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까지는 월급을 줄 수 있지만,
그다음은 확실치 않아요."
요즘 스타트업 씬은 죽상이다. 알만한 큰 기업들 사이에서도 하루 걸러 하나씩 망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투자도 위축되었다. 사실 지금까지가 코로나 특수였지 싶어 새삼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과잉된 시장에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하지만 그건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회사에 법인이 설립되기도 전에 합류했다. 첫 커리어에서 팔자에도 없는 숫자를 만진 탓에 이번엔 콘텐츠 마케터라는 이름에 홀려 이직을 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를 만드는 동시에 디자인과 기획과 운영을 함께하는 전형적인 스타트업 쫄개로 변모했다.(누군가는 어차피 끝은 치킨집 사장이니 제너럴리스트가 낫다고 했다.)
실패가 기본값인 스타트업계에서 나도 숱한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웠다. 사수가 없으니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고 시도해서 낭비한 자원도 만만찮다. 그러다 보니 대표의 망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적잖은 부채감을 느꼈다.
'이제 좀 감이 생겼는데...
시간을 조금만 되돌린다면,
내가 지금 아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이 지경이 안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한동안은 눈을 뜨자마자부터 총알같이 의자로 튀어가 노트북을 열었다. 하루 종일 무거운 마음으로 일을 했고 밥을 먹으면서도 슬랙과 스윗을 오가며 초단위로 답변을 했다. 한 입 먹고, 한 줄 쳐서 보내고...(자린고비야, 뭐야.) 밥 먹는 즐거움을 잘 알던 내가, 일론 머스크라도 된 마냥 식사를 캡슐로 해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내게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 와중에도 요가는 양보할 수 없는 스케줄이었다. 그날도 일을 마치고 요가를 갈 예정이었기에 쏟아지는 일을 쳐내느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해치웠다. 겨우 노트북을 끄고 허겁지겁 길을 나섰을 때, 선선해진 가을 날씨와 텅 비어있는 하늘이 나라는 작은 개체를 압도했다. 작은 모니터 화면 속 부침에 놀아나던 방금 전의 내가 묘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세상은 천천히 흐르고 노을은 급하지 않게 물들었다. 그 속에서 나도 느리게 걸었다.
요가원에 도착해서는 요가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거기는 요가원을 가는 길목과도 또 다른 현실이었다. 원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인센스 향 스틱이 세계관의 전환을 예고하고, 핸드폰도 거기선 묵음 수행을 준비한다. 사람들로 가득 차있지만 부산하지 않은 그곳에서 각자가 각자의 아사나에 몰입한다.
2시간을 내리 요가를 했고, 땀을 많이 흘렸다. 하루 종일 패배감과 죄책감에 쫓기던 내가 아닌, 평온한 마음의 내가 거울 앞에 서있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위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단 하루만 들여다봐도 눈만 돌리면 다른 현실이 펼쳐져 버리는데, 내 삶을 압도하는 절대적 현실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안다. 나는 생활력과 책임감이 강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렇기 때문에 어쨌거나 이 난관을 헤쳐나갈 것이다. 하지만 위기가 초래하는 나쁜 감정은 중독적이고 파괴적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치달았던 근 2달간 나는 내 작고 소중한 몸무게를 무려 3kg이나 잃어버렸다. 요가를 하며 즐긴 잠깐의 현실 도피는 되려 내게 괜찮다고, 내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평온함과 충만함을 느낄 힘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오늘의 배움 : 눈앞의 현실은 눈 앞에 있기 때문에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선을 돌리면 그저 전체 풍경 중 일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