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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차] 까미노의 두 얼굴

Ohio -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 향기 머무는 5월 18일

by 여운설

2023년 5월 19일 나헤라 -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 20.7km


옆 침대 벨기에 아주머니가 이른 새벽부터 부스럭댄다. 신경이 쓰여 잠이 달아났다. 정신은 말똥말똥, 눈만 감은 채 알람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6시 정각에 익숙한 멜로디가 요란을 떤다. 누나 거다. 알람을 빨리 끄시라 재촉했다. 알베르게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는 노이로제에 걸린 탓이다. 우리만 욕 먹으면 그만이다. 어글리 코리안 이미지에 일조할까 봐 그랬다. 새벽부터 헤드랜턴을 켜고 부산 떠는 한국인의 무례한 사례가 심심치 않게 회자된다. 막상 겪어보니 잠든 투숙객을 배려하지 않는 건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에티켓이 부족한 건 결국 국적이 아닌 개인의 인성 문제였다.


짐 싸는데 30분이나 소요됐다. 일각이 여삼추라 하니 6년의 시간을 허송세월한 것과 진배없다. 하루 24시간 중 귀하지 않은 시간이 어디 있으랴마는, 아침 시간은 정말 소중하다. 십여 초 상관에 근사한 일출을 놓치거나 선선한 오전에 가급적 많이 걸어 놔야 뜨거운 오후가 편하다. 단 일각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데 시작부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기분이 영 마뜩잖다. 게으른 축에 속한 내가 먼 이국 땅에서 이리도 유난을 떤다. 일생을 헛되이 살아온 베짱이가 까미노에 와서야 시간의 소중함을 체감했기 때문일 게다.


매일 2,30km를 일주일 정도 걸으면 걷는 것에 적응한다. 지금이 그럴 시기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제법 단단해졌다. 안 지던 짐을 메어 승모근 주변에 생긴 근육통은 적당히 풀려간다. 육체가 순례를 그럭저럭 받아들이자 까미노의 하루 일과가 꽤 단조로워진다. 기상후 간단히 세면을 하고 입은 옷 그대로 출발한다. 알베르게나 적당한 바에서 간단히 요기를 해결한다. 한두 시간 걷다 쉬다를 반복하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체크인하고 샤워한 후에 늦은 점심을 챙긴다. 뺄래 등 개인 정비와 여가를 즐기다가 허기가 지면 저녁을 먹는다. 9시 넘어서 이른 잠을 청한다. 이상이다. 극단적으로 축약하면 일어나 걷고 먹고 씻고 잔다. 달랑 한 문장으로 요약 가능하다.


나헤라 성당 포토존을 지나 중심지를 빠져나오면 여물기 시작한 밀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적당한 마을 카페에서 들어가 허기를 달랜다. 누나는 저녁중인 매형과 통화를 했다.


이처럼 단순하고 따분하기 짝이 없을 순례 일상이 뭐 그리 좋다고 자청해 나서는지 궁금하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까미노 일과는 실은 아름다운 여백이 가득한 빈 도화지다. 누군가는 연필로 그린 소묘처럼 담백한 일상을 보낸다. 혼자 조용히 걸어 숙소에 도착해 침대에서 소일거리 하거나 내면의 나를 찾아 침잠한다. 어떤 이는 정성스러운 데생 위로 정감 넘치는 수채화를 알차게 그려낸다. 까미노에서 만난 인연들을 구태여 밀어내지 않고 교감을 나눈다. 지나치는 경관은 한 눈 가득히 담아두며 들르는 마을과 도시마다 명소들을 꼬박 챙긴다. MBTI의 ‘EExtraversion’ 스타일들은 붓 자국에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강렬한 유화이겠다. 이들은 역동적인 일과에 눈코 뜰 새 없다. 걷다 만난 동반자들과 격의없이 친해지는 건 기본, 밤늦도록 술잔을 주고받는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게 놀다가 알베르게 문이 닫히는 밤 10시가 되기 무섭게 헐레벌떡 뛰어들어 온다.


사람들이 까미노에 녹아 드는 정도는 제각기 상이하다. 하지만 누구나 반드시 경험하는 것들이 있다. 우선 인연을 맺을 순례자들이 가득하다. 지나는 마을마다 주민들의 오랜 역사와 문화가 넘쳐난다. 무엇보다 종착지 끝에 대성당과 이 길을 열어 준 야고보가 있다. 마음을 굳게 먹으면 이방인들에게 언어는 더 이상 제약거리가 아니다.


길 위에서 접하는 이런 요소들이 각자의 사정에 따라 버무려져 이 길을 찾게 된 사연을 돌이켜 보게끔 한다. 종교적인 신념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거나 연인과 헤어진 상실감에서, 지난날을 되새기며 나를 돌아보고 싶어서, 앞으로 살아갈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등등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천차만별의 동기를 가진 사람들이 까미노에서 매일 자신만의 그림을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그려댄다.


이토록 다채로운 연유 중에, 까미노와 가장 잘 어울릴 하나는 두말할 나위 없이 사랑이라 하겠다. 이 길은 야고보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야고보는 세상의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부활 예수의 명을 기꺼이 받든다. 그리스도의 명에 따라 당시 세상의 끝이라 불리운 스페인 갈리시아Galicia 지방에서 사랑을 전파했다. 꿈속에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순교에 임한 것도 하느님의 사랑을 확신한 때문일 것이다. 까미노는 중세 이후로 순례자들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안치된 성 야고보의 유해를 보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몰려온 데서 기원했다. 비단 종교적 사랑이나 거창한 인류애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개인적인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거나 끊어내기 위해 이 길을 찾는다.


까미노에서 조우하게 되는 건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들과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이런 내 생각을 어찌 알았는지 오늘따라 감미로운 사랑을 주제로 한 명곡들이 꽤 흘러나온다. 이중 세 곡이 관심을 끈다. 누구나 한 번쯤 짝사랑하는 여인과 맺어 지기는 꿈을 꿨을 것이다. 주위의 부러움 속에 결혼에 골인하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감미롭다. The Temptations는 ‘Just my imagination(Running away with me(389위)’에서 짝사랑이 가져온 환상의 뫼비우스를 블루지한 소울로 멋들어지게 표현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눈이 먼가? Elvis Presley는 특유의 유려한 저음으로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듯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사랑을 노래했다. ‘Can’t help falling in love(394위)’는 그가 출연한 ‘블루 하와이(1961년)’의 O.S.T.였다. 제작사와 소속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까지 수록할 것을 우겼다는 일설이 있다. 언제나 콘서트의 엔딩곡으로 불렀을 만큼 이 노래를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마성의 사랑은 치명적이다. 구미호처럼 사람을 홀리고 이성을 잃게 하는 독을 품는다. 독사랑을 한 입을 잘못 베어 먹으면 가슴 아린 걸 넘어 실연이란 죽음의 늪에 빠진다. 이와 대비되는 사랑이 있다. 풋사랑은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 준다. 남몰래 주머니 속에서 호두알을 만지작거린 소나기의 주인공처럼 소년기 첫사랑은 아련한 아픔에도 싱그러움이 넘쳐난다. Big Star의 ‘Thirteen(396위)’은 사춘기의 이런 애틋한 감정을 무던하게 그려냈다. 밴드의 리더인 알레스 칠튼이 20살 때 만들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네댓 곡의 사랑가 중 소싯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 노래에 마음이 간다.


Big Star - Thirteen(1972년, 396위)


사랑을 말하지 않는 종교는 상상하기 어렵다. 조물주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에 대한 내리사랑이든, 절대자가 약속한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인류가 서로 베푸는 사랑이든 간에 말이다. 조물주가 그렸을 세상은 박애가 흘러 넘치는 세계일 것이다. 자신의 인격을 사랑하듯 신분과 인종, 종교, 국가를 초월해 인류를 사랑하자는 박애주의(博愛主義, Philanthropism)는 평등사상을 내포한다. 각종 사회 문화적 제약과 굴레를 벗어나려면 평등의 호혜가 전제되어야 한다. 인간다움을 중시하고 인간 본성의 회복과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강조하는 휴머니즘도 마땅히 박애주의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돌이켜 보건대 나는 항상 행동보다 말을, 말보다 남들은 알 길 없는 속마음만 앞세웠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현각 스님이 그토록 멸시하는 ‘비정하고 비열하고 비겁하고 비굴하고 비루한 5非 잉간’이라 폄하해 왔다. 사해동포주의를 보란 듯이 펼치지 않고서 어찌 넓고 큰 사랑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비참하게도 내가 꿈꾸던 박애주의는 청춘을 거쳐 장년에 이르는 사이 종잇장보다도 얇고 일천한 박애주의(簿愛主義, Thin lovism)로 볼품없이 쪼그라들었다. 그럼에도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박애주의라는 이상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있다. 붉은 생명의 기운이 간신히 헐떡이는 심장 구석진 한 곳에 누가 볼세라 몰래 감춰놓고서.


고결할 이상을 바짝 말라 뒤틀린 박제로 만든 건 다름 아닌 과거의 나였다. 지금도 여전히 박제인 채로 살아간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겁이 많아서 혹은 꿈꿨던 이상을 감당치 어려워서라는 대답은 비겁한 변명이겠다. 좀 더 솔직해지자. 박애주의와 휴머니즘이 자리할 공간까지 ‘나’를 먼저 챙기고 ‘가족’을 허울 삼는 욕망이 독버섯처럼 피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욕의 짐을 버리지 못했다. 이제라도 욕심에 거슬러 맞서고 싶다. 무거운 배낭에 허우적대면서도 당당히 까미노를 버텨내는 것처럼 말이다.


과감히 버리지 못하는 폐단은 서울을 떠날 때도 여전했다. 40리터 배낭을 채우다 보니 9kg에 육박했다. 한 번이라도 요긴하겠지 하며 미련을 못 버린 결과다. 1.5리터 생수와 간식거리를 욱여넣으면 11kg이 우습다. 빵빵하게 부푼 혹부리 영감의 혹이 따로 없다. 배낭에 가득 담은 탐욕과 욕망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버리는 만큼 가벼워지고 단출한 배낭이 될 수 있건만 그러지 못했다. 내 마음도 배낭처럼 잡동사니 번민들이 가득 차 있다.


저마다 무거운 짐을 메고 자신만의 까미노를 그려가는 순례자들. 이들은 무엇을 길 위에 버리고 가는 걸까? 산티아고로 가는 중에 만나는 길냥이들에 정이 간다.


버릴 건 내 마음과 배낭의 짐만이 아니다. 까미노 역시 버릴 것들로 넘쳐 난다. 까미노야말로 쓰레기 하치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방이 온통 주인에게서 버려진 쓸모없고 지저분한 오물투성이다. 길가에 널린 소 똥과 말들이 싸지른 배설물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 오는 순례자들이 오랫동안 오장육부에 담아둔 마음이다. 비릿하게 삭은 좌절, 곪디 곪은 상처, 깨진 유리조각 같은 날카로운 원망, 스스로를 녹여낼 지경으로 이글거리는 분노를 마음속 행낭에 켜켜이 담아 두었다가 하나씩 꺼내 버린다. 마음속 짐을 비워 공(空)이 생겨난 만큼 까미노에 향기 고약한 감정의 색(色)이 넘쳐흐른다. 나는 나흐레 동안 무엇을 버렸을까?


그러나 오욕과 칠정의 물구덩이로 변한 까미노를 정갈히 쓸어주는 청소부가 있다. 카르마로 인한 먼지를 옴팡지게 뒤집어쓴 영혼을 씻겨주는 장대비, 구린내 나는 오욕을 날려버릴 시원한 바람, 칠정에 먼 눈을 정화시키는 푸른 초원이 그들이다. 따스한 햇살로 살포시 다가와 봉변에 처한 순례자에게 매직을 선사하는 까미노 천사들이 용의 눈을 더한다. 까미노는 순례자들이 더럽힌 진흙탕에서 자라나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시련 끝내 고결한 기품과 고상한 풍모의 아름답고 자비로운 자태를 은은히 뽐내는 연꽃을 피운다. 고절孤節한 연꽃을 아까워하지 않고 한 점씩 순례자들 손에 들려 보낸다. 진흙탕 속의 연꽃. 바로 까미노의 두 얼굴이다.


어제는 5월 18일이었다. 44년 전 권력에 눈먼 5非의 화신들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남도의 끝자락 빛고을에 닥친 비극은 오늘날까지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았다. 프랑코 독재정권에 희생된 스페인 시민들을 기리는 기념물을 마주칠 때마다 그날의 광주가 떠올라 가슴 시렸다. 1970년 미국이 캄보디아를 침공했다. 베트남전 확산을 반대하는 오하이오주 켄트 주립대학생들이 반전 시위에 나섰다. 전쟁을 지지한 주지사가 계엄령을 선포해 발포명령을 내렸다. 학생 네 명이 사망했고 아홉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전역에서 대학생 시위가 일어나 전국적인 휴교령이 내려졌다. 휴머니즘에 앞장서다 희생된 이들을 기리기 위해 Crosby, Stills, Nash and Young이 ‘Ohio(385위)’를 불렀다. 공교롭게도 5월에 닐 영이 작사, 작곡했고 멤버들이 프로듀싱했다. 병정놀이하듯 군인들이tin soldiers 총을 쏜다는 노랫말에서 신군부 쿠데타 세력이 명명한 작전명 ‘화려한 휴가’의 광기가 겹쳐진다. 가사 속의 그녀는 계엄군에 희생된 산드라 슈어이다. 하늘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그녀와 붉은 꽃잎처럼 흩어져간 빛고을 애국시민들의 명복을 빈다.


오월의 노래 1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

묘비 없는 주검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은 목숨에 이 노래드리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이렇듯 봄이 가고 꽃피고 지도록

멀리 오월의 하늘 끝에 꽃바람 다하도록

해 기우는 풀숲가에 스몄던 넋이 살아

앙천에 눈매 되뜨는 이 짙은 오월이여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Crosby, Stills, Nash and Young - Ohio(1970년, 385위)
노래를 찾는 사람들 2 - 오월의 노래 1(1990년)


까미노 위로 그간 쌓인 감정의 골을 뱉어 비워내면 공의 자리에 연꽃을 피워낼 작은 용기를 내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까미노는 치유의 길이자 영혼의 안식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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