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게 먼저!
아이가 어릴 때, 우리는 일산 후곡마을 학원가에 살았다.
남들은 그 지역에 진입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려고 애를 쓰는데, 나는 정작 학원 정보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그곳에서 10년을 살면서도, 수많은 학원 중에 우리 아이를 보낸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후곡마을은 그곳을 거쳐간 많은 아이들의 추억 속에 있을 것이다.
나와 내 아이에게도 그렇다.
하지만 그 기억의 결은 많이 다를 것이다.
기차를 좋아했던 우리 아이는 날마다 경의선을 보러 일산역에 가자고 했다.
일산역 육교에 올라 철길을 바라보며, 열차가 올 때마다 온몸으로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더운 날도, 추운 날도 아이와 함께 일산역 육교에 오르는 것이 나에게 점점 일이 되어 갈 즈음, 살고 있는 아파트 전세 기간이 만료되어 집을 빼야 했다.
결국, 우리는 아예 경의선이 보이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이는 집 거실에서 열차 오는 소리만 듣고도 파주행인지 서울행인지 구분하는 게 일상이었다.
다른 추억도 떠오른다.
후곡마을은 일산역부터 호수공원까지 공원 조성이 잘 되어 있어,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분수 공원에서는 옷이 다 젖도록 물장구를 치고, 바위와 바위를 점프하며 땀 흘리던 그 시절이었다.
여름밤이면 매미 소리가 너무 커서 잠을 이루기 어려웠지만, 낮에는 아이와 함께 매미를 잡고 탈피 과정을 지켜보며, 도심 속에서도 영락없는 시골 아이처럼 살았다.
그곳에서 우리 아이는 학군지로 소문난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고, 학원도 하나 안 보내면서 다른 아이들이 바쁘게 오가며 공부할 때 우리는 마냥 신나게 놀기만 했다.
나와 아이에게 후곡마을은 단순한 동네가 아니라, 소중한 놀이터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 그렇게 뛰놀기만 하던 아이가, 지금은 캐나다 명문대에서 그때 노느라 못했던 공부를 원 없이 하고 있다.
마치 공부가 고팠던 아이처럼, 공부 속에 푹 담겨 있다.
"엄마는 네가 한창 놀 때는 신나게 노는 너를 응원하고, 한창 공부할 때는 공부하는 너를 응원해 줄게.
밥 잘 챙겨 먹으면서, 네가 원하는 만큼 실컷 공부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