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봄날
내가 사는 일 드 프랑스 (île-de-France 파리를 포함한 근교 지방)는 북동쪽 대륙성 기후가 내려오는 날을 제외하면 겨울이라도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서쪽 오세앙 (Océan 대서양)에서 몰고 오는 구름과 겨울비가 자주 내린다. 따라서 겨울정원은 오직 자라기만 멈추었을 뿐 파란 잔디와 여러해살이 민들레 등은 사계절 잔인하게도 푸르디푸르다. 이 성장을 중단했던 민들레가 긴 겨울 동안 땅에 바짝 붙어있더니 이른 봄 냄새를 맡고서는 서둘러 꽃을 피우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며칠째 집 뜰안에서 민들레를 캐서 먹고 있다.
초봄의 민들레는 건강에 해로운 것은 거의 없고 이로운 게 많다니, 이렇게 지천에 너부러져 있는 걸 거절할 수가 없었다. 잔디보다 민들레가 더 많은 게 눈에 낀 눈곱 마냥 거슬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철이라 신선한 유기농 채소를 눈앞에 두고서 못 본 듯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이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씁쓸한 맛이 강하여 먹기도 힘들 것이라 서둘러 매일같이 캐고 있는데 이것이 씻는 거까지 더하면 일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 왜냐하면 이파리도 몸에 좋지만 뿌리는 더 좋다 하여 뿌리까지 안 캘 수가 없는 터라, 기어이 뿌리까지 캔다는 것은 이파리만 자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된다. 더구나 뿌리를 씻을 때 힘듦은 머리가 핑 돌 정도로 짜증 나는 일이다. 따라서 이 소소할 것 같은 일이 이렇게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하면서 강한 집념인지 집착인지를 사로잡게도 한다. 또 나에게 다른 부작용을 안겨다 준다는 걸 깨달으면서도 결코 중단하거나 포기할 용기가 아직은 없다.
그러나 이 양면성 앞에서 자포자기가 아니라면 절제심을 발휘하는 결단력이 필요한 시점에는 도달했다.
지불레 엉 막스(Giboulée en Mars, 3월에 내리는 여우비로 우박을 동반한 소낙비)가 2주 동안 어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왔다. 비가 한차례 내린 후에 활짝 나오는 햇빛은 투명하고 맑아서 더 아름답다며, 3월의 지불레를 좋아하는 A도 있지만 나는 이런 변덕스러운 날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늘의 공기는 봄날이다.
봄에 가장 먼저 피는 크로쿠스와 수선화 홍매화 개나리 목련꽃들이 연달아 피어난다. 겨울 동안 혼혼한 어둠에 묻혀 지내던 나는 햇살을 받고 싶어 작은 주머니칼과 바구니를 들고 정원으로 나섰지만 습기를 가득 품은 땅기운이 아직도 차다.
무른 땅이라 칼끝이 민들레 뿌리 쪽으로 잘 빠져든다. 하지만 그 끝은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숙이 박힌 뿌리를 온전하게 캔다는 것은 무리다. 단지 나는 칼끝이 가는 곳까지만 따라갈 뿐이다.
너무 오랫동안 습한 땅을 밟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더니 냉기가 몸속에 기어들어 내장을 뒤집어 놓는다. 손발은 싸늘하고 속은 메스껍고 눈이 침침해지면서 띵하게 머리까지 어지럽다.
그래도 하던 일을 마무리 하자는 내 머리와 그만 멈춰라고 적신호를 보내는 몸이 충돌을 한다. 이렇게 한바탕 이성과 감성이 옥신각신한 끝에 어떤 연유에서인지 허리를 펴고 일어서서 집안으로 들어오면, 그로부터는 누워서 지내야 하는 시간이 더 길다.
그래도 나는 새들이 노래하고 꽃과 나무들이 관현악을 만들어, 봄의 오페라가 열리는 자연 속에서 남편 A가 좋아하고 내 건강을 위해서 민들레를 캐는 순간만큼은 즐겁다. 때로는 어린 시절 사촌동생과 시골 양지바른 언덕을 돌며 쑥 캐던 시절도, 수북이 쌓여가는 쑥 바구니를 비교하며 시샘하던 일도, 아련한 봄날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해서 좋다.
나는 A와 릴레이로 꽃봉오리 맺은 민들레를 박박 솔로 문질러 씻어 몇 번의 헹구기를 거친 다음, 약간의 소금과 몇 방울의 식초를 떨어드린 찬물에 민들레가 잠기도록 담가 둔다. 한두 시간이 지난 후 물기 제거용 샐러드 통에 넣어 돌리면 민들레는 파릇파릇 생기를 띠고 일어선다. 절반은 나를 위한 요리로 벌꿀과 발자믹 식초를 곁들인 고추장 양념에 무치고, 나머지 절반은 A를 위해 날것으로 남겨둔다. A는 생채에 올리브유만 살짝 뿌려서 먹는 걸 좋아한다. 이렇게 우리는 식단에서도 두 다른 문화가 언제나 일상처럼 공존한다.
비가 자주 내린 덕분으로 적절하게 거슬리지는 않을 정도 품은 쓴맛이 민들레의 고유한 맛까지 잃지 않을 정도라 아주 좋다. 이 적당한 쓴맛이 되레 입맛을 돋워, 내가 매일 민들레를 캐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드는 마약 같은 효력마저 담겨있다.
우리는 오늘도 한통의 민들레를 씻어 놓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민들레에 빠져든 우리의 봄 식단에 며칠째 냉장고 안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배추와 시금치는 언제쯤 이 식탁에 올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