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없습니다. 육아 철학 따윈.
참 이상하다. 남들은 매일 자신의 아이를 온몸으로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 다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눈물 훔치기바쁜데 나는 왜 이렇게도 힘이 들까. 차마 힘들다는 말 한마디 쉽사리 입 밖으로 내뱉을 수도 없다. 그랬다간 다들 모성애가 없는 엄마라고 나를 물고 뜯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은 8월의 어느 날. 가만히 있어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작은 방 한편에는 별 모양의 취침 등이 캄캄한 방안을 아주 조금 밝히고 있었고 오래된 벽걸이 에어컨은 나도 더워 죽겠다는 듯 윙윙거리며 힘겹게 돌아가고 있었다. 에어컨 소리를 제외하면 적막하기 그지없는, 그야말로 작은 상자 속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았다.
며칠 전, 내 아이랍시고 세상에 나온 이 작은 아이는 10분 넘게 자지러지게 울고 있다. 아니 20분 째 인가 30분 째 인가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건 나는 지금 이 소리가 너무너무 듣기 싫다는 것. 아이를 안고 있는 내 팔의 힘을 빼버리면 될까? 잠깐 생각해 보았다. 아니 솔직히 진심으로 깊이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들 울음이 그칠까? 남편은 지금 집에 없다.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피신을 간 건지 아니면 자기 말마따나 출장을 간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친정은 차로 2시간 거리라 한걸음에 달려와 주실 수 없고 시부모님은 일을 하신다. 아니지, 옆집에 사신다 해도 내 마음 편히 맡길 수가 있을까? 오히려 아이 우는소리에 깨셔서 ‘아직도 안 재우고 넌 대체 뭐하니?’ 집으로 달려오실까 걱정이다. 결국 나는 밤도 새벽도 아닌 이 시간에, 익숙하지 않은 자세와 피곤에 전 얼굴로 몇십 분째 아이를 안고서 이 작은 방 안을 끊임없이 서성이고 있다. 끝에서 끝까지 몇 발자국 되지도 않는 이 좁은 방 안에서. 내가 팔에 힘을 빼지 않아도 팔은 곧 빠져 버릴 것 같이 고통스럽지만 이제는 한 가지 생각뿐이다.
‘제발...제발, 잠 좀 자자.’
내 아이는 왜 이렇게도 예민할까. 많은 엄마들이 보던, 수면교육에 관한 책에 나와 있던 4가지 유형의 아이 중에서, 설마 내 아이는 아니겠지 하던 바로 그 유형! 예민한 아이, 그 아이가 내 아이. 글쎄, 난 그렇게 생각한다. 태교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물론 엄마의 성향도 어느 정도 반영되겠지만, 일단 태교의 영향으로 내 아이가 예민하다고 생각한다. 태교를 할 시기에 나는 굉장히 많은 변화들로 우울했었고 그 감정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었을 테니 아이가 불안하고 예민해 지지 않았을까. 일단 등센서 라고들 하는, 눕히기만 하면 깨는 그건 기본이고 등센서 + 각도센서 + 고도(?)센서였던 내 아이. 내 허리가 살짝 휘어 기대기 딱 좋을만한 자세로안아줘야 했고, 반드시 자리에서 서서 안고 있어야만 잤던 아이. 자는가 싶어 살짝 의자에 앉으면 귀신같이 깨던. (아, 힘들었어) 그런 센서들이 참 오래도 갔다. 잠귀도 밝아 부스럭 소리가 조금만 나도 반드시 깼다. 겨우재워놓고 살짝 나와 TV를 보면서도 아이가 깰까봐 조마조마, 불안불안. 가끔 밤에 안 깨고 3시간정도 자고 있으면 오늘 왜 이렇게 잘 자지? 싶기도 했던. 꿈도 어찌나 잘 꾸는지 “싫어~여기 있을 거야~!!!” 또박또박 잠꼬대도 했다.
예민한 아이들은 하루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 잘 각인돼서 밤에 종종 꿈으로 나타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예민한 아이여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이 한마디를 하면 곧 잘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어느 날 아침, 다른 아이 엄마가 “옷이 덥겠다.”라고 한마디 했는데 그게 기분이 상했는지 갑자기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예민한 아이일수록 아이의 마음 읽어주기가 꼭 필요한 것 같다.
근데 엄마도 사람인지라(마음을 막 읽어주다 보면 내가 지금 이 아이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태어난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매번 잘 토라지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을 읽어주다가도 막 속이 부글부글 , “ 네 마음대로 해 ! ” 라 고 소리치고 싶어진다.(‘네 마음대로 해.’라는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아이의 자율권이 보장되는 것이 아닌, 그저 부모의 화풀이일 뿐이니) 한 10번은 부글부글한 걸 삭히다가 가끔 한번 확 터져서 화를 내고 나면 나는 또 죄책감, 그러다 보면 다음엔 그러지 말자 자기반성.
얼마 전에 아이가 그림을 그렸는데 “엄마가 화가 난 거야.”라며 내 얼굴을 그린 그림을 보여줬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엄마 입장에선 ‘한 번 정도’ 화를 낸 거지만 그것이 아이 가슴에 콕콕 박힌다는 사실을 늘 생각하자.
최근에 읽은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특별히 아픈
곳에 없는 아기가 땅에만 내려놓으면 이유없이 자꾸 울고
잠을 자지 못하면 고춧가루와 소금, 막거리를 한 상에 차려
삼신할매한테 정성스레 제를 올리라고. 진작 알았더라면
일단 시도라도 했을텐데 싶어 아쉬운 마음, 또르르.
*쌍갑포차라는 만화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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