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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운 Nov 03. 2022

정상가족

베개 6호 수록 

나는 야윈 얼굴로 나를 본다

깊은 물 속에 나를 담그고      


거꾸로 자라는 나무들을 본다     


꿈 속에서는 모두 거꾸로 해야 해. 뒤로 걷고 물음표부터 읽고 그리고 머리를 물 속에 처박고 느리게 자라고. 영원히 모든 것을 거꾸로 하다 보면 나무가 될 것 같았지. 내 주위의 모든 생물이 열심히 진화하려고 할 때 나는 퇴화하려고 했어. 남들이 모르는 마음으로.     


짧아지는 나무의 잎맥      


식물원의 티켓이 종이로 만들어진 게 얼마나 이상한 줄 몰라. 나는 이 티켓에 이름을 붙여. 안녕, 오래 전 거꾸로 자랐던 나무야. 긴 이름은 발음하기 어렵고 그러면 저주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붙인 이름. 

    

잎에서부터 뻗어나가는 나뭇가지      


축축한 공기 속을 열심히 걸었다. 열심히 걸을수록 티켓의 수명은 짧아졌고 나는 거꾸로 자랐던 나무의 목숨이 아까워서 내 걸음으로 둥글고 큰 원을 그렸다.     


일기장에 티켓을 오려붙였어. 나무와 꽃이 인쇄된 부분만을, 마치 수술을 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종이로 오려서 손바닥으로 그것을 눌렀다고.     


종이를 누를 때 글자들의 맥박이 느껴졌어.      


꿈을 꾸기 위해 거꾸로 침대까지 걸어가

머리를 문 쪽으로 두고 누우며 

야윈 얼굴을 한 나를 붙들고 

영원히 말한다      


나를 미워하지 마  

   

달의 근처까지 자란 뿌리   

   

꿈 속에서 나는 아이를 가졌다. 엄마, 저기 봐, 저 나무가 참 예뻐. 나는 내가 모르는 남편과 낯선 아이의 손을 잡고 흔들어 그를 공중으로 들었다가 놓으며 그래, 참 예쁘다. 대답한다. 아이의 이름을 생각해내려고 골몰한다.     


뿌리의 그림자 아래에서 나를 닮은 아이의 얼굴을 본다. 

여윈 얼굴이다.      


아이는 내가 그를 미워하지 못하도록 너무나 긴 이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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