 만나 유럽 여행을 계획 중이라 연박없이 떠날 예정이다. 내일 이후론 까미노에서 만날 수 없다. 아쉽지만 헤어짐이 일상인 게 까미노 인연이다. 카톡으로 자주 연락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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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구석기 유적지임을 알려주는 마을의 오브제, 먼저 도착한 투숙객들이 여유로이 정비를 한다. 언제나 반갑게 나타나 나를 위로해주는 산티아고 길냥이들.


오늘도 장광설을 늘어놓아 소개하고 싶은 명곡들을 다 싣지 못했다. 부르고스와 레온에서 하루씩 연박할 예정이다. 누락된 곡들 중 꼭 들려주고 싶은 곡들은 연박 일정에서 소개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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