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운설 Jul 07. 2024

[9일 차] 까미노의 두 얼굴

Ohio -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 향기 머무는 5월 18일

2023년 5월 19일 나헤라 -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 20.7km


  옆 침대 벨기에 아주머니가 늦새벽부터 부스럭댄다. 신경이 쓰여 잠이 달아났다. 눈만 감은 채 기상 시간을 기다린다. 아홉 시간가량 숙면한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여섯 시 정각이 되었다. 익숙한 멜로디로 알람이 크게 울린다. 누구 핸드폰인가 했더니 누나 거였다. 급히 벨을 끄라 했다. 알베르게 에티켓 노이로제에 걸려 민감한 탓이다. 우리만 욕먹는 건 넘어가면 그만이다. 남들 자건 말건 헤드랜턴까지 켜 부산 떠는 어글리 코리안 이미지에 일조할까 봐 그랬다. 겪어보니 잠든 투숙객을 배려하지 않는 건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에티켓이 부족한 건 결국 국적보다 개인문제였다.


  여섯 시에 기상해 짐 싸는데만 삼십 분을 허비했다. 일각이 여삼추니 육 년의 시간을 허송세월한 셈이다. 하루 스물네 시간 중에 귀하지 않은 시간이 어디 있으랴만, 아침 시간은 정말 소중하다. 십여 초 상관에 근사한 일출을 놓치기도 하거니와 선선한 오전에 가급적 많이 걸어야 해를 정면으로 맞는 오후가 편하다. 단 일각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조급한 마음이 시작부터 상처 입었다. 기분이 영 마뜩잖았다. 그리 부지런한 편이 아닌데 먼 이국 땅에서 이리도 유난을 떤다. 일생을 헛되이 살아온 베짱이가 까미노에서 체감한 시간의 소중함에 절실했기 때문이리라.


  매일 이삼십 킬로미터씩 일주일 정도 걸으면 걷는 것에 적응한다. 지금이 그럴 시기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제법 단단해졌다. 안 지던 짐을 메어 승모근 주변으로 근육통이 생겼다. 이제 적당히 익숙해졌다. 육체가 순례를 그럭저럭 받아들이자 까미노의 하루 일과가 꽤 단조로워진다. 일어나 간단히 세면을 하고 입은 옷 그대로 출발한다. 알베르게나 적당한 바에서 간단히 요기를 해결한다. 한두 시간 걷다 쉬다를 반복하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체크인 후 샤워하고 나서 때 늦은 점심을 챙긴다. 뺄래 등 개인 정비와 자유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다 허기질 즈음에 저녁을 먹는다. 아홉 시 넘어서 이른 잠을 청한다. 이상이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일어나 걷고 먹고 씻고 잔다. 이 네 단어만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나헤라 성당 포토존을 지나 중심지를 빠져나오면 여물기 시작한 밀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적당한 마을 카페에서 들어가 허기를 달랜다. 누나는 저녁중인 매형과 통화를 했다.


  이처럼 단순하고 따분하기 짝이 없을 일과가 뭐 그리 좋다고 자청해 순례에 나서는지 궁금하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까미노 일과는 실은 여백의 아름다움을 한껏 머금은 도화지다. 누군가는 연필 한 자루로 그린 소묘처럼 담백한 일상을 보낸다. 혼자서 조용히 걸어 숙소에 도착해 침대에서 소일거리 하거나 내면의 나를 찾아 침잠하는 유형이다. 어떤 이는 정성스러운 데생 위로 정감 넘치는 수채화 그리듯 알차게 지낸다. 까미노에서 만난 인연들을 구태여 밀어내지 않고 교감을 나눈다. 지나가는 경관을 한 눈 가득 담아두며 들르는 마을과 도시마다 명소들을 꼬박 챙긴다. MBTI의 ‘E’ 스타일이라면  붓 자국에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강렬한 유화 같은 역동적인 일과를 맞을 것이다. 걷다가 만난 동반자들과 격의 없이 친해지는 건 기본이다. 여럿이 밤늦도록 술잔을 주고받는다. 간혹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다가 알베르게 문을 닫을 밤 열 시가 되어서야 헐레벌떡 뛰어 온다. 


  이렇게 저마다 까미노에 녹아드는 정도가 상이하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까미노에는 인연을 맺을 순례자들이 그득하다. 현지 주민들이 이어온 오랜 역사와 문화가 넘쳐난다. 무엇보다 그 종착지 끝에 대성당과 이 길을 열어 준 야고보가 있다는 점이다. 마음만 먹으면 이방인들에게 언어 제약은 중요치 않다. 상기한 여러 요소들이 길 위에서 각자의 사정에 맞게 버무려져 이 길을 찾게 된 사연을 되돌아보게 한다. 종교적인 신념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거나 연인과 헤어진 상실감에서, 지난날을 되새기며 나를 돌아보고 싶어서, 앞으로 살아갈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등등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천차만별의 동기를 가진 사람들이 까미노에서 매일 자신만의 그림을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그려댄다.


  이토록 다채로운 연유들 중 가장 까미노에 어울릴 하나를 꼽으라면 '사랑'을 택하고 싶다. 이 길은 야고보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중세 이후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안치된 성 야고보의 유해를 보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몰려온 데서 기원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부활 예수의 명을 받아 야고보는 당시 세상의 끝이라던 스페인 갈라시아 지방에서 사랑을 전파했다. 꿈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의 뜻에 따라 기꺼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순교한 것 역시 예수가 가르친 하느님의 사랑을 확신해서였을 것이다.


까미노에서 조우하게 되는 건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들과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비단 거창한 인류애만 해당하겠는가! 각자 소중한 사적인 사랑의 연을 계속 이어가거나 끊어내기 위해서도 찾았을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을 어찌 알았는지 오늘따라 감미로운 사랑을 주제로 한 명곡들이 꽤 흘러나온다. 이중 세 곡이 유독 귀에 걸린다. 짝사랑하는 여인과 맺어져 남 부러움 속에 결혼에 골인하는 설렘 가득한 상상을 누구나 한 번쯤 간절하게 꿈꿨을 것이다. ‘Just my imagination(Running away with me(389위)’에서 The Temptations가 짝사랑이 가져온 환상의 뫼비우스를 멋지게 블루지한 소울로 표현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눈이 먼가? Elvis Presley는 특유의 유려한 저음으로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듯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사랑을 노래했다. Can’t help falling in love(394위)는 그가 출연한 ‘블루 하와이’ O.S.T였다. 제작사와 소속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까지 수록할 것을 우겼다는 일설이 있다. 언제나 콘서트의 엔딩곡으로 불렀을 만큼 이 노래를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구미호처럼 사람을 홀리고 이성을 잃게 하는 마성의 사랑은 치명적인 독을 품는다. 한 입을 잘못 베어 먹으면 가슴 아린 걸 넘어 실연이란 죽음의 늪에 빠진다. 이와 대비되는 사랑이 있다. 풋사랑은 남몰래 주머니 속에서 호두알을 만지작거린 소나기의 주인공 소년처럼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소년기 첫사랑은 아련한 아픔에도 싱그러움이 넘쳐난다. Big Star의 ‘Thirteen(396위)’ 사춘기의 이런 애틋한 감정을 무던하게 그려냈다. 밴드의 리더인 알레스 칠튼이 20살 때 만들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네댓 곡의 사랑가 중 소싯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 노래에 마음이 간다.


Big Star - Thirteen(1972년, 396위)


  사랑을 말하지 않는 종교는 상상할 수 없다. 조물주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에 대한 내리사랑이든, 절대자가 약속한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인류가 서로 베푸는 사랑이든 간에. 조물주가 그렸을 세상은 박애의 세계일 것이다. 자신의 인격을 사랑하듯 신분과 인종, 종교, 국가를 초월해 인류를 사랑하자는 박애주의(博愛主義, Philanthropism)는 평등사상을 내포한다. 각종 사회 문화적 제약과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평등의 호혜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다움을 중시하고 인간 본성의 회복과 신이 아닌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강조하는 휴머니즘도 마땅히 박애주의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돌이키건대 나는 항상 행동보다 말을, 말보다 남들은 알 길 없는 속마음만 앞세웠다. 그래서 현각 스님이 그토록 멸시하는 ‘비정하고 비열하고 비겁하고 비굴하고 비루한 5비 잉간’이라 스스로를 폄하해 왔다. 사해동포주의를 보란 듯이 펼치지 않고서야 어찌 넓고 큰 사랑을 할 수 있겠는가! 비참하게도 내가 꿈꾸던 박애주의는 청춘을 거쳐 장년에 이르러 종잇장보다도 얇고 일천한 박애주의(簿愛主義, Thin lovism)로 걷잡을 수 없이 볼품없게 쪼그라들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부족한 나이지만 무슨 미련에선지 박애주의라는 이상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 중이다. 끊임없이 붉은 생명의 기운을 숨 가쁘게 뿜어대는 심장 구석진 한 곳에 누가 볼까 몰래 감춰놓고서는.    


  고결할 이상을 바짝 말라 뒤틀려진 박제로 만든 건 다름 아닌 과거의 나였다. 지금도 그다지 다르지 않게 살아간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겁이 많아서라거나 꿈꿨던 이상이 내게 너무 무거웠다는 대답은 비겁한 변명일 것이다. 좀 더 솔직해지자. 박애주의와 휴머니즘이 차지할 공간까지 ‘나’를 먼저 챙기고 ‘가족’을 허울 삼는 개인적 욕심이 독버섯처럼 퍼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욕의 짐을 제대로 내려놓지 못했다. 이제라도 욕심에 거슬러 맞서고 싶다. 미련토록 무거운 배낭을 매달고서도 당당히 까미노를 버텨내는 것처럼 말이다.


  무언가에 연연해 버리지 못하는 폐단은 서울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십 리터 배낭에 꼭 필요한 것만 챙긴다고 챙긴 게 구 킬로그램에 가까웠다. 한 번이라도 요긴하겠지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결과다. 걸으며 마실 1.5 리터 생수와 간식거리를 욱여넣으면 십일 킬로미터가 우습다. 욕심 가득한 혹부리 영감의 혹 마냥 배낭이 빵빵한 게 탐욕과 욕망으로 터져나가기 직전이다. 위태롭기 짝이 없다. 버리는 만큼 무게가 가벼워지고 여유공간이 생겨 단출한 배낭이 될 수 있건만 그러지 못했다. 내 마음처럼 배낭도 비우지 못해 잡동사니 번민들이 가득 차 있다.


저마다 무거운 짐을 메고 자신만의 까미노를 그려가는 순례자들. 이들은 무엇을 길 위에 버리고 가는 걸까? 산티아고로 가는 중에 만나는 길냥이들에 정이 간다.


  버려야 하는 건 내 마음과 배낭뿐이 아니다. 까미노에도 버려야 할 것들이 넘쳐 있다. 까미노야말로 쓸모없는 쓰레기 하치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방이 온통 주인에게서 버려진 쓸모없고 지저분한 오물덩어리 투성이다. 길가에 널려 있는 소 똥과 말들이 싸질러 놓은 배설물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 오는 모든 순례자들이 오랫동안 오장육부에 비릿하게 쌓아둔 좌절, 곪디 곪은 상처, 깨진 유리조각 같은 날카로운 원망, 너무 이글거려 스스로를 녹여낼 지경의 분노들을 마음의 행낭 속에 켜켜이 담아 두었다가 하나씩 꺼내 버린다. 마음의 짐이 허해져 공(空)이 생기는 만큼 까미노에는 고약한 냄새가 배어버린 감정의 색(色)이 넘쳐흐른다. 나는 나흐레 동안 무엇을 버렸을까?


  그러나 오욕과 칠정의 물구덩이로 변했을 까미노엔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정갈하고 청결게 해 줄 원동력이 있다. 카르마로부 생긴 먼지를 제대로 뒤집어쓴 영혼을 씻겨주는 장대비, 구린내 나는 오욕을 날려버릴 시원한 바람, 칠정에 먼 눈 마저 정화시키는 푸른 초원이 있다. 따스한 햇살로 온화하게 다가와 봉변에 처한 순례자에게 매직을 선사하는 까미노 천사들이 용의 눈을 더해준다. 까미노는 순례자들이 더럽힌 진흙탕에서 자라나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고결한 기품과 고상한 풍모의 아름답고 자비로운 자태를 은은히 뽐내는 연꽃을 피운다. 그리고선 하나 아까워하지 않고 다시 연꽃 한 점씩을 이들 손에 들려 보낸다. 진흙탕 속의 연꽃. 바로 까미노의 두 얼굴이다.


  어제가 5월 18일이었다. 사십사 년 전 권력에 눈먼 5비의 화신들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남도의 끝자락 빛고을에 지금도 치유되지 않는 비극을 마구 뿌려댔다. 독재자 프랑코 정권에 희생된 스페인 시민들을 기리는 기념물을 마주칠 때마다 그날의 광주가 떠올라 가슴 시렸다. 1970년 미국이 캄보디아를 침공했다. 베트남전이 확대되는 걸 반대하는 오하이오주 켄트 주립대학생들이 반전 시위를 벌였다. 전쟁을 지지한 주지사가 계엄령을 선포해 발포명령을 내렸다. 학생 네 명이 사망했고 아홉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전역에서 대학생 시위가 일어나 전국적인 휴교령이 내려졌다. 휴머니즘에 앞장서다 희생된 이들을 기리기 위해 Crosby, Stills, Nash and Young이 ‘Ohio(385위)’를 불렀다. 닐 영이 작사, 작곡했고 멤버들이 프로듀싱했다. 공교롭게 오월에 만들어진 이 노래의 병정놀이하듯 군인들이(tin soldiers) 총을 쏜다는 구절에서 쿠데타 세력이 명명했던 작전명 ‘충정작전:화려한 휴가’의 광기가 겹쳐진다. 가사 속 그녀는 계엄군에 희생된 산드라 슈어이다. 하늘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그녀와 붉은 꽃잎처럼 흩어져간 빛고을 애국시민들의 명복을 빈다.


오월의 노래 1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

묘비 없는 주검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은 목숨에 이 노래드리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이렇듯 봄이 가고 꽃피고 지도록

멀리 오월의 하늘 끝에 꽃바람 다하도록

해 기우는 풀숲가에 스몄던 넋이 살아

앙천에 눈매 되뜨는 이 짙은 오월이여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Crosby, Stills, Nash and Young - Ohio(1970년, 385위)
노래를 찾는 사람들 2 - 오월의 노래 1(1990년)


까미노 위로 그간 쌓인 감정의 골을 뱉어 비워내면 공의 자리에 연꽃을 피워낼 작은 용기를 내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까미노는 치유의 길이자 영혼의 안식처이다


이전 09화 [8일 차] 폭풍우 가득했던 젊음의 심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