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운 Nov 03. 2022

오랫동안 자세를 바꾸지 않는 개에게

2022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나의 늙은 개가

오랫동안 자세를 바꾸지 않고   

  

엽서나 풍경처럼 누워 있을 때 

그를 묶고 당기는 끈이 그림자처럼 가여워졌다     


너의 산책에는 전설이 있다

나는 네가 언제나 어리고 부드럽고 뼈가 잘 휘어지기를 바랐다     


사랑하면 먹이고 싶어지는 것들

나는 너로 인해 젖은 내 손을 사랑의 감각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꿈속에서 

나의 사랑을 오랫동안 관람한 네가 뒷다리로만 일어나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늙은 여자처럼 걸어가는 그 뒷모습     


슬퍼 보였다  

   

그렇게 걸을 수도 있었구나   

  

너의 이마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나는 너의 뒷모습을 보며 비로소      


“이렇게 작은 개가 이렇게까지 늙을 수 있다니.”

사람들이 네 주변에서 감탄했다     


너를 안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개가 죽은 날도 장례식을 치렀다고 할 수 있는지 골몰했다     


너를 묻은 땅 위에 무릎을 대면 

우리의 산책과 전설이 시작되는 꿈 

    

너는 

오랫동안   

  

어리고

부드럽고

뼈가 잘 휘어졌다     


나의 늙은

개 

이전 11화 정상가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