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불길은 나부터 태우고 번져나갑니다
여태후의 악의와 업보.
중국한자 중에는 돼지 체 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근데 이 글자는 거의 본적이 없습니다. 아마 글자를 많이 접하셨을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도 이 글자는 조금 생소하실 겁니다.
그 연유에 대한 기원은 우리가 아주 잘알고 있는 중국역사의 한 부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됩니다. 바로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두고 다퉜던 초한쟁패시절로 말이죠.
항우가 역발산기개세의 전설적인 무용을 뒤로하고 오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서야 시작된 유방의 시대는, 그 한편에서 지독한 암투의 시작과도 맞물리게 됩니다.
여치. 산현에서 태어난 여인으로 유방의 정실부인입니다. 유방 개인의 일생이 결코 평탄치 못했던 영웅의 길 그 자체였기에, 부부의 연을 맺었던 여치의 고생 역시 이루말할것이 없었던것은 당연한 이치였죠. 실제로 항우에게 잡힌적도있고 죽을뻔한적도 있으며 유방이 도망가다가 자식들 다 버리려고하는 꼴까지 봤던 어미였습니다. 인생의 고난은 견뎌낸자에게 그만한 보상을 해주는걸까요? 결국 여치는 우리가 아는 여태후가 됩니다. 유방이 죽어가는 시점부터해서 여태후의 권력이란 그야말로 막강해지죠.
척부인이라는 여인은 유방이 전장을 돌다가 만난 여자입니다. 워낙 호색한이었던 유방이 여자 몇명이랑 잠자리를 하든 뭘하든 영웅의 일생에 여자가 하나뿐일런가 할수도있겠으나, 이 척부인은 야망이 있는 여자였습니다. 잠자리 베갯송사로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찍어달라고 유방을 압박하죠.
유방옆에서 인생의 쓴맛단맛똥맛까지 다 보고 그 모진고생하느라 자신은 폭삭늙어버려 유방이라는 남편놈은 자신한테 눈길도 안주는데, 유방은 젊고 예쁜 이 척부인만 밤마다 찾아대니 늙었더라도 여인의 설움이란 예나지금이나 가벼히 볼것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척부인이 갈수록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아달라는 이야기가 베갯머리에서만 들리는것이 아니라 그 말은 힘을 가지고 궁중의 사람들, 대신들에게도 모두 흘러들어갑니다. 실제로 유방은 신하들을 모아놓고 척부인의 아들을 후계자로 바꾸는게 어떻냐고 물어보기까지하죠. 당시 주창이라는 신하가 말도안되는 소리라고 직언을 하였고 몰래 그 대화를 엿듣던 여치는 주창에게 무릎까지 꿇으며 감사를 표했다고합니다.
아무튼 궁중 암투가 극에 달할때쯤 유방은 영웅적 일대기를 역사로 남기고 흙속으로 돌아가고 여치의 아들이 황제자리에 오르니, 이제 천하는 여태후의 것이었습니다. 정점의 자리에 오른 여태후의 한서린 눈은 곧바로 척부인과 그 아들에게로 향합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죠. 골이 깊은 감정싸움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는 여태후의 행동은 그 당시 정서에서도
'아 이건 좀..선넘네'
라는 소리를 듣게될정도로 잔혹한것이었습니다. 척부인의 눈알을뽑고 혀를자르고 코도 떼어내고 쇳물을 귀에 부어넣어 듣지도못하게 만듭니다. 거기에 나라의 수감된 죄수들에게 척부인을 겁간시키고 팔과다리를 잘라버린뒤에 돼지우리에 집어넣었습니다. 당시 돼지우리라는 개념은 음식물쓰레기장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하는데, 모진세월을 감내한 여인이 품었던 독기라는것은 그 잔혹함의 끝을 알수없었으니 역사가들은 여태후를 그저 악녀라고만 써놓기엔 조금 아쉬웠을겁니다.
척부인의 행동 역시 선을 넘은 경향은 분명히 있었다고봅니다. 황가의 핏줄. 그것도 황제의 사랑을 받는 여인이 잉태한 아들이라는 명분은 여태후에게 대단한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을것입니다. 사실 척부인의 바람대로 조왕 유여의가 황제가 되었다면.. 여태후와 혜제를 어찌했을지 궁금해지는것도 사실이고, 유방이 좌고우면하는 내내 속이 타들어갔을 여태후의 심정도 아예 이해가 안가는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시 시대의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저정도 형벌은 너무 지나치다는것이 중론이었습니다. 척부인을 인간돼지로 만들었다하여 그 모습을 가지고 人彘(인체)라고 하였고 여기에서 체자가 돼지체자입니다. 사람들은 무언가 꺼림칙하거나 불길해보이는 이름이나 단어는 쓰지않으려고 하죠. 척부인을 인간돼지로 만든 사건 이후로 돼지 체 라는 글자는 사실상 중국에서 거의 쓰이지 않게됩니다. 지금도 저 체라는 글자는 여태후관련일화에서만 등장하고있습니다.
아무튼 여태후는 2천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그 잔혹함의 대명사로 남아있을정도이니, 도대체가 한을 품은 여인이 행할수있는 야만의 끝이 어디일지 가늠하기도 힘드네요.
그녀의 아들 혜제는 척부인을 인간돼지로 만든게 자신의 어미이고 그 어미란 작자가 그러한 만행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닌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척부인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이런짓을 하셨는데 제가 어떻게 만백성을 다스리겠느냐며 눈물을 흘렸다고하죠. 혜제의 경우 평소 품성이 착하고 마음이 여려 척부인의 아들 유여의를 친형제처럼 아꼈다고합니다. 그래서 여태후가 척부인의 아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매일 옆에 붙어다니도록 해두었는데 결국 그 유여의도 여태후에 의해 독살당하고맙니다.
그런데 여태후의 끝모를 증오와 잔인함이 결국 업보로 돌아온것일까요. 어미의 업화는 태워버릴 상대들을 모두 태워버리고도 그 열기를 잃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여전히 활활타오르는 그 무언가는 이제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하던 아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혜제는 그 이후부터 술에 의존하고 정사를 돌보지않고 시름대다 6년후에 사망하게되죠. 여태후는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지만 결국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을 먼저 앞세우게 되었습니다.
혹시 그것이 척부인의 처절한 저주의 결과였다면 결국 두 여인의 싸움의 승자는 누구라고해야할까요?
유구한 역사의 부분 부분에서 카르마, 업보는 존재하는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꽤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얘기를 써봤습니다.
어떤것이든 지나침은 약간 미치지 못함만 못하다는것이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눈에 결기는 필요한것이지만, 주먹을 너무 꽉쥐다보면 제 손톱이 제 손바닥을 파고듭니다. 어떤것이든 지나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에게도 필요한 말이라 글이 길어졌네요. 암튼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