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없습니다. 육아 철학 따윈.
아이를 키우면, 개월 수에 맞는 성장발달 사항들을 알게 된다. 내 아이가 어떤 부분에서는 다른 아이들보다 빠르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다른 아이들보다 느리다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되는데, 그것을 기준으로 엄마들은 빠르면 뿌듯해하고느리면 조급해한다. 내가조금 조급해한 부분은 아이의 이가 올라오는 시기였다. 아이의 이가 늦게 올라올수록 더 좋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아이 입 속은 어른처럼 꼼꼼히 양치하기 힘들다 보니 관리가 조금 소홀해 질 수 밖에 없어, 이가 빨리 올라온 만큼 충치도 빨리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우리 아이의 이가 처음으로 올라온 시기는 돌이 다 되었을 때였다. 그때까지 얼마나 조급해지던지. 빠른 아이는 백일 때 아랫니가 올라오기도 하고 보통 6개월~9개월쯤엔 대부분 첫니가 올라오기 때문에 돌이 다 되도록 이가 보이지 않는 것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다행히도 돌 쯤 처음으로 아랫니가 올라와서 ‘휴,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 아이가 느렸던 또다른 부분은 말을 하는 시기였다. 돌 때 엄마 아빠 맘마 뭐 이런 단어들을 뱉었다면 두 돌 다 되가는 약 22개월쯤엔 아이들의 말이 폭발하는 시기다. 근데 우리 아이는 폭발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내 탓일까? 아마도 중이염 때문이었던 것 같다. 중이염을 앓으면 아이에게는 웅웅- 울리는 듯한 소리로 들려 엄마의 말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고 그래서 아이의 언어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그 시기에 꽤 오랫동안 중이염을 앓았었다. 결국 어느 정도 중이염에 낫고 난 후, 아이가 약 28개월쯤 되었을 때 언어가 폭발했다. 폭발이라 함은 3단어 이상의 말을 하고 상황에 맞는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 말은 조금씩 늘어나면서 약 32~36개월 때 또 한번 확, 말이 늘었다.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만 36개월 때는 “엄마 걱정 하지마. 내가 많이 먹어서 얼른 클거야.”, “엄마 조금만 참아~ 조금만 기다려. 그러면~ 다 될 거야.”, “오늘 이이~집(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머리 예쁘게 묶어줬어~ 봐~ 이쁘지?” 등등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들도 집에 와서 곧 잘 말해줄 정도로 나와 어려움 없이 대화했다. 그러니 말이 조금 늦다고 해서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대신 엄마가 아이와 늘 재미있게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아이가 늦었던 발달사항이 있다면 또 빠른 발달사항도 있다. 걷기다. 9 개 월 에 걸었다. 걸었다는 건 어른처럼 뚜벅뚜벅 걸었다는 게 아니라, 혼자 아무것도 잡지 않고 서서 3발자국을 걸었다는 것. 그때가 9개월쯤. 그 이후부턴 걷고 넘어지고 걷고 넘어지고를 반복하다 약 18개월쯤 조금씩 뛰기 시작. 두 돌이 되기도 전에 “엄마 나 잡아봐~라 하하하하하” 를 하고 다녔다. 나는 보행기와 쏘서, 점퍼루 뭐 이런 거 없이 그냥 온 집안에 안전가드를 설치해 놓고 살았다. 처음엔 그걸 잡고 서 있기만 하더니 점점 그걸 잡고 옆으로 옆으로 이동, 어느 순간엔 아예 잡질 않고 가드 안을 휘젓고 다녔다. 아무래도 잡을게 있다 보니 잘 선게 아닐까 싶다. 육아서에 보면 아이 장기 발달에는 오히려 일찍 걷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앉고 기어 다니면서 장기가 자리 잡는 기간이 길어지면 신체 발달에는 더 좋다고.
내 친구의 부부 중에 우리 아이와 며칠 차이 안 나게 태어난 아들이 있는데 다들 걸어야 할 시기에 걷지 않아서 엄마 아빠가 굉장히 신경을 썼었다. 그런데 나는 그게 더 좋은 것일 수도 있으니 18개월까지는 신경을 너무 쓰지 말라고 했다(18개월이 넘어서서도 걷지 않는다면 병원을 찾아가보는 것이 좋다). 다행히 아이는 18개월 전에 걸었다. 아마도 그 아이는, 걷지 않고 앉아 있던 그 시간만큼 주변사물을 찬찬히 관찰하며 호기심을 키워 왔을 것이다. 앉고 기는 시간이 많을수록 사물에 대해서 더 깊게 보는 시각을 키울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내 아이가 너무 빠르다고 또 너무 늦다고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지는 말자. 그리고 아이에게도 스트레스 주지 말자. 물론 어느 한 부분이 심하게 발달이 지체된다고 판단되면 그 때는 전문가에게 가 보는 것이 좋다. 내 아이가 얼마나 발달되고 있는지 잘 모른다면, 영유아 건강검진을 제때 꼭 받으라는 것. 각종 육아서에 보면 개월 수에 맞는 성장발달, 개월 수에 맞는 이유식등등 뭔가 개월 수에 맞게 우리아이도 해야 할 것 같지만, 뭐든 그렇게 딱 그 개월에 맞게 하지 않아도 된다. 육아서를 기준으로 우리 아이가 조금 늦고 또는 조금 빠르구나하는 정도만 파악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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