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채비를 하다

내가 채소밭을 시작한 이야기

by 다나 김선자



봄볕이 좋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좀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올 텃밭 농사 채비를 했다. 작년 농사를 끝내고 겨울 내내 덮어 두었던 짙은 밤색 방수 비닐천을 벗겨내어 보관한 씨앗이라도 뿌려 볼까 하여 10평 남짓한 땅을 괭이로 갈아엎었다.


코비 19(covid 19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내가 가는 트뤼포(Truffaut 식물원 이름)나 자르딜란드(Jardiland 식물원 이름) 식물원이 모두 문을 닫아 어디에서도 모종은 살 수가 없다. 혹시 금방 문을 열지 않을까 기다렸으나 기척은커녕 이 전시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련 지도 모르겠다.

해마다 내가 심는 모종은 정해져 있다. 감자나 고구마 등 한해살이 뿌리식물은 이 좁은 땅에서 엄두도 낼 수 없고 단지 매일같이 수확해서 먹을 수 있는 제철 채소들이다. 토마토, 가지, 피망, 고추, 오이, 호박, 상치가 주 농사지만 여의하면 깻잎, 브로콜리, 푸른 콩, 쑥갓, 파, 배추를 간작해 심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모종은 말할 것도 없고 씨앗도 구할 수 없는 깻잎, 쑥갓, 얼갈이배추는 아무리 외국 살이 오래되었어도 잊지 못하는 내 고향식 밥상을 위해 한국 갈 때마다 씨앗 봉지들을 고이고이 옷가지 속에 끼워서 들고 온다.


나는 이 남은 몇몇 씨앗들을 뿌려 볼 생각이다.

씨를 뿌리고 싹트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애간장을 태우지만 새싹이 트서 하루하루 쑥쑥 자라는 모습 또한 재미가 솔솔 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모종을 사서 심어면 수확까지 절반 일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이때부터는 간간이 더붓 살이 잡풀만 뽑아주고 잊지 않고 물만 주면 제 알아서 잘 자란다.


내가 텃밭 농사를 처음 짓기 시작한 것은 2012년으로 기억한다. 우리가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푸투나 섬에 살 때다.

그곳은 지구 끝 외딴섬으로 사이클론 (cyclone 남반구 태풍)에 한쪽 귀퉁이가 매몰되어 끊어진 허리띠 같은 유일한 길에, 세 개의 슈퍼마켓과 민박집 수준인 호텔 두 개, 그리고 각각 하나씩 항공 티켓 판매소와 디스코텍 및 주유소를 제외하면, 그야말로 어떤 유흥거리도 경제적 소비할 곳 없는 아주 작은 프랑스 해외 령이다. 타이티 섬이나 뉴 칼레도니아 섬처럼 크지도 않고 관광지는 더구나 아니라 커피점, 서점, 영화관은 먼 나라 이야기로 원초적인 그곳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

슈퍼마켓의 모든 물품은 육지에서 들어와 그 값이 파리보다 적어도 2배 많게는 3배로 비쌌고 한 달에 한번 들어오는 물류 선박은 뉴질랜드산 소고기와 키위, 치즈, 중국산 쌀 그리고 프랑스로부터 오는 치즈, 포도주를 포함한 각종 음료수와 식생활용품들이다. 당연히 한정된 종류의 과일과 채소는 시들시들 생기 없이 컨테이너 선박 안에서 부분적 썩거나 긴 여행으로 쪼글쪼글 늙고 있는 게 다반사다.

당연지사 주 고객은 땅도 없는 우리같이 본국에서 들어간 일시적 거주자들이며 토지 거래가 금지된 부족 공동체 원주민들은, 씨족끼리 분배된 땅에서 자란 토란, 마니옥*, 마, 프리 아 빵*, 야채 바나나*가 주식으로 푸른 채소는 거의 먹지 않는다. 그리고 집집마다 키우는 돼지와 닭 바다에서 잡은 생선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시장 경제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마니옥 manioc : 카사바라고 부르는 뿌리식물

프리 아 빵 fruit à pain : 감자 또는 빵 맛이 나는 열대나무에서 빵처럼 둥글게 자란 열매

야채 바나나 : 단맛이 없어 삶아서 주식으로 먹는 바나나


따라서 그들에게 채소나 과일 재배는 자신들 삶과 전연 무관한 것이다.

가끔 푸투나 원주민들은 밤중에 활동하는 랑구스트*나 크라브 드 코코디에*를 잡아 파파라니*들과 물물교환을 하거나 종종 파는 경우도 있지만 신선한 특산물을 무시로 살 수 있는 곳은 없다.

우리의 거주 남은 절반 2년은 현지 태생으로 누메아(뉴 칼레도니아 수도)에서 자란 여성과 결혼한 프랑스 남성이 채소 재배로 주문 판매를 시작했지만 이 또한 아무 날 살 수도 없고 느린 동작으로는 구경조차 어림없다.


랑구스트 langouste : 랍스터

크라브 드 코코디에 crabe de cocotier : 야자 집게

파파라니 : 프랑스 본국에서 들어간 백인들을 일컬음


이렇듯 자본시장 경제력 없이도 프랑스 본국의 지원 아래, 원시적 옛 방식을 고수하여 살아가는 그곳에서 우리 또한 자급자족을 않은 채 신선한 야채를 보기란 열대지방 하늘에 눈 내리기 만큼 어렵고, 사막에서 오아시스, 태평양 한가운데서 생명수 찾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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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는 먼저 온 파파라니들 처럼 스스로 사는 법을 터득하여 세든 집 드넓은 마당에 바다를 배경으로 내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이후, 채소만큼은 충분히 먹고 남아 친구나 이웃들과 물물교환도 가능할 정도 진전되었다. 가령 아랫집 토착민 마가렛트가 들고 온 토란, 마니옥 대신 나는 그들이 자주 먹지 못하는 오이나 토마토와 교환하기도 수확이 많을 때는 같은 처지 파파라니 친구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었다.

햇빛과 강수량이 풍부한 열대 기후에서 사시 장청 무럭무럭 자라는 채소들, 그러나 호박, 깻잎, 시금치만큼은 매번 낙공을 거듭하였다. 나는 전문 농사꾼이 아닌 탓에, 그 원인을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 다만 짐작하건대 찌는듯한 증염과 강우량 때문이라고만 추측할 뿐이다.

호박은 수정해줄 벌이 없었다. 육지와 아득히 먼 외딴섬까지 벌이 날아들 수가 없다. 따라서 유일한 방법으로 정받이가 있으나, 겨우 한 두 포기 심은 호박에서 암, 수꽃이 동시에 피어나기도 귀할 판에, 물폭탄 같은 빗줄기가 내려쳐 호박꽃이 활짝 피기도 전에 번번이 문드러지기 일수였다. 나는 결국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내 능력 밖임을 깨닫고는, 아예 심기를 포기했었다.

모종을 살수도 마땅히 파는 곳 없는, 지구 반대편 붉은 이토 땅에서 씨앗을 뿌려 모종을 만들기까지 그 얼마나 긴 시간과 많은 시행착오를 했는지 모른다.

파종한 씨앗들은 열대우림 지방 특유의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물에 뒤엉켜 바다로 갔는지 산으로 달아났는지 싹튼다는 기별 없어, 황망히 씨앗을 원망하기도 했다. 또한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꼭두새벽부터 이웃 원주민 닭들이 달려와 파종한 땅을 모조리 뒤엎어 버린 것도 모르고 하염없이 싹트기를 기다리기도 했었다.

이토록 나지의 맨땅에서 애써 키운 신선한 야채를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는 행복감을 어찌 값으로 따질 수 있으며, 이 엄청난 맛은 직접 겪고 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완전 무공해 유기농 식품에 내 노력 대가의 땀 맛!


그렇게 내 텃밭에서 배움의 싹이 트고 열매가 맺을 무렵 우리는 본국으로 돌아왔다.

프랑스로 돌아온 나는 푸투나 섬에서 배운 실력을 소심 없이 발휘하여 정원 한편 다섯여섯 평 남짓 자그마한 텃밭을 시작했다. 이 문명의 나라에서 텃밭 가꾸기란 모종을 사서 심으니 시간 단축은 물론, 이처럼 편리하고 쉬운 나머지 다 차려놓은 밥상에 앉은 격이었다.


4월에 모종 심기를 하면 6월에 가장 먼저 자란 상치부터 먹기 시작하여 여름에는 호박, 고추, 가지, 토마토를 가을까지 차례대로 식탁에 올린다. 수확이 한창 절정기 접어들어서는 우리 두 식구 먹기가 넘치고 벅차 옆집, 친구, 시댁으로 두루두루 소소한 인정을 베푸는가 하면, 그럼에도 남는 것은 썰어서 냉동고에 넣거나 말리기를, 장조림도 담근다. 이렇게 마련된 보관용 식품들은 초겨울까지 거뜬히 먹을 수 있다.

해마다 한 평씩 늘어나 10평가량 땅에서 거둔 수확물은 여러 사람들을 즐겁게도 하지만 매일같이 우리 식탁에 올라와 파릇파릇 빛나면서 제 역할을 다한다.

각 채소마다 개별적 특유하고 풍부한 맛부터 일구는 이야기,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러 소멸되었거나 현존하는 다양한 식물 종류를 분석하는 즐거움도 준다. 기후와 땅 차이 한국 밥상과 프랑스 채소에 따라 요리법을 논하고, 유기농과 아님을 건강 비결까지 비교 분석, 이 풍성한 화젯거리를 매일매일 밥상에 함께 올려, 먹고 즐길 수 있는 행복도 안겨 준다.

텃밭이 유지되는 동안 아침동이 터 햇살을 살뜰히 받기 전에, 나는 일어나자마자 바구니를 들고 점심식단에 올릴 신선한 채소부터 거두어 놓는다. 그리고 한낮에 햇살 좋은 남쪽 테라스 야자나무, 무화과 아래 점심상을 차리는 날은 무릉도원의 자연인이 따로 없다. 가끔 어린 양고기를 직접 지핀 숯불에 굽고, 아침에 거둬놓은 생생한 상치와 깻잎쌈을 싸서 토마토 샐러드와 먹는 날은 금상첨화, 지상 낙원, 낙토가 따로 없다. 거기다 적당히 숨 고른 적포도주 한잔을 곁들인다면...!


이렇게 몇 년째 이어져 온 텃밭 가꾸기는 정원의 첫 잔디 깎을 시점부터, 땅 일구어 수확까지, 해마다 없어서는 안 될 내 작은 일상의 중요한 과업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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