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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Jun 29. 2024

[8일 차] 폭풍우 가득했던 젊음의 심연

I Believe I Can Fly - 일체유심조. 어디 한번 날아보자

8일 차 로그로뇨 – 나헤라


  까미노 위에 선 지 일주일이 지났다. 어제까지 160km를 걸었다. 기대수명 100세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순례 일수로는 낭랑 십팔 세, 걸은 거리로는 약년 20세를 갓 지난 나이다. 고 2에서 대학 2년생 정도에 해당한다. 내 학창 시절 때는 고교 일이 학년 전후에 사춘기를 겪었다. 십년 전에는 중2병이라 했는데 요즘은 초4병이라 부른다. 아이들이 꽤나 조숙해졌다. 어쨌든 인생으로 치면 까미노 여정이 이제  청년기에 막 들어선 시점이다.


   그 시절의 나를 돌이켜 본다. 당시에 어떤 미래를 그렸던가? 인생을 어떻게 여행하고 싶었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여러 가정하에 그려 봤었을 삶의 경로 대부분을 밟아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간 지나쳤던 궤적은 대개 예상치 못했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걸음이었다. 그나마 의도치 않게 얼추 맞춘 게 하나 있긴 하다. 겁이 많은 내가 스스로를 민중 속으로 통째로 내던질 용기를 쉽게 갖지 못할 거란 우려였다. 막연한 불안이 안타까운 현실로 꽃 피었다. 결코 이루어지길 바라지 않은 꿈이었을 텐데 말이다.


  고 3초에 전 학년 모든 교실마다 반정부 유인물을 작성해 몰래 배포한 적이 있다. 언론 통제가 극심했던 시대에 사회적 반향이 제법 컸다. 친구의 제보로 여름방학 직전 주모자가 나였음이 밝혀져 2학기 내내 곤욕을 치렀다. 전교 학생회 간부 자리에서 물러나 근신과 반성을 강요받았다. 어머니가 학생부로 불려 가시던 날, 당숙께서 나를 불러 앉혀  타이르셨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책임지지 못할 일을 했다. 앞으로 네가 책임질 수 있는 일만 조신히 행동해라.”


  작고하신 선친을 대신한 집안 어른 앞에서 차마 반발할 수 없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둔 친형은 너무 일찍 일어섰다고 했다. 결국 이 일로 네 생각과 진로가 바뀔지 모른다는 충고를 덧 붙이며.


“일찍 일어선 게 아니야. 그렇게 살지 않을 자신 있어” 내가 형한테 말한 다짐이자 희망이었다.


일찌감치 서두른 아침에 걷는 이 길은 부푼 꿈에 가득했던 청소년기 였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내 인생 줄기는 이때를 계기로 제법 달라졌던 것 같다. 촉망받는 동문회 장학생 중 드물게 최고학부 진학에 실패했다. 당시 받았던 정신적 압박을 핑계로 입시 준비를 등한시했던 결과다. 이런 나약하고 겁 많은 심성으로 어찌 큰일을 도모하리! 자존감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운동권을 기웃거리다 대안으로 선택한 야학 교사에 짐짓 위안을 삼았다. 학생들과 보낸 시간이 의미 있었을지라도 허탈감을 지울 수 없었다. 과학적 사회주의가 버거워져 몽상적 아나키즘 속에 나를 감췄다. 급기야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에 찌든 룸펜의 나락에서 발버둥 치던 청춘이었다. 냉정히 자평하자면 뒤틀려버린 물줄기를 되돌리기엔 너무 유치했고 무책임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에는 목적과 이유가 있다고 했다. 여행을 하며 무엇을 보거나 무언가를 깨닫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여행을 앞둔 여행자는 익숙지 않은 목적지가 불안하다. 그래서 사전에 이것저것 꼼꼼히 준비하려 애쓴다. 그런데 당초 계획했던 일정은 상당 부분 틀어지기 십상이다. 미리 공들일 필요가 없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니 상황이 닥치면 당황하지 말고 대처하라고 조언한다. 여행이란 원래 이런 거니까.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무 일 없이 목적지에 도달한 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돌아갈지언정 늦게라도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면야 그나마 다행이다. 가고자 했던 길에서 대책 없이 벗어나기 일쑤이다. 이런 게 범인들의 삶이다. 호랑이에 물려도 정신만 차리면 살 것을. 소싯적 나는 가야 할 항로에서 벗어나자 별빛 한 점 없는 오밤중에 세찬 비바람과 거친 풍랑에 휘청거리며 정처 없이 표류한 조각배에 불과했다. 폭풍우가 가득했던 젊음의 심연은 대학원에 진학해 소시민으로 회귀하는 걸 받아들인 연후에서야 점차 조금씩 가라앉았다. 새벽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아티클을 읽다가 친구 자취방에 기어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잠들기 전 솔리드의 '이 밤의 끝을 잡고'의 낯선 R&B 리듬에 위로를 받던 시절이었다.


황량하기만 청춘의 한 자락에 웃음을 지을 때도 있었다. 까미노의 화살표처럼 요동치는 젊음의 뱃머리에서 방향타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어떠했을까?


  웃기는 걸 넘어 주제파악을 못한 게 있다. 국내외 대중가요에 일자무식이다. 그런 내가 순례 중에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역사상 위대한 500대 명곡을 매일 몇 곡씩 나눠 듣는다. 그중 가슴에 와닿은 두어 곡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려니 상당히 버겁다. 아는 게 없어 눈동냥 귀동냥, 인터넷에서 발품 팔아 겨우 얘깃거리를 낚는다. 지금까지 소개한 노래들은 이렇게 얻어걸린 소재를 힘들게 엮은 거란걸 뒤늦게 고백하고 싶다. 아무튼 잠시나마 내 미래는 휘영청 밝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치기 어린 청춘의 초상을 떠올리니 The Carpenters가 불렀던 ‘We’ve only just begun(405위)'이 심금을 울린다. 달콤한 신혼의 꿈속에서 한없이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젊은 커플이 부럽기 짝이 없다. 마치 내게는 행복을 당연시했던 젊은 시절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듯이. 솜털같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팬들을 달래주던 캐런도 지나친 나르시시즘에 거식증에 걸렸던 건 아닐지 궁금하다.


The Carpenters - We've Only Just Begun(1970년, 405위)


  R. Kelly의 ‘I believe I can fly(406위)’도 한가득 소울과 여운을 준다. 기적은 어쩌면 자신의 내면 돌아보는데서 시작는 건지 모른다. 우선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는 원하는 대로 이룰 수 있고 심지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믿는 초긍정이 필요하다. 스스로 용기를 다져야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다. 대학 2학년 2학기에 이 곡을 들을 수 있었다면 과연 All F를 면할 수 있었을까? 하늘을 날자고 했던 알 켈리는 정작 비행기가 무서워 배편을 이용하곤 했다고 한다. 일어나라고 그리 외치던 김광석이 서른 즈음에 허망하게 갈 줄은 또 누가 알았으랴!


R. Kelly - I Believe I Can Fly(1996년, 406위)


  산행 중에 경사가 극심한 깔딱 고개나 끝없어 보이는 아찔한 계단을 오를 때면 늘 후회를 한다. ‘왜 왔을까?, 얼마나 좋은 경치를 보겠다고 이렇게 생고생을 자처하나’는 때늦은 자책에 휩싸인다. 숨이 가쁘게 몰아쳐 온다. 허벅지와 종아리에 천근만근 부하가 걸린 다리가 저는 놔두고 몸만 가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순례길에 만난 무수히 많은 오르막 길에서 밭은 숨결에 즐거움이 한가득인 걸 깨달았다. 저 언덕 너머에는 어떤 아름답고 낯선 경치가 나를 맞이해 줄지 설렜기 때문이다. 언덕을 오르는 고행이 어느새 오묘히 만들어진 걸작의 예술품을 만난다는 환희로 다가섰다. 똑같은 언덕인데 마음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감정이 180도 다르다. 화엄경의 일체 유심조가 맞는가 보다. 세상만사 마음먹기 나름이요, 오죽하면 고절한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먹고 유학길을 포기했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일체유심조가 정말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걸 말하는 걸까? 누구나 마음먹은 대로 행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질곡이 티끌 한 점 없을 극락일 것이다. 일체유심조. 우주의 삼라만상이 오직 마음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은 고승이나 깨달을 깊은 뜻을 지녔다. 여기서의 마음이란 개인의 주관, 생각, 감정이 아니라 우주의 본성을 뜻한다. 심오한 본성이 만물을 만드니 마음이 곧 조물주이자 신이요 하늘이다. 일체유심조는 자기 자신을 자각해 깨달음을 얻는 부처가 될 수 있는 본성인 견성의 지경에 올라야 이해가 가능하다. 나 같은 이는 범접지 못할 경지다. 불가에서는 왜 마음, 즉 일원을 중시하는 걸까? 흙, 물, 불, 바람으로 이루어진 물질(사대)이 인연과 인과율(연기론)에 따라 여러 가지로 만들어지며 사라지는데 연기의 주체가 나이고 나의 주체가 곧 마음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연기에 따라 흩어지는 물질이야말로 헛된 것에 불과하니 오직 마음이 중심이다.  무기력했던 청춘의 나날에 불가 서적을 접했으면 위로를 받았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많이 걷는다. 오늘 목적지는 나헤라다. 지도에 표시된 거리는 29km. 아마 30km를 넘게 걸을 것이다. 어제처럼 동키를 신청했다. 연이틀 많이 걷게끔 일정을 짠 이유는 부르고스까지 숙소 여건이 괜찮은 마을들에서 머물기 위해서이다. 게다가 로그로뇨 1박과 일 평균 20km 초반의 이동거리를 동시에 만족시키도록 일정을 짜기가 어려웠다. 일종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먼 거리를 걸어야 해서 평소보다 출발을 앞당겼다. 6시 기상, 어제 만난 일행들이 준비한 컵라면을 먹고 7시에 출발했다.


  이틀 동안은 동키를 이용해 장거리 일정에 도움을 받았다. 내일부터는 다시 내 짐을 온전히 짊어지고 길을 나서야 한다. 어느 누가 부르고뉴까지의 일정을 이렇게 짜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까미노 일정을 선택한 100% 내 몫이다.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일찌감치 경고를 해주었던 당숙과 친형은 인생의 조언자일 뿐이었다. 주변의 냉정한 충고에도 근자감으로 인생의 무게를 가볍게 봤던 나만이 그간 걸었던 지난날을 책임져야 한다. 까미노에서 선택한 코스와 내가 짊어진 배낭처럼 인생을 걷는 길에서 만날 선택과 그로 따른 책임은 동반자와 나눌 수 없는 오롯이 내가 짊어질 업인 것이다.


메마르고 막막한 길을 꾸역꾸역 걷다 보면 젖과 꿀이 가득한 목적지에 다달을 수 있는 게 인생이다. 화살표를 잃지만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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