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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운 Nov 03. 2022

칵치켈의 달

2022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내 아들들아, 우리는 어렸을 때 이미 고아가 되었다. 우리들은 모두 그랬다.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났던 것이다. 

Annals of the Cakchiquels  


              


창백해진 신을 끌어안고 걸었다. 그의 작아진 손이 얼었는지 계속해서 만져 보면서. 예민한 어린애의 마음으로.      


종종 금지된 것들은 빛무리처럼 보였다.    

  

소진된 언어, 지친 얼굴들을 말하는 언어가 길모퉁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신을 바투 끌어안았다. 그를 달래기 위해 없던 사건들을 말했다. 창조. 제의. 사물들의 이름. 사랑. 뺨을 만지는 손.      


흙바닥에서 별이 뜨기 시작했을 때. 기적 혹은 이상 기후. 순례는 멈췄다. 빛으로 길이 젖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사랑을 학습했다. 무릎을 적당히 꿇는 법.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는 각도. 간지러운 머리를 긁지 않는 인내심. 만들어진 사랑이 내 몸에 들러붙었다. 사랑을 두르고. 학습하고. 꿇었던 무릎이 화끈거렸다. 부끄러워하는 볼 대신에.     


금지된 것들. 빛나는 것들. 나는 무릎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신이 나에게 안긴 채로 빛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터부시되는 장면. 나는 그의 눈을 가렸다. 긴 속눈썹에 손바닥이 간지러웠다.

    

모퉁이를 돌면 금지된 것들이 있을까. 죽음. 전례. 신의 이름. 혀 아래에 동전을 넣는 손. 손바닥을 치우자 신은 울고 있었다. 우는 그의 얼굴은 낯설다. 새로 태어난 아기처럼. 나는 낯설기 때문에 착각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그의 주변으로 세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는 계시를 내린 적이 없었다.

결백한 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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