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평온해지기가 무서워요

그곳엔 바람이 일지 않을 것 같아서

by 일찌

요가를 가면 2시간씩 수업을 듣는데

공간도, 분위기도, 해야 할 일도

모두 수행을 위해 갖춰진 곳에 있으면서도

나는 매번 생각의 삼천포로 빠져든다.


분명 나는 생각의 파도가 멈춰

고요해지는 걸 원하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평온함에 다가가는 게 낯설까?

왜 그저 멀리서 선망하기만 하려 할까?


그러면서 드는 생각.

내가 고요해지려는 진짜 의도가 있어야

이 고삐 풀린 망아지를 붙들어 맬 수 있겠구나.


이 미친 듯이 뛰어노는 생각을

바라보는 게 사실 재밌어서 내버려 두는 거구나.


내려놓으면 편하다는 걸 알면서도

내려놓으면 재미가 없을까 봐,

모든 것에 초연해질까 봐(?)

겁내고 있구나.


.

평온함이 내게 주는 이미지는

옛날 윈도우 xp 정도 되는 시절에

컴퓨터를 켜면 나오는 푸른 들판 같다.

바람 한 점 일지 않고 언제나 고정불변인 것.

주시의 대상이 되지 않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언제나 뒤덮여버리는 것. 그 평온함 속에 들어가면 나도 숨 쉬는 것조차 불경해 보일 정도로 적막하고 적적해질 것만 같았다.


이 천방지축 한 세상살이가 명상과 요가로 삽시간에 차분해진다면 사는 재미가 없어질까 봐 겁내는 꼴이라니. 화를 내는 게 오히려 인생에 스펙터클함을 더해주는 일이라 착각하고 있다니. 사실은 행복이나 평온 같은 게 가장 가치 있는 거라고 말하면서 실은 반대로만 행동하고 있구나 싶다. 언, 행 그리고 마음까지 일치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진짜 의도'를 갖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말로만 평온을 외치면서 사실은 내면이든 외면이든간에 어디서라도 싸움 구경을 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정리해보면

1. 나는 평온함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2. 평온함 = 노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실은 평온하고 싶지 않았다.

3. 지금까지 아사나 수련을 하며 일시적인 평온함을 안전(?)하게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내 인생을 평온하게 만드는 건 노잼의 위험이 있기 때문.



오늘의 배움 : 인지하든 못하든 간에, 삶은 각자가 원하는 대로 펼쳐진다. 하지만 표면적 의도와 내부적 의도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삶을 살아도 반쪽짜리 만족감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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